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32-1.]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잠깐 멈춤 | 240606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2024년 6월 6일 목요일
도미토리에 침대 두 개를 배정받아 자는 바람에 같은 방에 나까지 포함 여자 다섯, 남자는 남편뿐이었다. 그동안의 침실여건에 비하면 대단히 좋은 침실이다. 긴장을 풀고 밝아질 때까지 늦잠을 자보려 했는데 누군가의 알람소리가 새벽 다섯 시 경에 두 군데에서 한꺼번에 울리는 바람에 잠에서 깨었다. 그리고는 새벽에 나가는 사람이 있는지 바로 옆에 있는 샤워실에서 물 쓰는 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려 그나마 남은 잠이 홀딱 깨어버렸다. 구석진 자리라 좋아라 했는데 이런 맹점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그렇지만, 숙소 위치가 좋아 창문을 통해 들리는 새소리, 고즈넉한 지붕들 위로 건너다 보이는 성당을 바라보니 마음이 편안하다. 그래도 다른 방에 비해 침대수가 적어 그래도 오붓한 잠자리가 되었겠다 스스로 위안 삼았다.
오늘은 잠깐 멈춤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멈춤은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더 오래 걸어가기 위한 준비라고 했던가? 우리도 다음을 준비하기 위해 잠시 쉬며 산티아고의 흔적들을 느껴볼 예정이므로 아침시간이 여유롭다.
지하로 내려가 마트에서 빵과 커피, 주스를 구입해 테이블에 앉아 아침식사를 했다.
숙소가 여러모로 괜찮은 듯하여 피스테라 다녀오는 날에도 이곳에서 자고 포르투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숙소정리를 위해 오전 9시 반 이전에 퇴실하라 하여 9시경 밖으로 나왔다.
포르투 가는 버스터미널 위치가 궁금해 우선 가보기로 했다. 약 20분 정도 걸어가니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이 나왔다. 버스터미널을 살펴보고 있는 중 동생이 진이 소식을 전했다. 지난밤에 또 위급한 상황이 되어 중환자실로 실려갔다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제발 별일 없기를 바라며 기도밖에는 달리 할 게 없다. 진이 회복을 위해 묵주알을 돌리며 천천히 성당으로 향했다.
10시 반경 성당 안으로 들어가 제대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리를 잡아 앉았다. 아직 미사시간은 한참 남았지만 일찌감치 사람들이 성당을 찾아 들어왔다. 전날 들어갔던 야고보성인 유해가 안치된 곳에 다시 들어갔다 나와 야고보성인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 모두에게 평화가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도하지만 왠지 불안하다.
묵주기도 20단을 마칠 무렵 사람들이 제법 많이 들어왔고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전날 도착한 사람도 있고 오늘 막 도착한 사람도 있을 터다. 그 와중에 트래킹멤버들이 지나가는 게 보였고, 잠시 후 춘천자매님이 친구와 함께 나타났다. 자리를 좁혀 앉으며 내 자리 옆과 뒷자리에 한 명씩 끼어 앉았다. 미사가 시작되고, 영성체 후 숨죽이며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훌쩍인다. 어제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으나, 사실 오늘도 가슴 뭉클한 거는 마찬가지다.
미사 마치고 나오면서 춘천자매님과 광장에서 기념사진 찍자하며 가고 있는데, 트래킹 멤버들이 나타났다. 서로 반가워 포옹하며 축하했다. 나와 띠동갑 어르신은 여전히 절룩거리며 환한 얼굴로 웃으신다.
광장으로 나오니 전날 느꼈던 기쁨과 감격의 순간들이 또다시 재현되고 있다. 산티아고광장에는 매일매일이 순례의 기쁨을 나누는 축제의 장이겠다. 같이 걸은 동료가, 그와 함께 한 무거운 배낭과 그의 안전을 책임져 준 스틱이, 신발이, 이 모든 것이 그와 함께 한 영광의 징표인 거다.
춘천자매님과도 서로에게 기약 없는 이별을 고하며, 기쁨을 함께 나눴다. 언젠가 또 만날 수 있겠지.
한국의 젊은 친구들 셋이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걸 보고, 남편은 참지 못하고 다가가 셋이 함께 사진을 찍어준다. 그들은 레온부터 걸어 이곳까지 함께 왔다고 한다. 젊은이들의 용기에 칭찬과 격려를 한껏 해줬다.
산티아고 광장 가까운 곳에 있는 레스토랑에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잡고 앉았다. 15유로 식사메뉴와 함께 맥주를 주문했다. 식사 중 가까운 곳에서 버스킹 하는 분이 잔잔한 노래를 불러주니 한층 분위기가 좋아지는 듯하다.
잔잔한 음악에 식사를 하며 나른할 뻔한 찰나에 이태리 볼로냐 아가씨가 어느 남성과 함께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하이!'하고 부르니 날 바라본다. 서로 반가워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무릎은 괜찮은지 물었더니 괜찮다고 말하는데 언어가 짧아 긴 대화는 못하지만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기뻐하기에 충분했다. 다리는 절룩거리지만 밝게 인사하고 가는 모습이 예쁘다.
식사를 마치고 광장으로 올라가니 점프를 하며 사진 찍기에 열중인 한 무리가 시끌벅쩍하다. 기쁨을 나누는 방식은 여러 가지나 그 느낌은 충분히 공감할만하다. 남편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잠시 멈추더니 그들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어준다. 그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니 엄지 척을 날리며 좋아한다.
너른 광장에 또 익숙한 한 무리가 또 그들만의 방식으로 기쁨의 순간을 사진에 담고 있다. 비야프랑카에서 같은 알베르게에 묵었던 청년들이다. 멋진 청년들아 모두 축하한다.
콤포스텔라성당 뮤지엄 관람 티켓(6유로)을 끊어 뮤지엄에 들어갔다.
뮤지엄은 규모가 방대해 돌아보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약 두 시간 정도 관람을 마치고 나니 4시가 다 되었다.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성 야고보(산티아고)가 순교하여 유해를 못 찾고 있던 중에 별빛이 나타나 이곳 숲 속의 동굴로 이끌어 성 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별의 들판'이라는 의미로 캄푸스 스텔라(Campur Stellae)라 불리게 되었고 산티아고 무덤 위에 대성당이 건축되면서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교황 레오 3세가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를 성지로 지정하고 이후 까미노의 성지로 발전하게 되어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유럽의 3대 순례지로 손꼽히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 대한민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 |
급피곤이 밀려와 내일을 위해 숙소로 돌아가 일찍 쉬기로 했다. 숲 속의 동굴에서 무덤을 발견해 그 자리에 성당을 지었다는 이야기에 걸맞게 도시는 그야말로 울퉁불퉁 경사진 길을 많이 걸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게다가 우리 숙소는 하천 건너편에 있으니 더욱 그렇지만 이 정도쯤이야 괜찮다.
전날 뿌옇던 대기는 맑아져 하늘이 예쁘게 드러났다.
창밖을 내다보며 천천히 다음날 피스테라를 향해 걸을 준비하고 차에 그라시아님이 우리 방으로 쑥 들어왔다. 하루 만에 보는데 어찌 이리 반갑나 싶다. 그라시아님은 곧 귀국을 앞두고 있어 오늘 피스테라 버스투어를 다녀왔다고 했다. 독일청년이랑 한식당에서 저녁식사하기로 약속했다며 구글지도로 찾아가는 법을 묻길래 알려드렸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라 서로 부둥켜안았다. 순례 첫날부터 마지막까지 많은 시간을 함께 한 동지다. 그라시아님도 우리가 내내 의지가 되어 좋았다고 하셨다.
7시경 알베르게 지하층으로 내려가 빵과 피자 한 조각을 주문하여 우유랑 먹었다. 빵에 곁들여먹을까 샐러드도 하나 샀는데 빵속에 참치샐러드가 들어있는 거라서 도저히 안 넘어가 제대로 못 먹었다. 샐러드도 참치가 들어간 감자샐러드다.
곱게 내려앉은 석양에 비친 성당이 아름다워 한참을 창문에 매달려 밖을 바라봤다. 오가는 길이 평지가 아니라 힘들지만 숙소 위치는 정말 좋구나 위안을 했다.
같은 방에 전날은 6명이 잤는데 오늘은 침대 일곱 개가 가득 찼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늦게까지 들어오질 않아 우리도 일찍 잠자리에 들기 힘들게 생겼다.
덕분에 밤 10시경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의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알베르게에서 미리 피스테라 순례자 크리덴셜 구해놓고, 돌아오는 날 숙소예약까지 마쳤다. 순례 마지막은 각자 편하게 1인실 두 개를 예약했다. 두 명 1인실로 예약하니 28유로씩 56유로, 나중에 안 사실인데 2인실도 56유로라 한다.
내일은 또 다른 순례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