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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산티아고 순례

[까미노 22.] 라바날에서 감동의 순간을 경험하다. | 240526

by 바이올렛yd 2025. 1. 14.

아스또르가(Astorga)에서 라바날 델 까미노(Rabanal del Camino)까지  20km 
5시간 소요 (am 6:00 ~ am 11:00)


2024년 5월 26일 주일
 
아스또르가 공립 알베르게는 깨끗하고 좋았지만 출입문 가까이 침대를 사용하게 되어 사람들이 드나들 때마다 인기척을 느끼며 깊은 잠들기가 어려웠다. 머리를 반대로 두고 자려했으나 역시 잠은 안 오고 뒤척이다가 다시 제대로 누워 잠을 청했는데 그래도 과도하게 코 고는 사람이 없어 조금은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여기저기 꿈틀대는 잔 소음들이 들리는 걸 보니 이제 준비할 시간인가 보다. 배낭을 챙겨 밖으로 나와 지하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어제 사놓은 빵과 주스로 아침을 대신하고 화장실에 볼일도 보고 양치하고 대충 씻고 출발 준비를 하였다. 최소한의 세면에 선크림만 바르고 스무날 넘게 생활하다 보니 얼굴이 말이 아니다. 남편은 내 얼굴에서 자꾸 장모님 얼굴이 보인다 놀린다.
 
최근 입이 부르터서 약 바른다는 핑계로 면도도 안 하고 선크림도 안 바르는 남편에게 더 이상 얘기하기 싫어 선크림을 건네주며 바르든지 말든지 당신 마음대로 하랬더니 마지못해 바르고는 나한테 혼났다고 일기장에 쓴단다. 남편의 심술보는 영영 사라지지 않을 건가 보다.

 
새벽 6시경 공립 알베르게를 나서 그라시아 님과 함께 출발했다.  처음 순례시작할 때의 같은 시간보다는 훨씬 밝아졌다. 지예 닮은 아가씨가 벌써 나와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처음 볼 때부터 조카 지예를 닮아 남편에게 '지예 닮은 아가씨 간다'라 불쑥 말하고 나니 남편도 그런 느낌이 든다 한다.

 
대성당 앞을 지나 좀 더 걸으니 현대식 성당건물이 눈에 띈다. 산 페드로 성당이라 하는데 벽면에 마름모 모양의 석판에 기하학적으로 새겨진 까미노 글씨가 이채롭다. 

 
마을을 빠져나올 무렵 오픈 준비하는 카페테리아 사장님은 잊지 않고 우리에게  '부엔까미노!'라 응원의 인사를 한다. 

 
아스토르가를 빠져나와 또다시 길 위에 걷는 사람들만 보인다. 오늘 출발한 순례길에는 우리를 비롯해 앞에도 뒤에도 한국인들만 걷고 있다. 아가다가 까미노의 한국인들은 앞만 보고 걷는다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가다! 그건 아니야. 우린 그저 일찍 출발하면 도착 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좋아서 그런 거야' 마음속으로 그 말에 대한 답을 하며, 한편으론 길 위에서조차 여유로운 외국인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이건 분명 성향상의 차이일 거다.

 
출발 한 시간 10분 만에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에 도착했다. 까미노 길가에 있는 수도에서 전날 맛집 추천해 주셨던 여자분이 체리를 씻고 있었다. 동행인 듯한 분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체리를 씻고 있는 분이 동생분이라 하신다. 수년 전에 산티아고 순례를 와서 프랑스길과 포르투갈길을 모두 걸었었는데, 이번에 은퇴한 동생과 함께 다시 오셨다고 한다. 다음에 나도 다시 올 날이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어쩌면 꿈을 꿔봐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 걷는 길에서 메세타 평원이 끝이 난다더니 직선으로 난 오르막 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기온은 서늘하지만 추울 정도는 아니다.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국격을 높여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최대한 상냥하게 인사한다. 그래봐야 '굿모닝!', '부엔까미노!' 정도지만 간혹 인사 없이 무표정한 이들도 있기는 하다.
 
우리를 지나쳐 앞서가던 한국인처럼 보이는 아가씨가 알베르게에 뭘 두고 왔는지 배낭을 내려놓고 가방 속을 뒤지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지나가던 외국인 남자분과 영어로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지나왔는데 역시 그녀도 한국인이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아 그냥 지나왔다.

 
아득히 보이던 설산이 어느새 가깝게 다가와있다. 정면으로 보이는 눈 덮인 산을 보면서 아마도 피레네산맥 이후 두 번째 넘어야 할 산맥이 바로 저곳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왼편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걸 보니 어쩜 아닐 수도 있겠다.

 
두 번째 만나는 마을 산따 까딸리나 데 소모사 이정표가 보이며 멀리 마을이 보인다. 아스또르가로부터 8.5km 지점이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주사위모양 조각품이 세워져 있다.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지만 해소되지 못했다.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끝까지 가라는 뜻일지도 모르지 마음대로 정리하고 지나갔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에 빠가 있어 무작정 들어갔다. 출발한 지 두 시간이 지났으니 쉬어갈 시간이기도 하다. 입구에 커다란 태극기가 걸려있다.

 
빠 주인장은 꽃 가꾸기에 진심인 듯 빠에도 뜰안에 화분이 가득하다. 

 
다시 출발.
오늘은 연이가 묵은 폰세바돈까지 갈 건지 언니가 묵은 라바날까지 갈 건지를 두고 고민을 하다가 폰세바돈에 침대가 많지 않아 걱정스럽기도 하여, 짧지만 라바날까지 걷기로 했다.  

 
완만한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지고, 나무를 다듬어 직접 만든 지팡이를 가지고 나와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분을 만났다. 곧 산을 넘어야 하는 험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신호처럼 다가온다.  

 
다음마을 엘간소까지는 약 4.5km를 걸어, 9시 20분경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을 통과하는 동안 앞서가는 외국인 남녀 셋이서 꽤나 소란스럽게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나누는 바람에 조용하던 골목이 잠시 시끌벅적해졌다. 

 
엘간소의 성당을 끼고돌아 나오는 길에 가비노 알베르게의 유리가 끼워진 출입문을 보며 목수셨던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꼭 우리 아버지의 작품 같다. 소박한 마을을 벗어나 도로를 따라 난 길을 걷다가 다시 흙길로 접어들었다. 

 
멀리 산비탈 높은 곳에 마을이 보인다. 바로 연이가 묵었던 폰세바돈이라 한다. 해발 1439m로 프랑스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이라는데 신비로워보인다.

 
엘간소에서 약 한 시간 정도 걸었을 무렵 길가에 까미노 물품을 판매하는 여인이 있었다. 옆에 서있는 차가 한국차 비스토라 더 눈길이 갔다.  

 
그동안 걸은 들판길에서 벗어나 숲길로 들어섰다. 새로 난 농로처럼 순례길에 흙을 덮어 다져놓았다. 걷기에는 편하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지속되었던 순례길의 맛은 덜 한 것 같다.  

 
숲길을 빠져나오니 마을이 보인다. 라바날로 들어가는 길은 두 갈래 길이 있었다. 우린 차도가 아닌 길을 택했다. 

 
막바지에 가파른 오르막길이 꽤 힘들다. 드디어 성당이 보이고 왼편에 우리의 목적지인 베네딕도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가 있다. 도착시간은 오전 11시. 너무 일찍 왔다. 그렇지만 일찍와야 좋은 자리도 차지할 수 있는 법. 체크인시간까지는 한 시간 반이나 남았다.
 
알베르게 앞에 배낭줄을 세워놓고 성당으로 갔다. 입구에 한국어로 안내문이 붙어있다. 하룻밤 묵으며 피정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으니 신청하라는 안내인데 미리 계획하지 않은 바라 이곳에서 미사봉헌하는 걸로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성당은 작은 동굴 안에 예수님이 모셔져 있는 느낌이었다.

 
성당 맞은편에 있는 성물방에도 들어가보았다. 외국인 여성분이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라며 반갑게 인사한다. 혹시나 하고 둘러보니 인영균신부님의 책이 보였다. 언니의 사연이 책에 실려 아름다운 사연으로 빛날 수 있게 해 준 바로 그 장소에 와 있음에 뭉클했다.

 
어느새 배낭 줄은 길어지고 여기저기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전마을에서부터 줄곧 우리 앞에 가던 두 남자가 먼저 체크인하고 함께 걷던 여자분은 아마 다른 알베르게로 간 모양인지 보이지 않는다. 그다음 그라시아 님과 우리가 체크인했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 배정받은 침대에 대충 짐을 던져놓고 바로 성당으로 향했다. 

 
주일인데도 안내문에 12시 30분 미사만 안내되어 있어 알베르게 오픈시간과 같은 점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일찍 도착한 탓에 체크인하자마자 성당으로 달려갈 수 있어 다행이다.
 
이미 미사는 시작되어 말씀전례가 진행되고 있었다. 베네딕도 수도회 신부님들의 공동집전으로 미사가 진행되어 성찬의 전례에 접어들고 영성체 하는 시간이 되었다. 다른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줄을 서서 성체를 받아 모시는데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에 가슴이 찡하며 순간 울컥했다. 성체분배를 한국인 신부님께서 해주시고 계셨다. 우리말 미사전례가 이토록 가슴 찡하게 고팠었구나 싶은 게 감동이었다.
 
미사 후 신부님께 인사드리려 문밖에서 기다리다가 문을 빼꼼 열고 들여다보니 제대정리하고 계신다. 아마 이곳에 부임하신 지 오래되지 않아 제대정리하는 것은 우리 신부님 몫이었나 보다. 성당 한편에 있는 노트에 감사의 메모 몇 줄 남기고 나왔다.

 
미사를 마치고 근처에 있는 빠에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와인과 함께 순례자메뉴로 푸짐한 식사였다.

 
라바날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내려다보는 풍경이 근사했다. 근처에 있는 작은 마켓에 가니 그 틈에 한국의 신라면이 있다. 사과 두 개와 바나나 물을 사고 그라시아 님은 신라면 두 개를 더 구입했다. 그리고는 김치를 파는 알베르게가 있다며 내려가 작은 팩에 들어있는 김치를 구해와 우리 보고 저녁에 신라면 끓여 함께 먹자 하신다. 우리에게도 남은 파스타면이 있으니 함께 넣어 끓여 먹자 했다.

 
알베르게에 돌아오니 누군가 그라시아 님 침대를 차지해 짐을 풀어놓고 나가고 없었다. 바로 알베르게 봉사자님께 가서 이야기를 했더니 바로 따라 올라와 누군가의 짐을 몽땅 들어 다른 침대 2층에 치워놓고 그라시아 님이 사용하게 해 주셨다. 아주 간단하게 해결해 주니 속이 시원했다. 
 
샤워하고 난 후 야외 빨래터에 나가 빨래를 해 널려는 차에 마당에 앉아있던 호스트가 짤순이를 사용해 보라 말해준다. 작은 플라스틱 통처럼 생겼는데 성능이 매우 좋았다. 마침 뽀글 머리 청년이 언제 이곳으로 들어왔는지 빨래하러 나왔길래 나도 그에게 짤순이 사용하라 알려줬다.  

 
수도원 알베르게에 머물게 된건 행운이었다. 길에서 만났던 여자분이 알베르게에 구경오셨다. 성당에 왔다가 들어와봤노라며, 7년전에 순례왔을 때에 이곳은 아무나 못들어왔던 곳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하며 숙소를 이곳으로 옮기고 싶다하셨다. 호스트에 문의해본다 하셨는데 아마 잘 안되었는지 끝내 다시 안오셨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차에 호스트는 빵과 음료수가 준비된 방으로 모두 불러 모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줬다. 잠시 서로 인사하고 다과를 나누면서 이야기 나누고 다시 흩어졌다. 순례자들을 위한 배려가 돋보여 감사했다. 
 
저녁 6시 무렵 그라시아 님과 함께 알베르게 주방으로 내려갔다. 신라면 두 개와 파스타면 섞어 끓이고 빠에야 하나 전자레인지에 데워 놓으니 그런대로 저녁식탁이 차려져 모처럼 집에서 밥을 먹는 것처럼 편안했다. 타이완에서 온 아가씨는 샐러드를 준비하고 있었고, 인사 잘하는 특이한 남자는 뒷정리를 도와줬다.
 
갑자기 밖에서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침실 창문을 통해 내다보니 성당 앞마당에서 신부님들과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있다. 순간 궁금하여 밖으로 나가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한국 여자 한분이 고해성사 보고 있다. 저녁미사가 방금 끝났다고 한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분하게 저녁미사를 봉헌할걸 싶었지만 미사 안에서 감동을 일찍 느꼈으니 그래도 감사하다.

내일은 드디어 철의 십자가를 지난다.
약 7년 동안 손목에 끼고 다니며 기도했던 묵주에 영문으로 IN과 BY라 작게 적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