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로뇨(Logrono)에서 나헤라(Najera)까지 29.6km
7시간 30분 소요 (am 6:10 ~ pm 1:40)
2024년 5월 11일 토요일
새벽 4시 옆침대 그라시아 님이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간다. 나도 서서히 준비할까 했지만 나헤라 알베르게의 침대에 여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여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5시경 알베르게 식당으로 나오니 젊은 부부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라시아 님은 벌써 출발했는지 안 보인다. 언제까지 배낭을 보내고 걸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곧 직접 짊어지고 걸을 날이 올 것이라 믿고 배낭을 꾸려 동키서비스 신청했다. 5시 반경 남편을 깨워 간단하게 빵과 우유로 요기를 하고 6시 10분경 알베르게를 나섰다.
하늘빛이 전날과는 다르게 푸른빛이다. 동이 틀 시간이 머지않아서 별이 보이지 않겠지만 도시의 불빛 때문에 안 보일 거라 생각했다. 새벽에 떠들던 사람들이 밤새 거리를 누비며 놀던 청년들이었음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남사스럽게도 노상방뇨하는 아가씨를 목격하였고, 시끄럽게 떠들며 돌아다니는 무리들도 보였다. 그동안 지나왔던 조용하고 작은 마을들과는 다른 느낌이다.
순례자동상을 지나 도시를 빠져나오는데 키크고 마른 미국청년을 만났다. 오늘은 다리가 불편한지 장대를 들고 혼자 걷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큼성큼 긴 다리로 우리를 지나쳐 앞서 걸어간다.
로그로뇨 도심을 빠져나와 산책로를 따라 약 2km 정도 걸으니 숲길이 나온다. 드넓게 펼쳐져 있는 밀밭이 아침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난다.
다리를 건너 숲길로 들어서니 그라헤라 공원의 저수지가 나온다.
아침운동하는 사람도 보이고 이른 아침부터 손자를 데리고 나왔는지 어린아이가 할아버지와 함께 오리를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도 보였다.
오르막길을 오를때면 넓게 펼쳐진 풍경이 궁금해 뒤돌아보게 된다. 그새 아침해는 중천에 떠있고 물오리가 헤엄치고 있던 저수지는 저만치 보인다.
도로변으로 나란히 나 있는 언덕길 철망에 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수를 셀 수 없이 많다. 누군가의 소원이 이번엔 나무십자가로 철망에 매달렸다. 로스아르코스에서 이른 새벽에 출발하는 중국인 부부가 한국인인 줄 알고 벌써 출발하냐 말하며 인사했었는데 이 길에서 다시 만났다. 길 모퉁이에서 쉬고 있는 그분들께 '부엔까미노' 인사했더니, 그들도 우리를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철망을 따라 걷는 길 한편에서 다리를 쉬며 사과 하나씩 꺼내어 먹었다. 출발한 지 두 시간 만에 맞는 휴식시간이다.
다시 출발하여 10분쯤 걸으니 산위에 대형 황소모형이 서있다. 스페인 주류회사 오스본에서 세운 대형 광고판이었다 하여 일명 오스본의 황소라 불린다고 한다. 멀리 나바레떼 마을을 바라보며 걷는 길은 아스팔트 포장길이라서 스틱 찍는 소리가 거슬리나 내리막길로 접어들어서는 스틱을 잡지 않고 걷기가 불편하다.
나바레떼 마을에 다다를 즈음, 순례자를 위한 병원 유적지와 와인농장을 지났다.
마을 초입에 나바레떼 안내 지도가 붙어있다. 나바레떼는 카스티야와 나바라 사이에 전투가 치열했던 곳으로 로그로뇨보다 역사가 깊다고 한다.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한 성모승천성당에 들어가 잠시 기도하고 세요를 찍고는 성당 옆에 있는 바에 들어갔다. 야외 그늘에 있는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초콜릿이 듬뿍 들어간 빵과 커피, 주스로 아침을 먹었다. 햇빛이 뜨거워 그늘을 찾아 앉았더니 변덕스럽게도 추워서 금방 햇빛으로 나왔다.
9시 반경 다시 출발했다. 바에서 아침도 먹고 화장실도 이용하고 햇빛에 앉아 잠시 휴식도 취하고 났더니 몸이 훨씬 가뿐하다. 체력으로 버티기보다는 뱃심으로 버티는 건가 싶게도 먹고 나면 힘이 나는 게 신기하다. 나름 단련이 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공장의 높디높은 굴뚝위에 지어진 새집에 큰 새 한 마리가 앉아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다. 이 지역에 고대 도기터가 있다더니 마당에 옹기와 비슷한 도자기들이 놓여있어 재빠르게 사진을 찍었다. 평소 많이 보던 이천 도자기가 생각났다.
길을 걸으면서 보게되는 많은 순례자를 위한 표식과 순례자들의 흔적들을 보면서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까미노 서사의 일부분을 지금 내가 채우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이 길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발자국들이 찍혔을까?
하늘은 맑고 바람도 시원하게 분다.
길가에 추모비가 서있다. 1986년 자전거로 순례하다 교통사고로 죽은 벨기에의 '앨리스 그레이머'의 추모비라 한다.
포장된 도로라서 스틱찍는 소리는 여전히 탁탁 소리를 내고, 앞서가던 미국인 아저씨가 뒤돌아보며 웃어서 순간 머쓱했다. 조용히 순례하고 싶은데 내 스틱소리가 거슬렸나 싶어 미안함을 담아 웃음으로 답했다.
라바레떼를 출발한지 한 시간 반 만에 작은 마을 벤또사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바에는 순례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먹으며 쉬고 있었다. 트래킹멤버들이 먼저 도착해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길모퉁이 비스듬한 언덕길 옆에 놓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 한잔씩 주문하여 마셨다. 따가운 햇살을 맞으며 비교적 빠른 걸음으로 걷고 난 후 마시는 맥주라서 그런지 술술 들어간다. 가방에 들어있던 곡물바도 꺼내어 맥주와 함께 먹었다.
순례안내에 따라 언덕을 올라가니 가장 높은 곳에 성당이 있다. 산 사뚜로니노 교구 성당이라 하는데 문이 잠겨있어 주변만 둘러보고 다시 내려왔다.
벤또사를 지나도 여전히 포도밭은 널려있고 다시 구불구불 오르막길이 나왔다. 지루함을 느낄 때쯤 좁은 산길을 자전거 끌고 힘겹게 올라가는 이들을 보며 상대적 위로를 받았다.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같은 방을 썼던 이태리 할머니를 다시 만났다. 반가워 인사하며 서툰 영어로 11년 전에 이태리여행을 했었다며, 그때 여행했던 도시 이름을 죽 이야기하였더니 당신의 고향이 로마 남쪽에 있는 도시라 하신다. 반바지에 민소매 티셔츠를 입으셔서 팔뚝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지만, 심신이 모두 건강해 보여 보기 좋았다.
멀리 철탑이 우뚝 솟아있다. 문득 철의 십자가가 떠올랐다. 철의 십자가도 저정도의 높이로 서 있을까? 철탑은 통신용 안테나였다. 순례길 옆에 있으니 꼭대기에 십자가가 달려있을 것만 같다. 철탑이 지루하던 길에 잠시 딴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벤또사에서 한 시간 반쯤을 더 걸어 정오가 지난 12시 반경, 길가에 있는 공원이 나왔다. 벤또사 바에서 먼저 쉬고 있던 트래킹 멤버들이 벌써 와서 정자를 하나 차지하고 쉬고 있었다. 우리는 풀밭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목적지가 얼마 안 남은 상태에서 알베르게 사정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면 우린 분명 이곳에서 쉬지 않고 계속 걸었을 것이다. 쉬고 있는 트래킹 멤버와 인사하고 우리 먼저 출발했다.
공장지대를 지나고 도시를 가로질러 약 한시간 정도 더 걸었다. 거리에 모종을 파는 가게가 있어 신기했다. 이태리 할머니는 화초가게 앞에서 뭔가를 이야기하고 계셨다. 길에서 자주 보던 외국인 순례자가 길가에 서서 반갑게 인사한다.
이제 거의 다왔다. 구글지도를 켜고 알베르게를 찾아가다가 길을 잃었다. 구글지도 작동에 이상이 있었다. 차라리 주변에 있는 현지인들에게 물어볼 것을 지도만 믿고 무작정 걷다가 반대편으로 가는 바람에 도착시간이 더 지연되었다. 나를 믿고 따라오던 남편은 본인 휴대폰에 지도를 켜고 앞서 걷기 시작했다. 뒤따라가다가 결국 남편도 잃어버리고 난감한 상황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헤매고 있는데 다행히도 아이를 데리고 나온 현지 여자분이 알베르게로 가는 길을 알려주셨다.
먼저 도착한 남편은 왜 안 따라왔냐 이야기하고 먼저 출발했던 젊은 부부와 그라시아 님은 반색하며 왜 이제 오냐고 한다. 기다려도 안나타나 체크인을 못하게 될까 봐 걱정했다고 하신다. 침대가 90개라 여유가 있다 생각했었는데 실상은 48개밖에 없었다. 아마도 코로나를 겪으며 새로 단장하면서 침대수를 줄이고 간격을 넓힌 모양이었다. 하마터면 침대를 찾아 헤맬 뻔했다.
2시부터 체크인이라 알베르게 앞에 죽 늘어선 배낭줄 끝에 내 가방과 남편배낭을 차례로 줄 맞춰 놓았다. 우리가 도착하고 얼마 안 되어 배낭줄이 마감 됐다. 공원에서 쉬고 있던 트래킹 멤버들 중 제주에서 오신 분만 체크인하고, 다른 분들은 알베르게 찾아 헤매다 결국 호스텔을 구해 멤버가 따로 떨어져 지내야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알베르게 체크인은 아주 느리게 진행되었다. 기부제 알베르게라서 본인이 지불하고픈 만큼의 비용을 지불하면 되는데 우린 둘이 합해 25유로를 지불했다. 배낭 줄 옆 그늘에 앉아 기다리다가 오후 3시 20분에 체크인했다.
침대를 1층으로 따로 떨어뜨려 배정을 해줬는데, 남편이 2층 남자 보고 바꾸자 제안을 해 남편과 한 침대 위아래를 사용하게 되었다. 침대 정리하고 씻고 밖으로 나가니 잔뜩 흐려있다. 바람도 부는 게 심상치 않은데 남편의 표정까지도 영 안 좋다. 나중에 왜 언짢은지를 얘기하는데, 그 원인은 내일 이동할 곳의 알베르게 주소를 묻는 과정에서 내가 말을 퉁명스럽게 했다고 한다. 남편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던가 다시 되짚어보면서도 그게 그렇게 불쾌한 일인가 싶은 게 서운했다. 사실 요 며칠 짜증스러운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혼자 순례를 왔다면 더 나았을까? 순례 일정, 빨래 등 어쩜 집에서 살림하듯이 여기까지 와서도 의식주를 내가 신경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을 했었다. 순전히 나의 주관적인 생각들이 짜증스럽게 묻어 나왔을 수도 있었겠다.
마트에 장 보러 나갔다. 알베르게에서 나와 다리 건너 좀 걸으니 Dia마트가 있었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몰려오는 게 내 마음 같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도 남편은 말도 없고 무엇을 살지 의견도 없다. 속상해서 남편에게 내일은 따로 걷자 했다. Dia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다행히도 비는 알베르게에 도착한 후 쏟아지기 시작했다.
저녁식사는 남편이 찜해놓았다는 식당에 가서 먹기로 했다. 6시 반경 밖으로 나가니 그새 소나기는 그치고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떠 있다. 내 마음도 하늘 같았으면 좋으련만 뭔가 해소되지 않은 채 애쓰고 있는 우리가 한심했다.
시에스타가 끝나는 시간이 아직 멀었으니 우선 마을구경부터 하기로 했다.
나헤라는 로마시대에 세워졌으며 이 도시를 아랍인들이 나사라(바위 사이의 도시)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 뒤에 떡 버티고 있는 바위산으로 인해 나헤라라 도시명이 생긴 모양이다.
산타마리아 데 레알 수도원, 산타 끄루스 성당, 그리고 알베르게 앞에 흐르는 나헤리야강의 산 후안 오르테가 다리 등을 돌아보고 나니 거의 식당 오픈시간이다. 남편이 미리 알아보고 캡처해 둔 메뉴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처음 보는 한국인 부부가 식사하러 들어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으며 인사 나누고 저녁식사도 맛있게 했다.
순례 후 첫 번째 트러블을 풀기 위해 서로 애쓴 날이었다.
소나기를 퍼붓고는 맑게 개인 하늘처럼 우리의 마음도 맑아질 수 있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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