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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산티아고 순례

[까미노 25.] Are you okay? I'm fine thanks! | 240529

by 바이올렛yd 2025. 2. 14.

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에서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까지  30.5km 
7시간 35분 소요 (am 6:00 ~ pm 1:35)


2024년 5월 29일 수요일
 
오래된 알베르게이기도 했고 헛간 같은 공간에 침대가 있어 좀 꺼림칙했었지만, 마음을 돌려 예수님도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는데 이쯤이야 괜찮지 싶었다. 밤사이 좀 덥기도 했고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얼룩덜룩 두드러기처럼 일어나 가려웠다. 벌레에 물려 가려운 건지 아님 심리적인 불편함으로 인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 와중에도 잠은 좀 들었던 것 같다. 새벽에 깨어보니 5시 33분. 또다시 떠날 준비를 했다. 어둠 속에서 짐 챙기는 건 이제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금방 준비하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새벽 6시 정각 출발.

 
전날 와봤던 스페인하숙 산니꼴라스 호텔을 지나고 공원을 지나니 대형 건물이 나오는데 클뤼니아꼬의 산따 마리아 성당이다. 16세기 후반의 건축물이라 한다. 그리고는 배우 유해원이 새벽에 운동하던 길이 이어졌다. TV에서 보았던 그 장면들을 떠올리며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들에 얹어보니 또 다른 재미가 있다.

 
7년 전 연이는 이쪽 부근에 있는 알베르게에서 묵었다고 한다. 마을을 빠져나오는게 훨씬 쉬웠을 것 같다.

 
오늘은 우리부부를 위하여 기도를 시작했다. 아픈 우리 조카 진이와 본당에 꽤 오랜기간동안 우리부부가 보이지 않아 걱정하며 소식을 전해온 미카엘라도 기억했다. 비야프랑카를 빠져나와 도로변을 따라 걸었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일출을 보기는 어렵겠다. 

 
빗물의 흐름때문인지 약간 기울어진 길을 장시간 걷다보니 무릎이 조금 불편하다. 드디어 도로를 벗어나 숲이 이어진 길을 따라 들어가니 작은 마을 뻬레헤다. 역시 이른시간이라 인적은 없고 편의시설 또한 없다. 

 
한때 사람들이 살았을 법한 건물이 폐허가 되어 있다.

 
건강해 보이는 캐나다 여자는 배낭을 보냈는지 가벼운 차림으로 씩씩하게 앞질러 걸어갔다. 이제 배낭의 무게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익숙한 상태이긴 하지만 그녀를 보면서 수일 전에 독일여자가 까미노는 베케이션이라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배낭을 메고 있지만 나도 사실 그렇다. 결코 고행의 길은 아니야.

 
두 시간 이상 걸었을 때쯤 빠가 나타났다. 고민할 것도 없이 무조건 들어갔다. 트래킹 멤버들이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다. 한 시간쯤 전에 도로변 길에서 일행들과 떨어져 이번엔 발목이 아프다며 절뚝이며 걷는 띠동갑 언니를 만났었는데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또르띠야와 샌드위치, 카페콘레체, 우유를 시켜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출발하려 하는데 띠동갑 언니가 막 도착해 들어온다. 불편하지만 끝까지 완주할 자신 있다고 하신다. 다만 일행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미안하다 하셨다.
'부엔 까미노'를 서로 외치고 먼저 출발했다.

 
아스팔트 도로변 길은 또다시 이어지고 

 
약 한 시간쯤 후에 또 다른 마을이 나왔다. 라 뽀르뗄라다. 마을 입구에 산티아고 동상이 서있다.

 
작은 마을 몇 개를 지나며 작은 성당을 들러 기부고 하고 쎄요도 찍었다. 

 
길은 멀고 쉴 곳은 마땅치 않아 길가 벤치가 나오면 바로 앉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어느 집 옆에 돌로 된 벤치가 있어 배낭을 내려놓고 걸터앉았다. 한 시간 반쯤 쉬지 않고 걸었으니 휴식이 필요한 시간이기도 했다. 납작 복숭아를 꺼내어 먹었다. 순례길에 납작 복숭아는 최고의 간식이다. 베어 먹기 편하게 생겨 맛도 좋다.

 
휴식 후 다시 출발. 잠시 후 또 마을이 나왔다. 노선버스가 오래도록 정차해 있는 걸 보니 아마도 종착지가 아닐까 싶다. 그동안 지나온 마을 중 제법 커 보이는 베가 데 발까르세다. 길가에 있는 마켓 앞에 마리노가 체리 한 봉지 들고 서있다. 아마 마켓에서 체리를 산 모양이다. 우리도 따라 들어가 체리 한주먹 담아 사가지고 나왔다. 

 
산타 마리아 성당에 들어가 짧게 기도하고 쎄요도 찍었다. 
마을을 벗어나 다음 마을 루이뗄란까지는 약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12세기경 지어졌다는 낡은 성당옆을 지나 다음 마을까지 계속 걸었다.

 
오늘도 햇빛은 따갑고 갈증도 나지만 그래도 그늘에 들어서면 시원함이 다행이다.

 
약 한 시간 10분 정도 지났을 무렵 빠가 나타났다. 이제 산을 오르기 전에 만날 마지막 빠가 아닐까 싶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편이 시원한 맥주를 사가지고 나왔다. 마리노를 따라 샀던 체리를 꺼내어 맥주와 함께 먹었다. 평소 맥주를 그리 즐기지 않았던 내가 순례길에서의 맥주는 마치 오아시스 같다.

 
비야프랑카에서 걸어온 길이 마치 중대한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한 워밍업이었던 것처럼 이제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

 
포장이 되어있는 지루한 오르막길을 걷다가 중간에 왼편 숲길로 들어섰다. 녹음이 우거진 게 시원하고 좋다. 

 
그것도 잠시, 질퍽한 오르막 숲길이 이어지고 약 한 시간 정도 산에 오르니 라 파마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은 조용하다. 원래 이 지역은 소들을 방목하던 초원이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큰 나무들로 둘러싸여 아늑한 마을로 변했다고 한다. 

 
맑은 물이 졸졸 흘러나오는 급수대가 있어 목을 축였더니 시원하고 상쾌하다.

 
마을을 벗어나니 또다시 오르막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너무 자신만만했었나 싶게 피레네 산맥 오르는 길보다 강도가 훨씬 세다. 눈앞에 보이는 정상을 목표로 두고 힘을 내어 오르면 또 다른 언덕이 기다리고 있다. 언젠간 내리막이 나오겠지 스스로 위로하며 힘을 내기를 반복하다 보면 결국은 오르게 되겠지만, 중간에 포기할 수 없는 고난의 길이다.

 
코앞에 마을이 보이는데 산중턱 마을까지 오르는 길이 아득하다. 온 힘을 다해 숨을 고르며 오르다 보니 얼굴은 붉게 타오르고 갈증이 난다. 

 
드디어 마을 어귀에 다다르고, 말에 쟁기를 달아 밭을 가는 농부들이 보인다. 산중턱 마을에 이미 도착해 길가에 있는 빠에 앉아 맥주 한잔 들이켜고 있는 트래킹멤버 중 남자분과 일본아저씨가 보인다. 이제는 너무나 반가운 사이가 되어버렸다. 일본아저씨는 좀 더 가다가 되돌아와 맥주 한잔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과 인사 나누고 우린 계속 직진하여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 아래로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풍경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아마도 그동안 걸어왔던 마을 중 가장 높은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닌지? 아찔한 언덕길을 올라 갈리시아지방 표지석이 있어 사진을 찍었다. 멋진 외국인 아저씨가 찍어주며 엄지손가락을 높이 추켜올린다. 오늘 이 길을 오른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칭찬하고 있는 듯하다. 나도 물론 모두가 자랑스럽다.

 
이제부터 까스띠야 지방을 벗어나 갈리시아 지방이라니 더 이상 평지는 없을 것 같다. 어려운 길을 뒤로하고 나무숲길로 접어드니 아름다운 연주소리가 난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남자분이 백파이프를 연주하고 계셨다. 남편이 동전 하나 바구니에 넣어주고 지나간다.

 
도로가 나오고 눈앞에 마을이 있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오 세브레이로다. 우리가 결국 해냈구나 싶은 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가슴 벅찬 뭔가가 뭉클거리며 올라오는 걸 느끼겠다.

 
도착시간 오후 1시 35분. 공립알베르게는 오후 1시부터 체크인을 시작하여 대기자들이 여럿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 일행들보다 앞서 걷던 트래킹 멤버 중 제주에서 오신 분이 체크인을 못하고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줄을 서서 침대를 배정받았는데 2층의 단층침대 두 개를 배정받았다. 아마도 우리 이후로는 1층 벙커침대를 배정받은 모양이었다.

8인실 단층침대지만 모두 남자고 나만 여자다. 아마도 밤새 코골이들 때문에 침대가 들썩이지 않을까 걱정은 되지만 이만하면 금상첨화다.

 
우선 밖으로 나가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연이가 추천해 준 된장국물 같은 야채수프와 뽈보 그리고 샹그리아로 점심식사를 했다. 순례자 메뉴가 16유로였는데 우린 단품메뉴를 시켰더니 둘이 합하여 52유로가 나왔다. 비싼 점심을 먹었다. 뽈보 하나에 17유로였다. 대단히 비싸지만 맛있었다. 산꼭대기에서 뽈보라니..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마리노가 길 건너편에서 괜찮냐고 물어본다.  "I'm fine thanks!"라 큰소리로 얘기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놀란다. 정말 괜찮아요 마리노!
 
알베르게로 돌아와 씻고 빨래하고 언덕에 올라가 보았다. 

 
세상 가장 높은 곳에 공원처럼 모든 게 눈 아래로 보인다. 남편은 일기도 쓰고 오늘 수고한 내 다리에 안티프라민 로션 발라 마사지도 해줬다. 앞 벤치에는 벌써 자리 잡고 누워 일광욕하고 있고, 부부인듯한 남녀가 꽃을 한주먹 따며 걸어오더니 풀밭에 앉는다. 

 
뽀글 머리 청년은 먼 산 바라보며 홀로 앉아있고, 캐나다아가씨는 뷰리플을 연발하며 책을 한 권 들고 지나가더니 풀밭에 누워 얼굴을 책으로 덮는다. 보기에는 대단히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보기만 해도 몸이 가려운 듯하다.   

 
저녁 무렵 마을로 내려가 성당으로 갔다. 마당 한편에 서있는 돈 엘리아스 발리냐의 흉상 앞에 돌하나 주워 '부엔카메노 연두봉려리 2024'라 써서 기도하는 마음을 담아 올려놨다. 그는 오 세브레이로의 교구 신부로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부활시키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바친 분이라고 한다. 길을 걸으며 내내 보았던 노란색 화살표 표시를 처음 만들었으며 까미노친구협회를 설립하기도 했다고 한다. 언젠가 방송에서도 보았던 그 산티아고 이야기의 주인공이 이곳 신부님이셨다.

 
성체와 성작 앞에 작은 제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기적의 전설이 있었다. 날이 궂은 어느 날 한 순례자가 이 마을에 도착하여 미사참례를 하던 중 성찬의 전례에서 성체의 신비가 실제 일어나게 해 달라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미사를 집전하던 사제가 성체축복을 한 후 경배하고 눈을 뜨자 성체가 고기 한 조각으로 변해 있었고, 성작에 든 포도주는 피로 변하여 있었다고 한다. 이 기적의 이야기는 유럽 전체에 널리 퍼졌고, 이사벨여왕이 이 기적의 성작과 성반을 탐내 자신에게 바치라 명령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적의 성작과 성반을 실은 노새가 라 파바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아 결국 이 성당 안에 현재까지 보관되고 있다고 한다.

 
저녁 7시가 되자 사람들이 모여들고 미사가 시작되었다. 유난히 많은 순례자들이 미사를 함께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감사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한국인은 우리 부부밖에 없었다.

 
미사 마치고 간단히 스테이크랑 오믈렛, 감자튀김, 맥주, 콜라 주문해서 먹고 있는데 지예 닮은 아가씨가 들어와 피자를 시켜 먹는다. 물론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도 있겠지만, 혼자라도 당당해 보이는 모습을 보며 연이도 저랬겠지 떠올려보게 된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알베르게로 돌아오는데 어느 식당 앞 벤치에 앉아 뭔가를 기록하고 있는 마리노를 만났다. 일반적이지 않은 좀 특별한 순례자다.

 
같은 길을 걷고 있으나 순례의 여정은 가지각색. 빨래를 걷고 있는데 한국인 같은 남성이 지붕 위에 앉아 멀리 바라보고 있다. 이런 그림도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못 볼 풍경들이니 한껏 누려야 할 것들이다. 나중에 많이 그리워지려나?
 
9시경 룸에 불이 꺼지고 잠자리에 들었다. 혹시 모를 소음을 대비하여 귀마개를 꾹 눌러 깊게 집어넣고 잠이 들었는데 한밤중에 들어온 나이 든 순례자분이 침대에 눕다가 넘어졌다. 다행스럽게도 단층침대이긴 하지만 걱정스러워 옆침대 남자가 다가가니 괜찮다 하신다. 어쨌든 작은 소동으로 단잠이 깨어 다시 잠들기 어려울 것 같으나 내일을 위해 애써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