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add 1.] 진이 떠난 날, 우린 땅끝 마을을 향해 떠났다. | 240607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Santiago de Compostela)에서 네그레이라(Negreira)까지 21km
5시간 45분 소요 (am 6:00 ~ am 11:45)
2024년 6월 7일 금요일
새벽에 깨어보니 5시 40분. 전날 이른 새벽부터 움직이던 사람들처럼 우리도 어둠 속에 떠날 준비 하느라 그들의 단잠을 방해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남편을 깨우고 대충 배낭을 꾸려 화장실로 향했다. 대충 씻고 짐을 정리해 피스테라로 가지고 떠날 것과 보관할 짐을 나눠 담았다. 어차피 며칠 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예정이라 필요치 않은 물건은 따로 모아 사물함에 보관하기로 했다.
가뿐해진 배낭 메고 알베르게를 나와 마당으로 내려오는 순간 휴대폰에 진동이 몇 번 울렸다. 이미 새벽 2시경에, 한국시간으로 아침 9시경 진이가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한동안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마당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결국은 기다리지 못하고 떠났구나... 장례 절차를 밟아 수원 연화장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아들과 딸에게 소식 전했더니 장례식장에 가서 우리 몫까지 정성을 다 하겠으니, 남은 일정 마무리 잘하고 돌아오라 위로한다.
아들 딸에게 몇 가지 부탁하고 일단 출발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생각하며 한참 동안 말없이 걸었다. 남편도 머릿속이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였을 테다. 이런 상황에서 자칫 잘못하면 또 서로 상처가 될 상황이 발생될 수도 있으니 서로 말없이 걸으며 각자 해결책을 생각한 것 같다.
진이가 투병하던 내내 손녀딸 건강을 염려하며 눈물짓던 엄마가 가장 걱정이다. 진이와 진이가족과 엄마를 위해 묵주기도를 시작했다.
산티아고 데 꼼뽀스텔라 광장의 새벽은 고요하고 적막했다. 광장을 지나 피스테라로 향하는 길을 찾아 시내를 빠져나왔다.
오만가지 생각에 빠져 산티아고 외곽을 향해 무작정 걷다가 왼쪽을 바라보니 멀리 산티아고 성당이 아름답게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자.
수국이 한창이다. 정원에도 길거리에도 수국이 피기 시작하여 갖가지 색깔로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프랑스길과는 다르게 인적 없는 길을 마냥 걸으며 한적하다 못해 쓸쓸했는데 우리 앞에 두 명의 순례자가 나타났다. 앞서 걷는 둘의 모습은 모자지간 같은데 너무나 정다워 보여 부러울 정도다. 천천히 걷고 있는 그들을 지나치며 '굿모닝!' 하고 인사했다. 엄마로 보이는 이가 '부엔카미노!' 하며 인사를 하면서 '걷는 사람이 적다'라고 말한다. 영어를 못하는 난 '에브리바디 버스 슝 피스테라!' 하고 몸짓을 곁들여 이야기했더니, 그렇다며 손뼉을 치고 웃는다. 어쨌든 의미전달이 되었으면 그만. 배짱이다. 그들도 한국말 못 하는데 뭘~~
첫 번째 마을을 지나고 약 2km 정도 오르막을 계속 올라 산을 넘고 내려오는 길에 두 번째 마을이 나왔다. 마을을 통과하는 내리막길 오른쪽 풀밭에 크로바가 많이 나있다. 그라시아님이 줬던 네 잎 클로버가 생각나 들여다보다가 나도 찾았다. 좀처럼 내 눈에 띄지 않던 네 잎 클로버를 마음의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발견하게 됨에 스스로 좋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진이 소식에 울적했던 마음이 갑자기 정리되는 느낌이다.
'내 조카 진이 잘 가, 부디 편안하렴...'
아침에 빈속으로 그냥 나온데다가 정신적으로도 피로한 상태라 휴식과 체력충전이 필요한 적당한 시간에 빠가 나타났다. 길 위에서 우리 앞에 걸었던 모자가 자리하고 있었고, 나중에 젊은 남녀 순례자가 들어왔다. 쵸코렛이 듬뿍 들어간 빵과 주스, 초코우유를 주문했다. 순례길 내내 모닝커피를 즐기던 남편은 오늘은 웬일로 오렌지 주스를 주문했다.
빠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출발했다. 순례길의 한적함이 기운을 떨어뜨리는 듯 하지만, 간간이 만나는 순례자들을 만나면 우린 땅끝까지 걸어서 간다는 자부심과 함께 깊은 동지애를 절로 느끼게 된다.
빠에서 나와 마을을 지나고 들길, 숲길을 두 시간 정도 걸었을 무렵 강물과 함께 멋진 중세시대 다리가 나왔다. 자전거로 순례하던 이들이 멈춰 다리아래로 내려가는 걸 보고 우리도 따라 내려갔다. 탐브레강을 건너는 마세이라 다리(Ponte Macira)다. 다리 아래에 있는 작은 건물 두 개는 물레방아 제분소라는데, 우리나라의 물레방앗간이 떠올랐다. 이 마을은 2019년부터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로 지정되었을 만큼 아름다운 마을과 중세다리와 탐브레강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지붕이 낮은 건물에 종탑이 설치되어 있는데, 성 블라사의 예배당이라 한다.
푸엔테 마세이라를 지나 다시 숲길로 들어섰다.
오전 11시 반경 네그레이라에 도착, 마을을 통과하여 다시 숲길로 들어서는 건가 싶은 자리에 공립알베르게가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에 접어들면서 먹을 걸 좀 먹고 가자는 남편의 말에 동의하지 않고 숙소가 어찌 될지 모르니 우선 체크인을 하고 점심을 먹자 했었는데, 우리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남편말을 들었어도 상관없었을 것 같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체크인 시간까지는 약 1시간 20분 정도 시간이 남았지만 다시 마을로 들어가 식사하고 오기에는 매우 번거로운 상황이다.
의자에 앉아 쉬면서, 딸을 가슴에 묻고 슬퍼하고 있을 동생내외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알베르게는 비교적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 하나둘 침대가 차기 시작하나 여유롭다.
대충 짐정리 해놓고 왔던 길을 다시 걸어 시내로 들어갔다. 순례를 떠나는 아빠의 바지자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듯한 조각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남편이 찾은 빠에 들어가 샐러드, 쇠고기 스테이크에 맥주 두 잔 시켜 함께 먹었다. 매우 허기졌었는데 잘 먹었다. 생각해 보니 길을 걷다가 9시 전에 빵과 우유로 아침 먹고, 그 이후 아무것도 못 먹었다. 전날 휴식을 취했던 게 아마도 순례의 패턴이 무너진 듯, 다음날 걸으면서 먹을 간식거리를 아무것도 안 샀었기에 배낭에 물 밖에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마트에 들러 사과 2개, 납작 복숭아 4개, 자두 8개, 그리고 바게트빵이랑 크로와상 2개, 물 2개, 우유 등을 사가지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날이 뜨거워 전광판에 30도를 찍고 있다.
샤워하고 빨래해 널고 돌아오니 남편은 자고 있다. 야외 의자에 앉아 안티푸라민으로 다리 마사지도 하고, 일기도 쓰고 돌아오니 계속 자고 있다. 나도 피곤하여 누웠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참 하릴없는 인생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역만리 떨어져 있어 조카가 세상을 떠났는데도 가보지도 못하고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마음이 고단하다.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진이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위령기도를 했다.
다음날 비예보가 있다. 마트에서 장 봐온 거 가지고 내려가 과일 씻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크로와상과 우유 그리고 자두 4개 꺼내서 저녁식사를 했다.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밝은 빛에 늦은 시간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