해외여행/산티아고 순례

[까미노 29.] 바위에 걸터앉은 순례자의 뒷모습도 아름답다. | 240602

바이올렛yd 2025. 3. 15. 17:38

뽀르또마린(Portomarin)에서 빨라스 데 레이(Palas de Rei)까지  25km 
6시간 40분 소요 (am 6:00 ~ pm 12:40)


2024년 6월 2일 일요일

 

지난밤은 대단한 소음으로 밤새 들썩였다. 다소 늦은 시간에 들어온 청년들 중 누군가 잠꼬대에 이까지 득득 갈아 불편한 밤을 보내고 새벽이 되자 하나 둘 떠날 준비하는 소리에 분주했다. 우리도 어둠 속에서 대충 준비해 밖으로 나와 어제 남은 시리얼과 우유로 아침을 대충 먹고 6시경 출발했다.

 

어둠 속에 벌써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트래킹 멤버 중 제주에서 오신 분이 어디선가 나타나 인사했다. 사리아 이후로는 알베르게를 예약해 놓고 걷고 있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공립알베르게가 그나마 한가한 것 같다. 

 

뽀르또마린은 1960년 댐의 건설로 인해 수몰되어 언덕 위에 재건된 마을로 중세시대에도 순례자의 통행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미뇨강의 지류인 또레스강 위를 지나는 다리를 건너 숲길로 들어서야 하는데 잠시 길을 잃고 도로를 따라 걷다가 다시 뒤돌아오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제 낯선 길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는지 지레짐작하고 걷게 되는 방심의 때가 왔나 보다. 바로 전날 끝까지 무탈하게 차근차근 마무리하자 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아무튼 남편의 비아냥 섞인 눈초리를 느끼면서 길을 되돌아와 숲길로 들어섰다. 약간의 오르막이지만 근사한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늘어선 숲길은 혹 영릉의 소나무 산책로를 걷는 느낌이다.

 

뒤쪽으로 펼쳐진 새벽하늘을 뒤돌아보며 상쾌한 숨호흡을 했다.

새벽에 아들, 딸에게 축일을 축하한다 전했었다. 6월 2일 마르첼리노 축일이다. 유아세례 시기를 놓쳐 첫 영성체 교리를 받으며 세례를 받은 아들이, 마르첼리노 영화를 보고는 세례명을 마르첼리노로 하고 싶다 정했었고, 이후 딸도 오빠의 세례명을 따라 마르첼리나로 정했다. 평소 오빠를 많이 따르는 연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세례명이다. 매일 묵주를 들고 출발하며 바치는 진이의 회복을 위한 기도와 더불어 특별히 축일을 맞이한 아들, 딸을 위해 묵주기도를 바쳤다. 

 

분명 우리가 먼저 출발했는데 독일유학생 청년이 배낭에 슬리퍼를 주렁주렁 매단 채 나타났다. 역시 걸음이 빠르다. 먼저 간다 인사하고는 빠르게 앞질러 나갔다.

 

갑자기 눈이 부시다. 동녘에 막 떠오른 아침해가 햇살을 맘껏 뿜어대고 있다.   

 

오르막 길이 길게 이어지는 만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즐거움도 크다.

 

앞서 걷던 백발의 순례자가 건너편 길가 큰 바위에 걸터앉아 아침해를 맘껏 즐기며 담배 한 대 즐기고 있는 모습에서 까미노 순례는 경주가 아님을, 독일여자가 자기에게 까미노는 베케이션이라 했던 것을 다시 상기시킬 수 있었다. 

 

오늘 걷는 길에서는 원래 루트가 아닌 새로운 길로 돌아가는 이정표가 간간이 세워져 있어 매번 선택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오른편은 곧장 가는 길이고 왼편길은 마을을 통해 돌아가는 길인 듯한데, 우린 왼편길을 선택했다. 

 

인적 없는 조용한 마을을 통과하는 길로 별다른 것을 발견하지 못해 그냥 직진할 것 그랬나 잠시 후회했다. 

마을을 돌아 나와 다시 원래의 까미노길에 들어선 후 외딴곳 오른편에 오픈된 빠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라시아님과 함께 걷던 한국 아가씨(은영)가 휴식을 마치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타날 때가 되었는데 왜 안 나타나는지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신다. 그들이 앉았던 자리에 다시 우리가 앉고 그라시아님과 은영씨는 다시 길을 떠났다.

 

인적 없이 조용하기만 한 농촌마을 곤사르를 지나고 까스뜨로마이오를 지나는 동안 오르막길은 계속 이어졌다. 

 

산티아고 도착 전 82km 지점을 통과하여 언덕을 넘으니 맞은편에 보이는 산길에 순례자들이 드문드문 걷는 모습이 보인다.  

 

저 산을 넘어야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하는가 보다 생각하니 아찔하다. 

 

언덕아래로 내려가니 나무그늘 벤치에 독일청년이 쉬고 있다. 우리 걸음이 그다지 느리지는 않았나 보다. 우리는 쉬지 않고 지나쳐 오르막길로 접어들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숨을 고르며 올라가기 시작. 언제나 오르막길을 오를 때면 마법을 걸듯이 금방 내리막이 나올 거란 생각을 주문처럼 되뇐다.

 

한참을 걷다가 마을이 나오고, 오른편에 보이는 빠에 사리아에서 만났던 부녀가 앉아 쉬고 있었다. 멀찍이서 손을 흔들며 인사했더니 들어와 함께 먹고 가라 손짓한다. 전 마을에서 먹었으니 계속 걷겠다 손짓으로 말하며 손을 흔들며 지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바로 전에 그 아가씨가 준 망고젤리를 하나 까먹으며 어디쯤 걷고 있을까 궁금하던 차였었다.

 

결국은 내리막길이다. 

 

오르락내리락 다양한 길을 걸으며 목적지에 거의 다 와가는데 몸이 무겁다.

 

마을을 지나 길가 왼편에 영어로 맥주라 씌어있어 무조건 들어가기로 했다. 앞서가던 무리들이 모여 앉아 한잔들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다른 테이블에 그라시아님과 은영씨가 앉아 맥주와 빵을 놓고 앉아있었다. 우리도 맥주 두 잔을 사가지고 함께 앉았다. 그라시아님은 은영씨와 내일이면 헤어질 거라며 이별주를 마신다고 한다. 만났다 헤어지고 인연이 되면 우연이 또 만나기도 하고 그런 거지. 거의 한 달 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같은 길을 마냥 걷고 있는 사람들. 이제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며칠 안 보이면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 사이가 되었다.

 

순례길의 맥주는 참 술술 잘 넘어간다.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 나로선 내 인생에 까미노 중 가장 많은 맥주를 마시고 있는 것 같다. 

 

대자연을 품고 있는 스페인땅에서는 흔한 장면. 이번엔 할아버지께서 염소몰이 중이시다. 

 

맥주 한잔하고 그라시아님과 은영씨가 먼저 출발했는데 금방 우리가 뒤따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난 그라시아님과, 남편은 은영씨랑 이야기하며 함께 걸었다.  그러면서 목적지인 팔라스 데 레이에 도착.

 

마을에 들어서면서 언덕 높은 곳에 있는 성당 앞에 서서 그라시아님은 지난해 순례길을 기억했다. 바로 그곳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노라 하시며 보여주신다. 바로 반년만에 그 자리에 다시 선 것이다.

 

사흘 만에 다시 만난 이태리아가씨는 아직도 다리가 많이 불편한지 붕대를 칭칭 감고 나타났고, 12시 40분경 공립알베르게에 도착하니 독일유학생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체크인은 오후 1시부터 시작되었다. 

 

우선 침대 배정받고 짐 풀고 바로 나가 우리 부부랑 그라시아님이랑 은영씨랑 독일유학생이랑 함께 뽈보와 갑오징어와 감자튀김이 든 요리를 주문해 맥주와 함께 먹었다. 

 

맛있게 먹고 독일유학생의 의견에 따라 음식값은 더치페이로 깔끔하게 정리됐다. 

 

이곳 공립 알베르게는 최근에 리모델링하여 시설이 깔끔하고 좋은 반면 빨랫줄이 없다. 빨래 널 장소를 찾다가 테라스에 줄매서 널어놓았더니 밖에 서있던 그라시아님이 굿 아이디어라며 엄지 척을 날리신다.

 

저녁 7시에 성당에 올라갔다. 주일이라 사람이 많다. 성체성혈대축일을 맞이하여 제대 앞에 꽃장식을 정성스럽게 해 놓았다. 미사집전하시는 신부님의 절도 있는 목소리에 미사는 더욱 성스럽고 가슴 벅찼다. 

 

미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오며 가며 만난 낯익은 얼굴들도 더러 보인다. 낮에 길가의 빠에서 손을 흔들었던 한국인 부녀도 만나 반갑게 인사 나눴다. 나이 드신 한국인 순례객들의 단체사진촬영을 부탁받아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고 내려오다가 젤라토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들고 알베르게 앞 광장으로 갔다.

 

어디에 숙소를 잡았는지 제주도 여자가 혼자 바람 쐬며 거니는 모습이 멀찌감치 보였다.

 

연이와 연락했다. 주말이라 밭에 갔다가 풀을 적잖이 뽑았나 보다. 고모부와 동네 아저씨가 오셔서 풀 뽑기를 도와줬다고 한다. 평소 밭 언저리에도 안 가던 연이가 엄마 아빠가 장기간 순례길을 떠나는 바람에 주말농부가 다 됐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아쉽지만 2주 후에 돌아간다. 

 
오늘 저녁도 간단히 먹기로 했다. 미트볼, 샐러드, 그리고 햇반 두 개 사다가 맥주, 주스와 함께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