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세브레이로(O Cebreiro)에서 뜨리야까스떼야(Triacastela)까지 22km
5시간 20분 소요 (am 6:00 ~ am 11:20)
2024년 5월 30일 목요일
밤사이 폭풍우가 지나간 것 같다. 단층침대에 8인실. 처음 침대배정받는 순간만 좋았다. 우리 방엔 강력한 코골이가 있었고, 늦은 밤 방에 들어와 침대에 눕다 쓰러지셨던 분이 밤사이에도 침대에서 떨어졌다 하고 화장실에 가서도 쿵쾅거리다가 대변냄새를 풍기며 방에 들어왔다고 한다. 전날부터 두드러기인지 목이 가려워 항히스타민제를 먹고 잤더니 쿵 소리와 함께 약간의 소란스러움은 느꼈던 것 같지만 잠이 들기는 했던 모양이다. 남편은 한숨도 못 잤다며 지난밤 난리도 아녔다고 한다.
도망치듯 준비하고 나와 6시경 출발했다. 조금 더 늦게 출발했어야 했을까? 낮게 드리워진 산세 위로 구름과 함께 아침 서광이 비치고 있다. 이곳에서 일출을 보지 못하고 떠나기에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이것으로 만족하고 새벽 숲길에 들어섰다. 생각보다 숲길이 어두워 당황스러웠는데 앞서 걷기 시작한 미국인 남성의 플래시불빛에 의존해 어둑한 길을 따라가다 보니 금세 밝아졌다.
산길을 내려오며 마리아수녀님을 비롯하여 인연이 되었던 수녀님들과 신부님들을 기억하며 사제와 수도자를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 본당 25주년을 보내면서 겪었던 일들이 새삼스럽게 생각났다. 좁은 소견으로 생각하니 아직도 서운함이 남아있는 게지.
숲길을 빠져나오면서 풀밭에 소들이 보이고 마을이 나왔다. 리냐네스라는 마을이다. 트랙터를 비롯한 농기계들이 여기저기 많이 세워져 있는 걸 보면서 혹시 마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농기계일까? 아님 농기계 수리센터가 이곳에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네 텃밭농사와는 다른 드넓은 대지와 어울리는 장면이다.
마을을 지나 또다시 오르막길을 걸어 숲길로 들어섰다. 오늘 걷는 길은 내리막길만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은 큰 오산이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좋은 것만큼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산 로께언덕에 오르는 중 구름사이로 아침햇살이 빛났다. 언덕에 오르니 바람을 뚫고 힘겹게 걸어가는 순례자동상이 서있다. 갈리시아 지방의 조각가 아꾸냐의 작품이라 한다.
오르막길 이후 평탄한 길은 능선이 아름다운 고원지대 풍경을 감상하며 걷기에 딱 좋다. 연둣빛이 초록으로 변해가는 계절의 숲이라서 더 편안한지도 모르겠다.
약 20분 정도 걸어 마을에 도착했다. 오스삐탈 다 꼰데사 마을이다. 성당 옆 돌담을 따라 걸어 금방 마을을 빠져나왔다.
이쪽 지방에서는 검고 납작한 돌들이 많이 나와 건축에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마치 제주의 돌담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다.
빠도르넬로 마을에 들어서니 돌로 지어진 성당이 나온다. 성 요한 기사단이 관할하던 전원풍 성당이었는데 16세기에 재건축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당은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은 사람들의 공동묘지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마을을 지나니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이 길게 나타났다. 하산길이라 너무 긴장을 늦춘 탓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새벽부터 우리 앞을 걷던 미국인남자는 꾸준한 보폭으로 천천히 올라가고 우리도 그 뒤를 따라 천천히 숨을 고르며 올라갔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무렵 언덕 위로 오르니 보상처럼 빠가 나타났다. 누군가 정말 좋은 위치에서 빠를 운영 하는구나 싶었다. 주저 없이 빠에 들어서니 노익장을 과시할 만큼 멋진 스페인할아버지 두 분이 카페를 운영하고 계신다. 언제 출발했는지 트래킹 멤버들이 벌써 도착해 우리를 반긴다.
중간에 사과 하나씩 베어 먹으며 걷기는 했지만 딱 아침식사시간인 8시 10분이다. 아침식사로 샌드위치와 또르띠야, 커피, 오렌지주스를 주문했다. 위치상 가격이 조금 높은가 생각했는데 비교적 양이 많았다. 결국 남은 샌드위치는 테이크아웃하여 배낭에 넣고 빠를 나오니 그새 안개인지 구름인지 자욱하게 끼었다.
약 한 시간 정도 안갯속을 걷다 보니 주변이 맑아지면서 서서히 안개가 걷혔다.
오 비두에도 마을 작은 경당 옆 조개무늬가 새겨져 있는 비석옆에 누군가 예쁘게 꽃을 꽂아놨다. 검은 돌을 쌓아 지은 작은 경당은 아마도 산티아고 순례자를 위해 지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길고 긴 터널을 빠져나온 듯 시야가 맑아지니, 지나온 풍경을 눈에 담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눈앞에 펼쳐진 풍경들이 더욱 아름답고 소중하다. 안갯속을 걸으면서 어디쯤인지 얼마만큼 내려왔는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앞서 걷던 미국인 남자는 동양인 여자 길동무가 생겨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걸었다.
산아래 검은색 지붕들이 모여있는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아마도 우리가 갈 목적지일 듯하다.
필로발이라는 마을에 다다르자 빠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 알베르게가 나오고 금방 다시 숲길이 이어졌다. 집이 드문드문 있는 작은 마을길로 나이 드신 아주머니 한분이 작대기를 들고 소를 몰고 계셨고 소떼들이 지나니 개 두 마리가 뒤따랐다. 아마 개들의 역할은 소몰이었나 보다. 길옆에 바짝 붙어 소떼가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앞서 걷던 남자가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멈추라 신호를 보냈다. 혹시라도 소들이 놀라 위험한 상황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언덕 높은 곳 바에서 만났던 트래킹멤버 중 리더역할을 하는 여자가 어느새 뒤따라왔다. 그들도 우리 목적지와 같은 곳에서 묵는 다한다. 그 마을에 공립알베르게가 없다며 18명 묵을 수 있는 알베르게에 짐을 부쳤다한다. 분명 우리 목적지가 공립알베르게인데 뭔가 잘못 알았나 보다.
산아래 내려다보이던 마을에 드디어 도착했다. 마을입구에 서있는 고목이 양갈래로 뻗어 푸른 잎을 돋아 근사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사연이 담겨있을 듯한 전설 속의 연리지 같다.
공립알베르게는 마을 입구에 들어서 너른 풀밭 너머에 한가로이 자리하고 있었다.
갈리시아지방 공립알베르게의 공식 색깔이 파란색인가 보다. 알베르게 앞에는 한 남자가 벌써 도착해 지팡이와 배낭을 세워둔 채 쉬고 있었고 우리가 도착한 후 이태리아가씨가 절룩거리며 걸어왔다. 오픈시간까지는 아직 한 시간 반이나 남아있다. 마냥 기다리고 있기에는 시간이 아까워 우선 마을로 내려가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마을로 내려가다 보니 일본에서 온 남자가 빠에서 식사하고 있었다. 그는 다음 마을까지 걷는다 하셨다. 우린 조금 더 걸어내려 가 자리를 잡았다. 남편은 큰 고추와 햄과 야채가 들어간 요리를 주문했고, 난 쇠고기와 달걀프라이와 야채가 들어간 요리를 주문해서 먹었다. 야채에 올리브유를 듬뿍 뿌려먹는 게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식사 후 알베르게로 돌아가는 길은 귀찮고 멀었다. 약간의 오르막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오픈시간에 맞춰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몇 명의 사람들만 대기 중이다. 이곳은 모두 4인실로 며칠 전 같은 숙소에 묵었던 이태리아가씨와 같은 방에 배정되었다. 계곡물소리에 한적하니 좋다. 야외 빨랫줄에 침낭 널어 말리고, 씻고 모든 세탁물을 모아 3유로에 세탁기 돌렸다. 바깥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데 남편이 옆에서 거든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빨래집게를 빠짐없이 집어놓며 손발이 안 맞는다 티격태격. 결국 남편이 삐졌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면서 잠깐 머릿속에 회오리바람이 불었지만 쓸데없이 생각을 낭비하지 말자 생각이 들어 테라스에 나와 일기를 썼다. 통창문이 열려 바깥바람이 솔솔 들어오고 새소리, 물소리에 푸른 풍경을 바라보는 게 편안하다. 눈감고 의자에 앉아있던 남편이 '오늘의 포토!'라 하며 내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순간 찡끗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가는 산티아고 이야기 아닌가?
마트의 브레이크타임이 끝나는 시간인 4시에 맞춰 시장가방 들고 마을로 내려갔다. 예전 중세시대에 이곳은 세 개의 성이 있을 정도로 번성한 곳이었다고 한다. 특히 석회암이 많아 순례자들이 이곳의 돌을 날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을 짓는데 도움을 줬다고도 한다. 오래된 산티아고 로만시아 성당 앞마당은 묘지로 사용되고 있었다.
마을을 돌아보고 난 후 마트에 들러 장을 보는데 지예 닮은 아가씨가 장을 보러 나왔다. 마을 안쪽에 있는 알베르게에 투숙했다고 한다. 과일코너에서 판매자와 스페인어로 이야기하는 그녀가 참 멋져 보였다. 사과와 물과 저녁에 식사할 간단한 패스트푸드 몇 가지 사가지고 돌아와 알베르게 테라스에 앉아 식사를 했다.
느지막이 스페인 여자 순례자가 한분 들어왔다. 샤워실을 물어 알려드렸는데 나중에 테라스에 나와 내 앞에 앉았다. 나보고 산티아고 순례길이 처음이냐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낡은 책을 한 권 꺼내더니 내게 보여준다. 산티아고 순례책자였다. 벌써 네 번째 순례라고 한다. 이곳에서 순례길이 갈라지는데 어디로 갈 거냐 해서 우린 사모스길로 갈 예정이라 했더니, 산실루트를 추천한다고 한다. 7년 전 우리 딸이 산실루트를 걸었다고 해서 우린 사모스루트를 걸어볼까 한다며 남편과 함께 왔다고 했는데, 당신의 남편은 지금 하늘나라에 있다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마도 남편과 함께 이 길을 걸었던 추억이 있는 듯했다. 그녀를 보며 먼 훗날 그리운 추억이 될 수도 있는 이 시간을 소중히 채워야 함을 새삼 다시 깨우친다.
그래, 뭣이 중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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