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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산티아고 순례

[까미노 12-1.]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빌바오 | 240516

by 바이올렛yd 2024. 10. 29.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투어>

부르고스 → 빌바오  → 부르고스


2024년 5월 16일 목요일

 

사방에서 코 고는 사람들 덕분에 잠은 한숨도 못 잤다. 낮에 추워서 먹은 따뜻한 커피 때문인지 어쨌든 하얗게 밤을 새웠다. 새벽 5시에 짐을 챙기기 시작하여 6시경 누군가 알려준 대로 옆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대문이 잠겨있다. 난감한 상황이다. 빌바오행 새벽 6시 30분 버스를 예매해 두었는데 문이 잠겨 밖으로 나가질 못하니, 마음은 조급해지고 시간은 자꾸 가고... 할 수 없이 1층 로비로 가니 몇몇이 우리처럼 미리 나가려 대기하고 있다가 우리 보고도 문이 열리는 시간이 6시 30분이라 알려준다. 그동안 지나온 알베르게에 비해 부르고스 공립 알베르게는 철저했다. 결국 알베르게 문은 6시 30분에 열렸고, 우린 버스를 놓쳤다. 애초에 안내받은 대로 알베르게 문이 열리는 시간을 믿고 일정을 짰다면 어땠을까 후회도 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새벽버스를 포기하고 10시 30분 버스로 다시 예매하고, 구겐하임미술관 입장권도 11시를 1시로 변경했다.

 

6시 30분에 문이 열리면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갔다. 젊은 부부도 일찌감치 준비하고 나와 밖으로 나갔고, 그라시아님은 새벽에 일어났지만 아직도 부르고스에서 연박을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이미 퇴실준비를 하고 있던 차라 밖으로 나가 출발시간까지 주변을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우선 아침식사를 하려고 알베르게 바로 앞에 있는 바에 들어갔더니 젊은 부부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우리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젊은 부부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고, 우린 바에서 빵과 주스로 아침을 먹은 후 예약한 호스텔에 미리 배낭을 맡겼다.

 

기온이 차서 가지고 있는 옷을 여러겹 겹쳐 입었으나 몸이 움츠러든다. 동네 한 바퀴 돌며 거리구경하자 했지만 날도 춥고 어처구니없이 몇 시간을 날려버리고 난 상황에 마음도 개운치 않으니, 그저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 같다. 성당에 들어가 아침미사 참례 할까 했지만 어느 성당에 문이 열려있는지 알 수가 없다.

 

전날 이곳에 도착하면서 지나온 길들을 되짚어 잠시 돌아본 후,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바를 찾아 들어갔다. 몸에 한기가 느껴져 따뜻한 코코아로 몸을 녹이고 나서야 정신이 드는 듯 하다. 딱히 갈 곳도 없고 버스 탑승시간 무렵까지 바에 앉아있었다. 배낭을 메고 나오는 순례객들이 있는 걸 보니 호스텔과 함께 운영하는 바였던 모양이다. 새벽출발을 철칙처럼 여기고 있는 우리에겐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느지막이 출발하는 사람들의 여유가 낯설다.

 

버스터미널에 가니 벨로라도에서 같은 방에 묵었던 어르신 세분이 계셨다. 알고 보니 우리와 같은 버스를 타고 빌바오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신다고 한다. 부르고스로 돌아오는 버스시간도 같다. 이 스케줄이 당일치기 일정상 최선이었나 싶기도 하나 빌바오에서의 시간여유가 너무 없어 아쉽다. 버스시간이 거의 되어 탑승하려 줄을 서있는데 외국인 여자분이 나보고 '빌바오?' 하고 묻는다. 바로 '예스'라 답했다. 영어공부 좀 열심히 해둘걸. 대화의 기회는 많으나 영어를 못해 대단히 아쉽다.

 

예정했던 시간보다 4시간이나 늦은 10시30분 버스로 빌바오를 향해 출발했다. 어쩌면 새벽버스 탔으면 약 4시간가량 소요된다 했으니 더 지루하고 힘들었을 수도 있었을 거라 위안을 했다. 우리가 탄 버스는 중간에 1회 정차하여 12시 반경 도착할 예정이라 한다. 좌석이 맨 뒷좌석인걸 보니, 하마터면 이마저도 못 탈 뻔했다. 

 

오랜만에 다리를 쉬고,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 풍경을 놓칠세라 눈을 떼지 못했다. 느린 세상에서 갑자기 점프해온 것처럼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속도감이다.

 

빌바오에는 예정보다 약간 늦은 시간에 도착했다. 구겐하임미술관 예약시간 오후1시에 맞추느라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미술관으로 재빠르게 이동했다. 

 

커다란 강아지 그림이 있는 곳 앞에 택시가 멈췄다.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의 마스코트인 꽃장식 강아지가 하필이면 지금 작업 중인지 가려져있다. 제프쿤스의 작품으로 약 7만송이 꽃으로 장식된다는 빌바오의 대표 강아지를 못 보고 가야 하는 게 매우 아쉽지만 우여곡절 끝에 빌바오에 왔으니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누리고 돌아가야 한다. 

 

빌바오의 날씨는 약 20도로 온화했다. 아침일찍부터 추운 부르고스에서 떨다가 와서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유명 건축가 프랑크 게리가 설계했다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가려져있는 강아지 뒤에 우뚝 서있다. 


산티아고순례를 준비하면서부터 빌바오에 가고싶다 노래를 부르던 남편은 신이 났다. 은퇴 후 서양미술사를 공부하고 조각도슨트활동을 하면서 빌바오는 꼭 가고 싶은 곳 중 하나가 되었단다. 산티아고 순례에 집중하기도 어려울 텐데 빌바오 투어를 끼워 넣으려 할 때 나와 연이는 무모한 계획이라 말렸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우리가 직접 실행에 옮기기에 너무 어려운 과제 같았는데 비아씨의 적극적인 지지와 함께 흐릿했던 계획이 꼭 해야 하는 과제로 되어버렸고, 어쨌든 우리는 지금 빌바오에 있다. 힘들고 피곤하지만 뭔가 해내고 있는 중인 스스로에게 맘속으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스페인 빌바오에 있는 구겐하임미술관,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은 뉴욕의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립하여 국제적 연결을 늘리고 있다. 빌바오 뿐만 아니라 베네치아, 베를린 등에도 있다. 프랭크 게리가 설계하였으며 1997년 개장하였다.
미술관의 건립이 도시 재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으며, 이후 이와 같이 상징문화시설을 통해 도시재생효과를 얻는 것을 빌바오 효과라 칭하게 되었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도 이 미술관을 이유로 빌바오의 도시 재생을 성공적인 대표 사례로 지목하곤 한다. 특히나 한국이나 대만, 북미와 달리 재개발이 드문 유럽에서의 사례이다 보니 더욱 지목되는 것이 크다. 사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유럽에서도 독보적으로 재개발이 많은 국가이기는 한데 그래도 한국과 대만, 북미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출처 - 나무위키

 

 

 

 

 

 

 

 

 

 

 

수많은 작품 중 특히 인상깊었던 작품은 아프리카 가나 출신 작가 엘 아나추이 작 '일어나는 바다'로  폐품을 이용해 표현한 것이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엘 아나추이 作 '일어나는 바다'

 

 

 

미술관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그다지 여유롭지 않아 후다닥 전시 작품을 관람하고 밖으로 나와 빌바오를 탈바꿈하게 한 구겐하임 미술관 건물 외관과 함께 주변을 둘러봤다.

 

스텐 볼을 이용한 작품은 작년에 나오시마에서도, 최근 이천 국제 조각심포지엄에서도 보았는데 이곳에도 있다. 인도 출신 작가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이다.

대형 거미조각 'Maman'은 프랑스 출신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으로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연민을 거미로 표현했다고 한다.  

 

부르고스로 돌아가는 버스시간에 맞춰 오후3시 30분경 택시를 타고 다시 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빌바오 부르고스 간 버스는 정차하는 횟수에 따라 소요시간이 너무 차이가 많이 나서 새벽에 출발하는 버스는 4시간가량 걸리는데 반해, 부르고스로 돌아가는 버스는 직통버스로 1시간 45분 만에 도착할 수 있어 내일을 위해서는 꼭 예약한 버스를 타야만 한다.

미술관 투어를 하는 중 가방에 들어있던 간식을 먹기는 했지만 새벽부터 시달린 탓에 눈도 십리는 들어간 것 같이 불편하고 기운도 없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터미널 건물에 있는 바에 들어가 샌드위치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혹시라도 초행길이라 버스타는 곳을 몰라 우왕좌왕할 수 있으니 부리나케 부르고스행 버스승강장을 찾아 내려가니 어르신 세분이 금방 뒤따라 오셨다. 버스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 정확히 6시경 부르고스에 도착했다. 피곤이 몰려와 부르고스를 향해 이동하는 내내 정신없이 졸았다.

 

버스터미널 바로 옆에 있는 호스텔에 체크인 하고 새벽에 맡겨둔 배낭을 찾아 침실로 들어가니 안식처가 따로 없다. 얼마 만에 맞이하는 우리들만의 방인가?  씻고 난 후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전날 갔던 한국 음식점에 다시 갔다.

 

모두들 떠난 줄 알았더니 발랄한 노란바지 아가씨와 함께 길에서 만났던 청년들이 식사하고 있었고, 며칠 전 산토도밍고에서 만났던 부부가 먼저 알아보고 인사했다. '아! 우리 순례 중이었지!' 비로소 우리가 산티아고길 위에 다시 돌아왔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우리가 빌바오에 다녀왔노라 했더니 그분들도 빌바오에 가려 했다가 너무 피곤하여 그냥 쉬었다고 한다. 어쨌든 다시 아는 얼굴들을 만나니 그저 반갑고 즐겁다.

 

저녁은 비빔밥과 삼겹살을 주문했다. 긴긴 하루를 보내고 처음 제대로 된 밥을 먹는 듯 꿀맛이다. 

 

밥순이 맞다.  이제야 살 것 같다.

 

새벽차를 놓치고 나서 빌바오 행을 포기하였다면 더 알차게 보냈을까? 결국 부르고스 대성당 관람은 못했지만 우린 빌바오투어라는 과제를 해냈다. 매우 어려운 문제를 풀어낸 것처럼 뿌듯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