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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산티아고 순례

[까미노 20.] 친절도 전염된다. 산 마르띤 델 까미노 마을의 친절한 사람들 | 240524

by 바이올렛yd 2025. 1. 3.

레온(Leon)에서 산 마르띤 델 까미노(San Martin del Camino)까지  26km 
6시간 소요 (am 6:00 ~ am 12:00)


2024년 5월 24일 금요일
 
전날 호스트로부터 주의를 받고 두 남자에게 신경을 쓰느라 깊은 잠을 못 잤는데, 감기가 걸렸는지 기침하고 방귀 뀌는 것 빼고는 별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새벽 5시 반경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두 남자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나름 조심스럽게 조용한 가운데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나서 우리도 떠날 준비를 했다. 건너편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는 남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배낭을 챙겨 1층 주방으로 내려갔다. 배낭을 정리한 후 밖으로 나가니 호스트가 벌써 일어나 나와있다. 6시에 오픈이라 했는데 먼저 나간 두 남자는 벌써 떠났는지 안 보인다. 호스트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도시의 새벽 6시는 가로등이 있어 그런지 훤하다. 그러나 동이 트는 시간은 아직 6시 40분이 넘어야 한다. 

 
오늘도 유진이의 회복을 위하여, 그리고 오늘은 우리 부부를 위하여 묵주기도를 시작했다. 갖가지 감정들이 오가지만 서로의 삶에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될 수 있는 시간이기를, 또한 이 시간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작은 불씨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기도했다.
   
새벽시간인데도 레온대성당 광장에는 사람들이 꽤 많다. 스페인의 밤문화는 우리나라의 밤문화와 닮아있는 듯 지나온 도시에서도 새벽시간까지 귀가하지 않은 듯한 청년들이 보이고는 했는데 이곳의 청년들도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은 상황인 건 아닐까 생각했다.

 
레알 바실리카 데 산 이시도로 앞이다. 이곳은 10~11세기에 만들어진 바실리카와 박물관, 그리고 왕가의 무덤이 모인 곳이라고 한다. 현재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곳은 옛날 왕궁이었던 곳이며 이곳에 세례자 요한의 턱뼈를 비롯한 여러 성인의 유해가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산 마르코스 광장은 대단히 넓었다. 그 사이 날은 많이 밝아져 보다 넓은 도시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광장 한가운데 순례자 동상 앞에 흰 잠바를 입은 한국여성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멀리서 봐도 익숙한 모습이 그라시아 님이다. 아마도 동영상을 찍고 있는 듯했다. 론세스바예스를 출발하며 이번 순례길에는 즐기며 천천히 걷겠다 하시더니 오늘도 나름 행복한 순례길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광장 한켠에 서 있는 산 마르코스 수도원 건물 중 일부는 16세기 가난한 이들을 돌보기 위해 만들어진 병원이었으나 지금은 호텔로 사용되고 있으며, 건물 오른편에 박물관이 있다.

 
레온 시내를 빠져나오는 데 약 한 시간은 걸린듯하다. 아침에 빈속에 출발하여 속이 허한데 레온을 벗어날 무렵 '부엔 까미노'하며 손짓하는 빠가 있어 들어갔다. 빵과 함께 따듯한 쵸코우유, 커피로 아침식사를 했다. 새벽에 만나는 빠는 서늘한 기온에 움츠러든 몸을 녹여주며 다리도 쉬어갈 수 있는 반가운 장소다. 잠시 후 그라시아 님이 들어오셨다. 이곳에 우리가 쉬고 있을 것 같아 들어오셨다고 하며 밝게 웃는다. 지난밤엔 딸이 예약해 준 알베르게를 이용했는데 이태리에서 오신 할머니와 단둘이 이용해 편안한 밤을 보내셨다고 하신다. 산마르코 광장에 계신걸 멀찍이서 보고는 방해하지 않으려고 먼저 출발했었는데 걸음도 빠르시지 금방 따라오셨다.

 
Basilica de la Virgen del Camino. 초현대식 건물의 성당이 있는 게 신기하다. 중세시대에 건축된 성당을 주로 봐와서 그런가 보다. 이른 아침이라 외관만 보고 그냥 지나쳤다.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길을 걷는 중 오르니요스에서 같은 방을 썼던 청년을 만나 인사했다. 메세타 평원을 걸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인도풍 나는 하얀 바지를 입고 걷던 청년을 꽤 오랜만에 다시 만나니 반갑다.

 
출발한 지 세 시간 만인 오전 9시경 발베르데 데 라 비르헨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입구에 있는 산타 엔그라시아 성당 종탑에 황새가 둥지를 틀고 있다. 종탑 위에 새집을 종종 보기는 했지만 이번에 본 황새둥지는 너무 크다. 신기해 사진 찍고 있는 데 "It's great!"라며 미국인 남자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며칠 전 우리 부부 사진 찍어주신 그 미국인 같은데 확실치는 않다. 외국인을 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 구분이 잘 안 된다. 나도 웃으며 "It's great!" 했더니 그도 웃는다. 

 
지난밤 우리 숙소에 묵었던 체격이 큰 외국인 남자도 우리에게 인사하며 지나갔다. 묵주를 들고 걷는 모습이 다른 외국인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외국인들을 만날 때마다 여러 가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듯 그들이 우리 한국인들을 만날 때도 그렇겠지 싶은 게 적어도 그들이 한국인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갖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행동이 조심스럽다. 나라망신은 시키지 말고 다녀야지.

 
산 미겔 델 까미노 마을을 지난 후 거의 두시간동안은 마을을 만날 수 없어 길가 그늘에 앉아 쉴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온 후 즐겨 먹게 된 사과 두 개 꺼내 하나씩 베어 먹으며 쉬었다.

 
배낭을 실은 수레를 끌고 가는 순례자를 만났다. 특이한 모습의 순례자와의 만남은 지루한 순례길의 작은 즐거움이다. 

 
비야당고스 델 빠라모라는 마을을 지나고 이제 한시간정도만 더 걸으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산티아고 순례를 준비하며 걸었던 한 시간을 생각하며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 조금만 더 가면 된다 마음을 다독였다. 그동안의 날씨와는 다르게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로, 걷는 동안 갈증이 많이 나는 다소 힘든 길이었다.

 
약  6시간만인 정오 즈음에 산 마르틴 델 까미노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마을 초입에 시설이 좋을 것 같은 알베르게가 보였으나 원래 가기로 맘먹었던 알베르게로 가기로 하고 지나쳤다. 사무실에 아무도 없어 서성이고 있노라니 건너편 빠에서 호스트로 보이는 여자가 다가온다. 그녀는 알베르게 8유로와 함께 순례자 식사비가 10유로인데 식사신청까지 할 것인지를 물었다. 우린 그녀의 권유에 따라 함께 저녁식사 신청까지 했다. 우리보다 먼저 들어온 사람이 한 명 있었고 우리가 그다음이었다. 

 
침대 배정받고 나가니 아가씨 한 명이 막 도착하며 호스트를 찾고 있어 알려주고, 잠시 후 그라시아 님도 도착했다. 알베르게 예약을 했다고 하시더니 이곳이었나 보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건너편 바에 가서 감자튀김, 돼지고기 볶음요리, 맥주를 주문했더니 빵과 함께 나왔다. 음식은 나름 한국음식처럼 조리되어 맛있게 먹었다. 주인여자는 혀를 날름날름 거리며 돼지 혀를 이용한 음식이라 설명을 하고 맛이 어떠냐 묻는다. 남편은 'Very good!'이라 말하며 웃는다. 우리나라의 돼지고기 내장을 이용한 요리와 비슷하다.

 
전날과는 다르게 작은 마을에 도착하여 시간이 여유롭다. 천천히 씻고 야외 수전을 이용해 빨래도 해 널었다. 알베르게 마당가에 앉아 햇빛을 쪼이노라니 옆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작은 동네에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나니 정겹다.

 
동네 한 바퀴 돌아보는데도 금방이다. 마을 한가운데에 산 마르띤 성당이 있고 그 앞에 작은 공원도 있어 벤치에 자리 잡고 앉았다. 양지바른 곳에서 햇빛을 쪼이니 따뜻하고 좋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다음날 간식으로 물 두 개, 납작 복숭아 2개, 사과 2개, 그리고 맥주와 우유, 주스를 샀다.

 
7시 30분 건너편 바에서 순례자식사를 했다. 프랑스에서 온 부부와 이태리 북부 도시에서 온 아가씨, 미국 텍사스에서 온 자매, 그라시아 님, 그리고 우리 부부. 이렇게 8명이 함께 모여 앉아 식사를 했다. 서로 말은 잘 안 통하지만 통역기도 쓰고 몸짓 손짓 하며 이야기도 나눴다. 프랑스 남자분은 휴대폰으로 몽쉘미셀 사진을 보여주며 자기 고향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랑스러워했다. 미국 텍사스에서 온 자매는 형제가 6남매라며 가족사진을 보여줬다. 남편은 예전에 다녀왔던 미국 남부에 있는 산타페 이야기로 텍사스 자매와 대화를 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음식은 와인과 함께 샐러드가 먼저 나왔고 다음에 빠에야가 푸짐하게 나와 함께 나눠먹었다. 주인여자의 요리솜씨가 좋아 모두 맛있게 먹었다.

 
남편은 마을 슈퍼에서 아이스크림과 맥주로 디저트를 먹자 한다. 마트로 가는 중 ANA 알베르게에서 묵는다는 한국인 여자 두 명을 만나 인사했다. 마트 앞 테이블에 현지인들로 보이는 사람들 몇이 앉아 즐겁게 이야기 나누고 있었고, 우리도 그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트 주인남자가 한국인이냐 물으며 사진을 찍어주신다고 한다. 그리고는 우리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반가운 마음에 우리도 '감사합니다'라 말하며 웃었다.

 
좋은 기억으로 남을만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 마을이다.
 
알베르게 룸에 벙커침대가 11개인데 딱 11명이 들어와 모처럼 1층을 나란히 이용했다. 매번 2층을 오르락내리락하느라 번거로웠는데 시설은 좀 열악하나 침실은 조용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