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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산티아고 순례

[까미노 21.] 오르막길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길도 있는 법 | 240525

by 바이올렛yd 2025. 1. 7.

산 마르띤 델 까미노(San Martin del Camino)에서 아스또르가(Astorga)까지  24.5km 
6시간 10분 소요 (am 6:00 ~ am 12:10)


2024년 5월 25일 토요일
 
시설은 낡았지만 잘 먹고 잘 잤다. 오랜만에 한 번도 깨지 않고 4시 넘어까지 잔 것 같다. 
5시 반경 준비하여 알베르게 주방으로 이동하여 전날 사놓은 주스 한병 나눠마시고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가니 그라시아 님이 출발준비하고 계신다. 새벽 6시경 오랜만에 그라시아 님과 함께 출발했다.

 
우리보다 늘 30분 정도 일찍 출발하여 어두컴컴한 새벽길을 주로 걸었던 그라시아 님은 6시만 넘어도 훨씬 밝아 별이 안보임을 아쉬워하신다.

 
하늘은 맑고 약간 찌그러진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다. 평지라서 일출은 그다지 기대하기 어려울 듯한데 그래도 계속 뒤를 돌아보며 길을 걸었다. 동쪽하늘 붉게 타오르는 구름사이로 햇빛이 내비친다. 순간 새벽부터 계속 바라보며 걸었던 달이 보이는지 확인했다. 해와 달이 동시에 떠있는 길을 우리가 걷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그라시아 님과 마치 행운을 얻은 것처럼 기뻐했다. 행복도 마음먹기 나름이지.

 
도로변 꽃길이 예쁘다.
목적지까지 280.6km 남았음을 알리는 까미노 표지석을 지나고 잠시 후 높은 원통형 탑과 함께 마을이 보인다.

 
오스삐달 데 오르비고 마을임을 알리는 간판이 서 있고 제법 많은 물이 흐르는 수로가 보인다. 그리고는 마을로 진입했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놀라운 풍경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앞서 만났던 수로의 연장선상에 있는 물길인 오르비고 강을 건너는 오르비고 다리다. 이 다리는 13세기 로마시대에 건축된 스페인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중세시대 다리로, 현재의 다리는 이후 증축된 상태라 한다.

 
중간쯤 입간판에 'Puente del Passo Honroso'라 쓰여있다. 해석하면 '명예로운 걸음의 다리'로 이 다리에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후안 2세 시절, 기사 돈 수에로 데 끼뇨네스는 그의 연인인 도냐 레오노르 데 또바르와 기묘한 약속을 했습니다. 그녀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매주 목요일 목 칼을 차고 다니기로 한 것입니다. 만약 약속을 어기면 300개의 창을 부러뜨리거나 오르비고 강 위의 다리에서 한 달 동안 결투를 하기로 했습니다. 돈 수에로는 이 약속을 지키는데 지쳐서 싸움을 허락해달라고 왕에게 요청하고, 유럽 전역에 있는 여러 명의 기사들에게 자신이 목 칼을 벗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이에 수많은 기사들이 싸움에 참가해서 그의 편에 서기도 했고, 그와 맞서 싸우기도 했습니다.
1434년 7월 10일부터 8월 9일까지 7월 25일 성 야고보의 축일을 제외하고 약속대로 한 달간 창 싸움이 이어졌습니다. 수많은 창이 부러졌고 기사들 중엔 부상자도 있었고, 한 명은 사망하기까지 했습니다. 마침내 결투가 끝나자 돈 수에로는 목 칼을 벗었습니다. 그 후 그는 자유의 상징인 도금된 은 족쇄를 성 야고보에게 바치기 위해 산띠아고로 순례를 떠났습니다. 현재에도 산띠아고 대성당에는 그가 바친 족쇄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결투 중에 사망한 한 명의 기사는 기독교식 무덤에 잠들 수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가톨릭이 이러한 종류의 결투를 인정하기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돈 수에로는 24년 뒤 이 다리 위에서 또 다른 결투를 하다가 다른 기사의 손에 죽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돈 수에로가 벌인 결투를 기리는 축제가 매년 6월의 첫 번째 주말에 열립니다. 이때에는 도시 전체를 중세 식으로 꾸며놓고 중세식 시장을 열고, 마을의 사람들이 중세 복장 축제를 즐깁니다.
-대한민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 사이트에서 발췌-

 
세르반테스가 바로 이곳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 '돈키호테'를 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다리 끝에 도달했을 무렵 빠의 테라스에 앉아있는 한국인 아가씨가 우리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우리도 반가워 인사하고 지나쳤는데 바로 빠로 들어가는 입구가 왼편에 있어 주저 없이 들어갔다. 아침을 제대로 안 먹은 상태라 샌드위치와 함께 우유, 커피를 마셨다. 
 
빠를 나오기 전 우리도 한국인 아가씨가 앉아있던 테라스로 나갔다. 반대편에서 보는 동쪽 풍경은 햇살을 받아 더 근사하다.

 
빠에서 나와 몇 발짝 걷지 않았을 때 빠 테라스에서 인사했던 한국인 아가씨가 문을 열고 나온다. 반가워 인사하며 이곳에서 묵었느냐 물었더니 전날 30km 이상 걸어 이 마을에서 묵었다고 한다. 저녁 무렵 도착해 제대로 못 보고 잠을 자 아침 일찍 여기저기 둘러보고 이제 출발한다고 하며, 알베르게를 우연히 찾아 들어갔는데 호스트가 우리나라 가수 GOD가 묵었던 알베르게라 알려주셨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줄 알았으면 우리도 이 마을까지 올걸 그랬다며 맞장구치며 웃었다.

 
마을을 빠져나와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선택하게 되어있다. 남편은 원래 순례길이 오른편길인듯하니 그쪽으로 걷자 한다. 순례지도를 찾아보니 직진을 하면 지름길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마을 두 개를 거쳐 더 긴 길을 걸어야 한다고 안내되어 있다. 우린 정상적인 루트로 보이는 오른쪽 길을 택했다. 빠에서 만난 아가씨도 우리와 같은 길을 선택해 걷다가 갑자기 알베르게에 놓고 온 게 있다며 다시 되돌아갔다. 

 
그동안 주로 봐오던 밀과 보리, 옥수수 말고 감자와 마늘 등 경작물들이 좀 더 다양해지고 더러 비닐하우스도 보인다. 이제야 우리나라 농촌 풍경과 조금 흡사해 보인다.  

 
비야레스 데 오르비고 마을에 접어들면서 가정집 텃밭을 보면서는 더욱 정겹다. 텃밭작물에 저절로 눈이 가면서 무엇을 심었는지 훑어보는 재미가 새롭다.

 
마을입구에 높이 걸려있는 허수아비를 보며 지름길로 갔다면 이런 재미를 못 느끼고 지나갔겠지 싶어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알록달록 캐나다 여인을 5일 만에 다시 만났다. 그녀와 떼라리요스에서 같은 방에 묵었었다. 배낭은 동키서비스 보냈는지 작은 가방을 주렁주렁 달고 인사하며 지나간다. 나도 '부엔까미노!'라 답했다.

 
빠 옆에 배낭이 나란히 놓여있어 혹시 그라시아 님 배낭이 아닐까 싶어 빠 안을 기웃거렸지만 안 보인다.
태극기를 가슴에 붙이고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허수아비 인형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데 나이 지긋해 보이는 외국인 여자분이 웃으며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수년 전에 까미노를 걸으며 이곳에 들러 사진을 찍었다면서 벽에 붙어있는 사진을 가리키며 본인이라고 알려준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대단하시다 말씀드렸다. 혹시 우리 사진도 붙어있냐 물으셔서 우리는 한국에서 왔으며 처음 이 길을 걷는다고 말했다. 해병대 티셔츠를 비롯해 한국돈, 대학교 단체티셔츠 등 여러 가지가 보였다.

 
스페인의 동물들은 자연과 함께 하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해 보인다. 풀을 뜯고 있는 잘생긴 말을 바라보며 지나다 보니 길가 풀밭에 야외용 테이블과 화덕이 있다. 이곳 마을에 농사짓는 분들이 휴식하며 사용하는 것일까 순례자들을 위해 설치해둔걸까 궁금했다.  

 
마을을 지나면서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졌다. 

 
약 30분쯤 후 또 다른 마을이 나왔다. 산띠바녜스 데 발데이글레시아스다. 작은 마을이라 금방 마을을 통과해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젖소 목장에 송아지 우리가 귀엽게 생겼다. 들판에 방목되어 있는 동물들을 보다가 우리 안에 있는 송아지를 보며 소들에게도 집이 있어야 했었음에 웃음이 났다. 자연과 함께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것에 심취해서 들판의 소와 말들도 사람의 손길을 받고 살고 있었다는 걸 잠시 잊었었나 보다.

 
오르막길을 쉬지 않고 오르다 보니 빨리 자리를 잡고 앉아 쉬고 싶은 차에 나무밑 벤치가 나왔다. 우리보다 앞서가던 외국인부부가 앉아 쉬고 있다가 우리가 도착하니 친절하게도 자리를 비켜주며 출발하신다. 그동안 낮기온이 그다지 오르지 않아 서늘했는데 전날부터 간간히 덥기 시작한다. 배낭과 스틱을 내려두고 벤치에 앉아 납작 복숭아를 꺼내먹었다. 이제 제철이 되었는지 까미노 초반에 맛볼 때보다 훨씬 맛있다.

 
그동안 걷던 길과는 다르게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다양한 길로 지루함을 충분히 만회시켜 주나 조금은 힘들다. 올라가면 분명 내려가는 길도 나오는 게 당연함을 되뇌며 걷기를 몇 번을 반복했다.  내리막길을 걸으며 한숨을 돌리노라면 또 오르막길이 나오고 꼭 우리네 인생 같다. 분명 선택은 우리 몫이었으니 힘듦도 감수해야만 한다. 

 
오르락내리락 힘든 길을 한 시간쯤 걸었을까 반가운 쉼터가 나타났다. 소정의 기부금을 내고 맘껏 간식을 먹을 수 있는 자율 쉼터다. 약간의 기부금을 기부함에 넣고 우선 바나나 하나를 까먹고, 직접 오렌지주스를 짜서 남편과 함께 마셨다. 낯익은 얼굴들도 보이지만, 그동안 길에서 본 적 없는 한국인들도 몇몇 보였다. 

 
잠시동안 휴식시간을 갖고 바로 출발했다. 

 
약 20분쯤 걸으니 성 또리비오 십자가가 서 있고 그 너머로 멀리 큰 성당이 있는 마을이 보인다. 오늘의 목적지 아스또르가다. 
성 또리비오는 5세기경 아스또르가 주교였다고 한다. 그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아스또르가에서 추방당하게 되었는데 이때 이 언덕에 앉아 신발의 먼지를 털며 '아스또르가 소유라면 먼지까지도 가져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다. 세월이 흘러 누명을 벗게 되고 이를 알게 된 아스또르가 사람들이 이곳에 성 또리비오를 기리는 십자가를 세웠다고 한다.

 
아스또르가를 바라보며 언덕을 내려오다가 그늘에 혼자 앉아 쉬고 있는 하얀 바지 청년을 만났다. 그 옆 벤치에 앉으며 그 청년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우리가 그다지 느린 걸음이 아님을 확인받은 것 같다. 부르고스 이후 메세타 평원을 걸을 때부터 간간히 본 청년인데 이곳에서 다시 만나니 나이 든 우리도 청년들과 같은 속도로 걸을 수 있음이 뿌듯하다.

 
앞서가던 사람들이 물 마시는 순례자 동상 따라 물 마시며 사진을 찍길래 우리도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산 후스토 데 라 베가 마을을 지났다. 아스또르가까지 가까워 보이지만 4km는 더 가야 한다. 햇빛이 따가워 왼쪽길로 건너가 담벼락 가까이 걸었다. 작은 성당이 보인다. 꽤 현대적인 건축물처럼 보이지만 16세기에 지어진 산또스 후스또와 빠스또르 성당이다. 

 
교회 앞을 지나 다리를 건너 도로를 따라 걷다가 오른편 마을길로 향한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정오 가까운 시간이라 햇빛은 따갑고 금방 도착할 것 같은데 길은 생각보다 멀다.

 
아주 오래되었을 법한 석조다리를 건너 철로를 건너는 철제 육교를 돌아 돌아 내려오니 언덕 위에 성당과 함께 중세시대 건축물들이 아름답게 보인다. 

 
언덕 위에 보이는 마을로 들어가려면 언덕을 꽤 많이 올라가야 해서 숨이 턱에 찼다.

 
12시 10분경 드디어 아스또르가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우리 앞에 걷던 하얀 바지 청년이 체크인을 하고 있어 잠시 기다렸다. 호스트는 유쾌하지만 단호했다. 주의사항을 꼼꼼히 전달하고 우리를 룸으로 안내했다. 우리가 들어가니 그라시아 님이 반색을 하며 반긴다. 도대체 발에 모터를 달았는지 도무지 보이지 않아 걱정했었다 했더니 오히려 우리 보고 왜 이리 늦게 왔냐 하신다. '지름길로 걸으신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이리 빨리 걸을 수 없지.' 약 열명정도 먼저 들어와 구석진 자리의 침대를 모두 차지해 출입문과 가까운 침대 1, 2층을 배정받았다. 알베르게 시설은 관리가 잘 되어 청결하고 좋았다.

 
샤워하고 그동안 못한 빨래 모두 모아 세탁기에 넣어 돌렸다. 세탁기 돌아가는 중 햇빛 좋은 자리 맡아놓으려 대형수건 우선 널어놓았었는데, 그새 그걸 잊고 테라스에 있는 빨랫줄에 널어놓고 밖으로 나갔다. 알베르게에서 가까운 빠에 들러 파스타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점심식사를 하려 기다리고 있는데 트래킹 멤버 중 나와 띠동갑이신 분이 지나가신다. 일행들은 벌써 도착했고 다리가 불편해 지금에야 도착하는 거라 하신다. 봉골레파스타와 크림파스타를 주문했는데 맛있었다.

 
알베르게 옆에 잘 조성된 공원이 있어 소화도 시킬 겸 거닐다 보니 길에서 계속 보아왔던 동양인 남자가 벤치에 앉아 쉬고 있다. 일본에서 오신 순례자였다. 공원 아래로 집들이 보이는데 그 사이 높게 쌓인 성벽이 보인다.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성벽이라 한다.

 
공원에서 나오는데 알베르게 앞에 부부로 보이는 외국인 순례자가 지나간다. 두 분이 서로 떨어져 걷는 모습이 순례자 동상과 잘 어울린다. 천천히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다양한 조각품들과 대형 벽화도 보인다.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인 주교궁으로 갔다. 햇빛은 다소 따가워 그늘에 앉아 잠시 쉬며 사진을 찍었다. 원래 주교의 거처로 건축이 되었으나 현재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주교궁 근처에 있는 산타마리아 대성당으로 갔다. 마침 오후 4시 정각. 성당의 종이 울렸다. 마당에 서서 성당 외관을 구경하고 대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대성당 박물관 입장료는 6유로. 소장된 많은 유물과 작품들을 보았지만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아스또르가 시청사 앞 광장을 지나오면서 마트에서 다음날 먹을 간식을 사고 저녁식사 할 장소를 찾았으나 시에스타시간이라 문 연 식당이 별로 없다. 

 
어쩔 수 없이 레온에서처럼 점심식사했던 알베르게 앞 광장에 있는 빠를 찾아가 바베큐폭립과 해물빠에야를 먹었다.

 
미사시간이 다가오자 성당 쪽으로 이동하는 순례자들이 많이 보였다. 원래 순례자 미사는 알베르게 앞 성당에서 봉헌하는가 본데 오늘은 대성당 옆 소성당에서 미사봉헌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미사시간이 늦어 부랴부랴 들어갔는데 현지인들이 대부분이고 순례자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라시아 님만 보였다. 미사 후 이어지는 행사가 있는 것 같아 그라시아 님과 함께 성당 밖으로 나왔다. 

 
아스또르가는 꽤 큰 도시였다. 연이는 이 도시를 지나며 하루 쉬었다 갔으면 하고 생각했었단다. 
순례길을 나선 이후 로사언니와 처음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성당에 주로 앉는 내 자리가 비어있어 허전하다며 오늘따라 많이 생각난다고 했다. 순간 그리운 사람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그 시절 그 시간에 같은 곳에 있었기에 만남이 이루어졌을 모든 인연들. 모두 행복하고 평안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