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add 2.] 빗속에 들려온 노랫소리로 힘을 얻어 걷다. | 240608
네그레이라(Negreira)에서 올베이로아(Olveiroa)까지 33.4km
7시간 30분 소요 (am 6:00 ~ pm 1:30)
2024년 6월 8일 토요일
지난밤은 참 더웠다. 덥기도 하고 햇빛알레르기인지 두드러기가 난 목과 팔이 가려워 결국은 중간에 티셔츠를 벗고 항히스타민제도 먹고 잠을 청했으나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서인지 그냥 덥고 가려워서인지 잠들기가 힘들었다.
아침 5시 반경 어둠 속에 준비하는 사람들. 건너편 침대에선 휴대폰이 혼자 울고 있다. 알람 맞춰놓은 휴대폰 주인이 씻으러 갔나 보다. 배낭 챙겨 들고 1층 로비로 내려와 간단히 우유와 빵으로 아침을 챙겨 먹고 6시경 길을 나섰다.
불빛이 드문드문 있는 마을 외곽길을 걸어 숲으로 향하는 길에 접어들었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네그레이라 마을 불빛이 차분하다.
진이 가족과 엄마와 내형제들을 위해 묵주기도를 시작했다. 희로애락이 공존하는 인생사이기는 하지만, 가슴 아픈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밤사이 비가 왔던 모양인데 또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비옷을 입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우선은 배낭커버를 씌웠다. 그러나 결국은 우비를 꺼내 입었다. 흐리고 비가 오니 새벽 숲길은 더욱 어둡다. 휴대폰 불빛에 의존해 한참을 걸었다.
날은 밝아지고 빗방울은 추적추적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숲과 들판을 약 10km쯤 걸었을 무렵 마을이 나오고 빠가 나왔다. 몇몇이 빠 안에 있는 것이 보여 들어갔더니 안 한다고 한다. 비도 오는데 좀 쉬어가게 했으면 좋겠지만 주인장이 오늘 무슨 사정이 있나 보다. 야외에 비를 비할 수 있는 자리가 있어 우비를 벗고 의자에 앉아 과일이나 먹고 가자하고 있는데 미국인아저씨가 호두알을 나눠주며 먹으라 한다. 우리도 자두 하나를 건네주니 좋아한다. 그리고는 바로 떠날 채비를 하고 우리에게 부엔까미노를 외치고 'sing in the rain~' 노래하며 떠나간다.
우리고 곧 떠날 채비를 하고 먼발치에 걷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길을 나섰다. 그의 흥얼거림에 갑자기 빗속을 걷는 기분이 좋아졌다. 큰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이는 모퉁이에서 그가 손짓한다. 길을 알려주나 했더니, 우리가 거의 다가갔을 무렵 길가에 있는 커피자판기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커피 마시겠냐고 물으며 사막의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 마냥 즐거워한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몸을 달래라는 친절의 몸짓이었다.
어쨌든 그는 우리에게 커피 뽑는 법까지 알려주고 휑 사라졌다. 경쾌한 순례자다.
비는 쉬지 않고 부슬부슬 내린다. 우비를 입었지만 땀 배출이 되지 않아 온몸이 축축한 기분이다. 대신 서늘하여 다행이다.
오전 11시경 빠를 만나 드디어 휴식과 함께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출발한 지 다섯 시간 만에 제대로 누리는 휴식시간이다.
꿀맛 같은 휴식시간을 보내고 다시 일어서 길을 나섰다.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순례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가장 긴 시간 동안 걷는 빗길이다.
무진장 오르막이 나오고 꼭대기에 올라가 내려다보니 멀리 바다가 아닌가 싶은 곳이 보이는데 나중에 내려오면서 보니 호수인 것 같다.
오르막이 있으면 분명히 내리막도 있으리라 기대하며 쉬지 않고 걸어야 덜 힘들다. 분명 끝이 있을 거란 희망으로 힘을 낼 수 있는 거겠지. 그렇게 몇 개의 산을 넘고 들판을 지나 결국 다리가 뻐근할 무렵 목적지에 도착했다.
전날 숙소 들어가기 전에 점심을 먹을까 하는 걸 먼저 체크인하고 먹자 했더니 그게 불만이었는지 오늘은 점심을 먼저 먹고 체크인하자 한다. 마을 못 미쳐 바가 있었지만 그냥 지나간다. 우비를 입고 있어 거추장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더니 결국은 마을까지 계속 걸어 도착. 다소 늦은 시간이라 침대가 없을 수도 있어 우선 알베르게로 갔다.
알베르게는 한 울타리 안에 있지 않고 각각 떨어진 몇 개의 건물을 함께 이용하고 있었다. 아마도 공립 알베르게를 마련하기 위해 몇 동의 집을 한꺼번에 마련하여 도미토리, 리셉션, 주방, 세탁실 등등을 각각 마련한 것 같다.
내부 수리를 좀 했는지 비교적 깨끗하지만, 지나온 알베르게에 비하면 다소 불편하다.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 보니 명이한테 연락이 와 있었다. 통화하려 했는데 내가 벨소리를 못 들었나 보다.
진이 장례식장에 가서 이모들하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집에 가서 자고 내일 아침 장례식에 참여하러 다시 갈 예정이라 한다.
함께하지 못해 대단히 미안하고 슬픈 상황이지만, 아이들이 함께하니 참 다행스럽다. 이제 어른이구나.
침대 정리하고 마을로 내려가 점심식사를 했다. 어제와 같이 샐러드와 비프스테이크, 맥주를 주문해서 먹었다.
하루 한 끼 푸짐하게 먹고 나머지는 대충 먹기다.
작은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며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와 씻고, 세탁물을 가지고 건너편 건물로 갔다. 노래를 부르며 빗속을 경쾌하게 걸어가던 남자가 세탁물을 가지고 다가왔다. 서로 반가워 인사를 하고 이미 내 세탁물이 들어간 상태라 그는 세탁기 위에 빨래주머니를 올려놓고 웃으며 사라졌다. 날씨가 축축해 이번엔 세탁기 돌리고 건조까지 했다. 모두 6유로.
작은 마을에 도착하면 시간이 많다. 침대에 누워 쉬기도 하고, 일기도 쓰고, 사진정리도 하고...
내 주변에 빈침대는 금방 다 차버리고, 젖은 우비에 배낭에 신발까지... 창문을 열어놓았지만 방안에는 습기가 가득하다.
저녁식사는 알베르게 근처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샌드위치와 오늘의 추천 메뉴를 주문했다. 카레소스가 들어간 닭찜 비슷한 요리와 와인이 함께 나왔다. 그다지 입맛이 당기는 음식은 아니었다.
내일이면 피스테라에 도착한다.
이제 진짜 순례의 막바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