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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산티아고 순례

[까미노 11.] 제발 우리가 누울 침대를 허락해 주세요! | 240514

by 바이올렛yd 2024. 10. 9.

 

벨로라도(Belorado)에서 아따뿌에르까(Atapuerca)까지  29.6km 
7시간 10분 소요 (am 5:50 ~ pm 1:00)


2024년 5월 14일 화요일

 

전날 하늘은 비 내릴 준비를 단단히 하더니 결국 밤사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 잠이 깨었으나 두 눈 꼭 감고 좀 더 자려 애쓰고 있는데 부스럭대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누군가 방문을 열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가 몇 번을 들락거려 더 이상 잘 수가 없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4시다. 70대 어르신 멤버들이다. 들락거리는 분들은 남자분들이었고 여자분은 침대에 걸터앉아 짐을 챙기고 있었다. 우리도 5시경 짐을 챙기기 시작해 주섬주섬 들고 방을 나왔다. 화장실에 들어가 짐을 마저 챙겨 동키서비스 보낼 내 배낭을 비닐백에 넣어 묶어 준비하고, 비 젖은 야외 테이블에 앉아 간단하게 우유와 빵 한쪽으로 요기를 하였다. 

오늘 목적지는 아헤스까지 27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야 하기에 좀 더 일찍 출발하기로 하고 동키 보낼 내 배낭을 전날 리셉션이 있던 레스토랑 문 앞에 놓고 출발했다.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준비하던 70대 어르신 멤버들도 결국은 우리와 같은 시간에 출발하셨다.

 

벨로라도의 밤거리를 헤쳐 나와 어둠 속을 한참 걸으니 비가 부슬부슬 내려 우비를 안 입기엔 옷이 젖을 것 같은 날씨다. 동이 트는 풍경도 볼 수가 없고, 지난 며칠 동안 내내 환상적인 새벽하늘을 보며 걷다가 구름 가득한 하늘을 보니 아쉽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지. 

멀리 또산또스의 라뻬냐 성모성당이 보인다. 동굴을 파내어 만든 것이 특징이라 한다.

 

비가 오락가락하여 우비를 입었다 벗었다 하며 한 시간 반쯤 걸어 에스삐로사 델 까미노에 도착했다.

 

마을을 벗어날 무렵 트래킹 멤버 중 제주에서 오신 분을 길에서 만났다. 출발한 날부터 우리와 거의 같은 일정으로 걷고 있는데 출발시간 차이로 며칠 만에 길에서 만난 것 같다. 전날 벨로라도 성당에서 운영하는 작은 알베르게에서 묵었다 하며, 공립알베르게에서 대기 중 누군가의 안내를 받고 이동했는데 소수만이 이용할 수 있어 잠자리가 편하고 좋았다고 한다. 오늘도 역시 일행들과 떨어져 앞서 걷고 있다. 트래킹 멤버 중 가장 젊어서 걸음이 빠르다고 했다.

 

벨로라도로부터 12km 지점 비야프랑까 몬떼스 데 오까에 도착했다. 마을 초입에 있는 바에서 샌드위치와 오렌지주스, 카페콘레체로 아침식사를 했다. 출발 후 처음 만나는 바라서 우리처럼 아침식사를 하는 순례자들이 여러 명 있었다. 우리 건너편 테이블에 자매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 음식을 먹고 있었다. 출발 전 화장실에서 그분들과 마주쳐 웃으며 인사를 나눴는데, 배낭과 벗어놓은 우비를 챙겨 밖으로 나가니 그분들이 우비를 챙겨 입으며 출발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분들 중 한 분이 날 보고  "Your smile is a christmas smile, so cute!"라 말한다. 영어를 잘 할 줄 모르지만 무슨 뜻인지는 바로 알아듣고 "Thank you very much!"라고 답했는데, 사실은 그분들의 웃는 모습이 참 예뻤는데 그 말을 못 해줬다. 길을 걸으며 다시 만나면 '당신의 미소가 더 아름답다'라고 꼭 말해줘야지 생각했는데 그 이후로 못 만났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고, 갈길은 멀다.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있는 질퍽한 산길을 따라 걷는 길은 자전거로 순례하는 분들에게는 최악이었다. 바퀴에서 진흙탕물이 등뒤로 다 튀어 올라가 뒤에 실은 배낭이며 옷에 흙탕물 투성이가 되고 있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숲길을 오르락내리락 한참을 걷다 보니, 트래킹 멤버 중 나와 띠동갑인 어르신이 여전히 절룩거리며 불편하게 걷고 있다. 일행들에게 뒤처질까 봐 지나온 바에서 쉬지 않고 계속 걷고 있다고 하셨다. 이분들은 오늘 24km 지점인 오르테가까지 걸을 예정이란다. 

 

떡갈나무와 소나무 숲길을 지나니 길가에 1936이라 쓰여있는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으로 살해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로 카이도스 기념비라고 한다.

<스페인 내전>
1936년 7월부터 1939년 3월까지 에스파냐에서 인민 전선 정부에 대하여 군부와 우익의 여러 세력이 일으킨 내전을 말한다. 1936년 프랑스와 에스파냐에서는 파시스트에 반대하는 인민 전선 내각이 들어섰는데, 에스파냐에서는 프랑코 장군의 파시스트 세력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 내란에서 소련은 정부군을 지원하였으나, 영국과 프랑스는 중립을 지켰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날이 좋았으면 얼마나 아름다운 길이었을까? 아직 기온이 높지 않은 완연한 봄날씨, 연둣빛이 아름답다.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서도 우비를 입었지만 그때엔 빗줄기보다는 바람이 너무 세서 보온의 역할을 더 많이 했었던 반면, 이번엔 비가 제법 많이 내려 길도 질퍽하고 우비 안쪽으로 빗물도 스며드는 느낌이다. 신발 속은 아직 멀쩡하지만 혹여나 신발 안으로 물이 흘러들어 갈까 봐 스패츠를 꺼내어 발목에 끼웠다. 제대로 된 우비가 준비되지 않아 옷도 신발도 거의 젖은 채로 걷는 사람들도 있었다.

 

24km 지점 산 후한 데 오르테가에 도착했다. 길가에 있는 공립알베르게 앞에 우리와 같이 출발한 70대 어르신 멤버가 줄을 서 계셨다. 아마도 여자분이 샌들을 신고 있어 걷기가 많이 힘들어 보이더니 사정상 택시 타고 점프하신 모양이었다.

 

우린 다음 마을인 아헤스까지 갈 예정이라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걷다 보니 두 갈래 길이 나와 망설이고 있는데 길에서 만난 한국 남자분이 다가와 오른쪽 길로 가야 한다 말씀하신다. 아헤스까지 약 4km 정도밖에 안되니 조금만 더 힘내자.

 

오르테가를 지나니 비가 그치고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르테가에서 멈췄으면 아마도 못 보았을 풍경이다. 구름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이토록 반가울 수가 있을까?

 

푸른 풀밭에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너희들도 역시 좋은 땅을 차지하고 살고 있구나. 우리나라의 비좁은 축사에 갇혀 살고 있는 비육소들의 처지와는 다르게 이토록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 늘 이런 풍경들을 보아온 이나라 사람들은 아마 이것이 당연한 거겠지.

 

언덕아래 아헤스가 어서 오라 손짓하듯 딱 나타났다.

 

아헤스에 도착하여 배낭을 보낸 공립 알베르게로 가니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기다리는 줄도 없고, 동키 보냈던 가방만 수두룩하게 있다. 리셉션에 물었더니 예약을 했냐고 묻는다. 예약 안 했다고 했더니 현재 풀부킹이라 침대가 없단다. 공립알베르게에서 예약을 받았단 말이야? 원칙에 어긋나는 상황에 당황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다른 알베르게를 찾아보니 몇 개 안 되는 알베르게가 모두 풀부킹이라 한다. 알고 보니 단체순례팀들이 예약하는 바람에 침대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다시 거리로 나와 동네 모퉁이에 서 있는 아주머니들께 다른 알베르게를 가리키며  '알베르게?'하고 말했더니 그곳은 오늘 휴무라며, 이미 우리가 가본 알베르게를 가보라 알려주신다. 모두 풀부킹이다 하며 난감해했더니 2km 더 가면 마을이 나오니 가보라 한다. 어쨌든 말도 안 통하는 우리에게 어떻게든 도와주려 했던 그분들의 마음이 전해져 그래도 위로가 되었다. 

 

동키서비스 보냈던 내 배낭을 찾아 짐을 남편의 배낭에 나눠 담고 내 배낭을 짊어졌다. 어쩔수 없는 상황으로 인한거지만 시험삼아 배낭을 메고 걸어봤다. 무릎이 아파 계속 동키를 보냈었는데, 무겁긴 했지만 그런대로 걷기에는 문제없는 것 같다. 내일부터 배낭을 메고 걸어볼까 했더니 남편은 대답이 없다. 

 

아헤스 마을 아주머니의 말씀대로 2km 정도 걸어 아따뿌에르까에 도착했다. 

 

'제발 알베르게에 우리가 누울 침대를 허락해 주세요!'

 

마을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대기 중인 분들께 선착순임을 확인하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연이에게 우리의 상황을 전하니 침대 찾아 헤매는 상황이 있기는 하구나 하며 신기해했다. 

 

줄을 서서 대기하던 중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3일 전 나헤라를 떠나며 헤어졌던 젊은 부부 중 남편이 우리 앞에 나타나 동키서비스 차량을 만나 배낭을 찾고 있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왜 여기에 있냐 물었더니 아내가 너무 힘들어해 더 이상 못 가고 이곳에서 머물려고 길을 멈췄다고 했다. 함께 걷던 그라시아님을 비롯한 다른 분들은 다음마을까지 간다며 이미 떠났고 젊은 부부만 남았다고 해서 잘했다고, 다시 만날 운명이었나 보라며 좋아했다. 

 

5인실로 배정되어 들어가니 이미 두 분이 들어와 있었다. 아헤스에서 헤매지 않고 바로 왔으면 아마도 창가자리 나란히 배정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몇 분 전만 해도 우리 누울 침대만 있게 해 주길 바랬는데, 창가자리 침대를 아쉬워하고 있는 내가 정말 어처구니없구나 생각했다.

 

우리가 도착한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한국인 모녀와 그의 친구가 다리를 절룩이며 나타났고, 싹싹한 청년들 무리가 또 들어왔다. 비어있던 내 침대 위칸에 키 크고 흰 얼굴에 빨간 옷을 자주 입던 청년이 들어왔다. 한국인 모녀도 아헤스에 침대가 없어 여기까지 왔노라며 오늘 30km를 걸어 너무 힘들다고 얘기했다. 

 

우중순례로 힘들었던 흔적들을 씻고 빨래를 해서 밖에 널고 난 후 밖으로 나갔다. 워낙 작은 마을이라 구멍가게 비슷한 마트가 하나밖에 없어 늦게 가면 필요한 것이 없을 수도 있다고 젊은부부가 말해줘 우선 마트를 찾아갔다. 정말 조그마한 가게 안에 그래도 다행히 우리가 필요한 것들은 살 수 있었다. 순례자들이 잘 찾는 것들 위주로 준비해 놓은 거겠지 싶다. 알베르게 마당 벤치에 앉아 시리얼과 우유, 그리고 납작 복숭아로 점심식사를 했다.

 

하늘은 수시로 변해 언제 비를 뿌리고 지나갔는지 말려놓았던 빨래가 젖어 다시 말리는 상황이 되기도 했다. 변화무쌍한 하늘을 믿을 수 없지만, 마냥 알베르게에만 있기에는 시간이 아까워 우산을 들고 밖으로 다시 나갔다.

 

성당 쪽으로 올라가니 시야가 확 트이는 풍경이 웅장하게 펼쳐진다. 

 

성당에서 내려오는 길에 숙소를 찾아 헤매는 순례자를 만나 안타까웠다. 아마 저들은 아헤스에서 이곳으로 밀려왔을 텐데 여기도 침대가 없어 어쩌나? 괜한 염려일지 모르나 어쨌든 우리 상황보다 더한 상황일지 몰라 안타까웠다. 

 

저녁시간이 되자 알베르게 주방에서 솔솔 한국의 라면냄새가 났다. 저녁식사는 밖에서 든든하게 먹자 하여 밖으로 나가면서 보니 젊은 부부가 스파게티면을 삶아 라면수프를 넣어 먹고 있었다. 맛있어 보인다 했더니, 배낭 속에 라면수프를 싸가지고 와서 한국음식 고플 때 얇은 스파게티면 사다가 종종 끓여 먹는다며 수프 몇 개 줄 테니 먹어보라 한다. 사실 나도 남편 모르게 싸 온 라면수프 두 개가 배낭 속에 있었기 때문에 사양했다. 우리도 나중에 한국음식 고프면 한번 해 먹어 봐야겠다 말하며 밖으로 나왔다.  

 

마을 끄트머리쯤 있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주 메뉴는 피자였다.

배가 많이 부른 꽁지머리 스페인 아저씨는 꽤나 위트 있었다. 피자를 주문하고 나중에 나이프를 부탁했더니 던지는 시늉을 하여 당황스러워하며 웃으니 그도 웃는다. 피자는 푸짐하고 맛도 있었다.

 

기온이 한 자릿수로 떨어져 속에 패딩을 끼어 입어도 춥던 차에 뱃속을 든든히 채우니 그나마 낫다. 식사를 마치고 알베르게로 돌아가는 길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또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안 챙겼으면 아마 또 비를 맞고 들어갔을지 모를 상황이다. 

 

내일은 부르고스로 간다. 일기예보를 보니 어제까지와는 다르게 앞으로 당분간 춥고 흐릴 모양이다. 대책 없이 아프면 큰일이니 몸을 따뜻하게 해야겠다 싶어 침낭 속에도 패딩을 입고 잠을 청했다. 젊은이들이 많이 들어오더니 그들만의 파티가 열린 모양이다. 주방에서는 늦도록 그들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내 침대 위층 청년도 그들과 합세하여 늦은 시간에야 방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