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베이로아(Olveiroa)에서 피스테라( Fisterra)까지 34.9km
8시간 소요 (am 5:50 ~ pm 1:50)
2024년 6월 9일 주일
지난밤도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대충 준비하고 언제나 그렇듯이 6시경 길을 나섰다. 지난 밤늦게 도착한 순례자들이 있었는지 길 건너 주방으로 쓰이는 방바닥에 매트를 깔고 잠자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덕분에 간단한 요기는 생략하고 그냥 출발했다.




아들딸로부터 진이 장례식장에 가 있다는 문자가 와 있었다. 조카가 세상을 떠난 마당에 순례길을 걷고 있는 상황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운데 아들딸이 최선을 다해주니 고맙다. 진이에게 영원한 안식을 청하며 묵주기도를 시작했다.
마을을 빠져나와 어두운 숲길로 접어들었다.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구름은 많다. 남편이 길이 어두우니 스틱을 사용하길 권하는데 묵주를 손에 들고 있어 불편해 그냥 걷는다며 필요하면 꺼내 쓰겠다고 얘기했지만, 내심 잔소리같이 느껴져 내뱉은 말이 아니었는지 혼자 생각했다. 그저 내 뜻대로 하고 싶은 생각들이 남편의 배려를 무 자르듯이 뚝뚝 쳐버리는 건 아닐까?


피스테라를 향해 걷는 사람들을 오가며 또 나름 익숙해진 사람들이 생겼다.
전날도 전전날도 같은 숙소에서 묵은 빨간 스타킹 신은 남자가 오늘도 우리를 지나쳐 앞서 걸었다.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빠를 만나 빵과 우유, 커피로 아침식사를 했다. 같은 테이블에 프랑스부부가 함께 앉아 휴지로 싼 체리를 내놓으며 같이 먹자 한다. 예의상 한 개씩만 먹으며 웃음으로 답했다. 피스테라로 가냐 물으셔서 그렇다고 답했다. 노부부가 건강하게 함께 걷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게다가 사로에게 참 다정다감한 모습은 우리도 배워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화장실 앞에서 만난 여자는 한국인 여자 같은데 그녀도 말을 안 하고 나도 말을 안 하고, 우린 좀 묵뚝뚝하다.





그들에게 인사하고 먼저 나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둠은 어느새 가시고 하늘도 조금씩 파란색을 내비치는듯하다.
오늘도 역시 꽤 높은 오르막에 경사가 심한 내리막을 거듭했다.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는 법.



걷다 보니 피스테라와 묵시아 방향으로 갈라지는 지점이 나왔다. 우린 예정대로 피스테라방향으로 갔고, 카페에서 만난 한국인 여자와 또 다른 남자는 묵시아방향으로 갔다.


방향을 잡고 길을 걷다 보니 빨강스타킹도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앞뒤로 아무도 안 보이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사람들. 긴 다리로 걷다 보면 우리처럼 다리 짧은 동양인을 따라잡긴 식은 죽 먹기겠지...









외딴곳에 있는 성당에서 잠깐 다리를 쉬었다. 누군가의 소원의 물증들이 올려져 있고, 흘리고 간 것인지, 끝이 보이는 길목에 일부러 놓고 간 것인지 모를, 아직 쓸만한 등산화가 나란히 놓여 있다.









출발한 지 4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숲길 나무들 사이로 바다가 나타났다. 가슴이 확 트이는 느낌과 함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바닷가 마을을 향해 내려가는 길을 꽤나 가팔랐다. 피스테라에서 출발을 했는지 아님 한 바퀴 돌아 다시 산티아고로 가는 사람들인지 오늘은 어제보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듯하다. 그들은 우리와 반대로 꽤나 힘들게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음에 부엔카미노를 성실하게 외쳐주었다.












구불구불 해안선을 따라 첫 번째 나온 Cee라는 마을은 참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바닷가 마을길을 돌아 돌아 성당 앞을 지나면서 잠시 들어가 성호를 그었다. 미사준비가 되어있어 생각하니 마침 주일이다. 그러나 알베르게에 우리 침대가 없을까 걱정되어 멈출 수 없으니 아쉽다. 혹시나 세요 찍을 수 있나 둘러보다 돌아서는데 어느 분이 우리에게 성당건물 뒤로 돌아가면 세요 찍는 곳이 있다고 알려주신다. 고맙다 인사하며 성당을 한 바퀴 돌고 있는데 그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리고는 함께 들어가 세요를 찍어주셨다. 그라시아스! 인사하고 나오며 친절하신 그분은 혹시 신부님이 아니셨을까 생각했다.



바닷가마을에 눈길을 빼앗긴 남편이 함께 걷다가 사진 한컷 찍겠다 멈춘 사이, 난 먼저 가겠다며 앞서 걷기 시작했다.



마을을 지나 다시 산길로 접어들 때까지도 남편은 안 나타났다. 혼자서 순례 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아무도 없이 혼자인 상태도 되고 마주치는 사람이 생기기도 하고 때론 날 지나쳐 먼저 앞서가는 사람도 있고.
혹시 내가 다른 길로 갔을까 걱정이 되는지 남편으로부터 산 넘고 있냐고 카톡이 왔다. 방금 빨강스타킹이 자신을 앞서 지나갔다는 남편의 문자를 읽는 사이 빨강스타킹이 내 옆을 지나쳐갔다. 방금 내 옆을 지나갔다 했더니 안심이 되는지 '아 앞에 가고 있구나'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혼자 걷는 시간을 방해받기라도 한 듯한 묘한 기분은 뭐지? 남편이 있어 든든했음을 간과한 투정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뒤따라온 남편과 숲길을 빠져나오며 만난 바다가 보이는 동네 빠에서 멈췄다. 성당에서 출발한 지 거의 한 시간쯤 지난 정오가 가까운 시간이다. 시원하게 맥주 한잔 마시고 가자하며 야외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또르띠야와 빵 한 조각 함께 주문해 먹었다.






이 마을을 지나며 동네 주민인듯한 남자를 만났다. '올라'하고 인사하니 어디서 왔냐 물으신다. 난 싸우스 코리아라 대답하고, 남편은 생장이라 대답하고.. 출발점을 묻는 게 아니라 국적을 묻는 거 아니었겠나?



마을을 지나 또다시 산길로 접어들었다. 약 한 시간쯤 지난 오후 1시경 숲길이 끝나면서 푸른 바다가 보이고 반쯤 물속에 잠겨있는 거북이 모양을 한 아름다운 마을이 보인다. Cee의 풍경은 서막에 불과했었구나. 이게 진짜였어.
피스테라가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지니 눈물이 나오려 한다. 결국은 땅끝마을까지 왔구나.












물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가 목표였지만, 우리의 끝은 피스테라였기에 마침표를 찍을 때가 이제야 온 거다.
바닷가 길을 한참 더 걸어서야 우리가 묵을 공립알베르게에 도착할 수 있었다. 1층은 거의 차고 우리는 2층으로 올라왔다.
2층에는 침대가 5개뿐이라서 훨씬 조용할 것 같다. 조금 더 늦었다면 진짜로 못 들어올 뻔했겠다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몇 가지 주의사항과 함께 침대를 배정받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이후 이어지는 피스테라 코스에 대한 완주증도 받았다.



우선 침대 옆에 배낭 놓고 나와 알베르게 앞에 있는 빠에 들어가 점심으로 바질 스파게티를 먹었다. 맥주 한잔씩 곁들여 먹는 식사는 꿀맛이었다. 식사를 하는 중 익숙한 얼굴들이 지나갔다. 길에서 만났던 청년들 무리도 우르르 지나간다.



식사를 마친 후 0km 지점 등대까지 걷기 시작했다.
관광버스 또는 승용차를 타고 온 관광객들도 많고, 때론 자전거 순례자들이 무리 지어 지나가기도 했다.








7년 전 연이가 바람에 머리를 흩날리며 기념사진을 찍었던 그 자리, 0km 표지석에서 우리도 번갈아 사진을 찍어주고 있으니 뒤따라오던 외국인 남자가 함께 사진을 찍어주겠노라 하신다.


모든 건 의미를 담아야 내 것이 되는 법.



멀리 대서양을 바라보며 그동안 일들을 생각했다. 아무 일 없이 그저 편안한 순례길이었으면 더욱 좋았겠으나 나름 아픔을 안고 걸었기에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좋아할 일을 두고 좋아만 할 수 없다는 것도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쩌겠나.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걸.






탁트인 대서양이 보이는 야외테이블에 앉아 난 주스 한 병 남편은 맥주 한 병 마시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기념품샾에 들어갔다. 남편은 기념품 하나 사고 싶어 하는 듯했으나 난 별로 기념품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 나의 반응에 시큰둥해진 남편은 그냥 앞서 걸으며 다 내려올 때까지도 뒤 한번 안 돌아보고 앞만 보고 걷는다.
딱 싫어하는 모습. 그래놓고 자긴 아무렇지도 않다 하겠지.



결국 내려오면서 성당에 들러 주일미사를 봉헌하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못하고 돌아왔다.
우리 알베르게 바로 옆 버스정류장에 프랑스부부가 나란히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꿀꿀하던 마음을 뒤로하고 반가워 인사를 했다. 다시 못 볼 반가운 인연들이다.
숙소에서 씻고 간단한 세탁 하여 테라스에 널었더니 강한 햇빛에 잘 마른다.
주일저녁이라 문 닫은 식당들이 많아 저녁식사를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바닷가로 나갔다가 브라타치즈가 들어간 샐러드와 뽈보, 맥주와 와인을 주문해 피스테라 도착 만찬을 했으나 남편의 웃음기 없는 얼굴에 즐거운 식사는 되지 못했다.



이래저래 답답하고 서운한 마음에 식사 마치고 나와 바닷가에 홀로 앉았다.
순례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의 무수히 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가며, 그냥 눈물이 났다.
숙제를 마치고 난 후의 뿌듯함과 함께 너무 큰 변화를 기대했었나 싶은 허탈감 등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여러 가지로 복닥거리는 마음들을 쓸어안으며 한참을 앉아있었다.
그래도 내일 하루 더 걸어야 해
우린 내일 묵시아로 떠날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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