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리(Zubiri)에서 팜플로나(Pamplona)까지 20.5km
6시간 40분 소요 (am 6:10 ~ pm 12:50)
2024년 5월 6일 월요일
잘디코 알베르게 여주인은 참 독특한 여인이었다. 수비리 다리를 건너자마자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부츠를 신고 담배를 꼬나물고 있는 모습을 보며 참 개성 있는 분이시다 생각했는데, 목소리도 허스키하여 서부영화에 나올 것만 같은 스타일이다. 저녁 늦게까지 떠들던 순례객들에게 9시쯤 되었을 때 이제 모두 들어가 잠자리에 들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강단 있게 들리더니 급 조용해지고 우리 방에 묵는 사람들도 모두 들어왔다.
전날밤보다는 조금 잔듯 하지만 그래도 코 고는 소리에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새벽 5시경 짐 챙겨 들고 로비에 나와 무릎상태를 살펴보니 짐을 가볍게 하고 천천히 걸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지만 자칫 심해질수도 있으니 어떻게 결정을 해야할지 고민이다. 그렇지만 순례를 제대로 하고픈 욕망은 크다. 무릎 마사지를 하고 보호대를 차고 몇 걸음 걸어보니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아 결국 걷기로 마음먹었다.
내 배낭에 넣을 물건을 챙기고 남편을 깨워 떠날 준비 하자했다. 걱정어린 남편에게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자신하며 남편배낭에 있는 짐들을 일부 꺼내어 내 배낭에 옮겨 담아 동키서비스 신청했다.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한 후 준비했던 소염진통제를 먹고 새벽 6시 10분경 알베르게를 나와 길을 나섰다.
지난밤 내리던 빗줄기는 약해져 이슬비로 바뀌었다. 곧 그칠 것 같은 예감에 우산을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다리를 건너 언덕을 오르며 침대밑에 놓았던 스틱이 생각났다. 스틱 없이 걷기가 불편하니 빨리 생각 났다 하며 다리 아픈 걸 자랑하듯 이야기하니 남편은 내 말이 궤변처럼 느껴지는지 한숨을 쉰다. 남편이 다시 마을로 내려가 스틱을 가져오고 개천을 따라 팜플로나를 향해 걸었다. 어스름한 새벽이라 헤드랜턴 없이 길을 걷기가 좀 위험하다. 앞서 걷는 이들의 불빛을 따라 조심스럽게 걷노라니 차츰 여명이 밝아온다.
멀리 불빛이 유난히 밝은 마을엔 제법 큰 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걷다가 처음 만나는 대규모 공장지대다. 자연과 꽤 잘 어울리는 주황색 지붕 집들과 대조적이다.
언제 출발했는지 앞서가던 트래킹 멤버들을 다시 만났다. 남자분은 뒤에서 연신 사진을 찍으시고 여자 세분은 앞서 걸으며 작은 마을 구석구석을 구경하며 걷고 있었다. 생장역에서 내려 빠르게 걷던 분이 이 멤버의 대장님이었다. 남자분은 대장님의 남편, 다른 두 분은 수년 전부터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로 트래킹을 함께 다니고 있는 회원이라 했다. 어쨌건 바욘에서, 생장에서 만났다가 전날 수비리 가는 길에 못 보았는데 오늘 다시 만나니 일행처럼 반갑다.
에스키로츠 마을을 지나오는데 앞서가던 트래킹 멤버들이 울타리에 매달려 무언가를 보고 있다. 마당 한켠에 새가 알을 낳아 마치 장식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예쁘게 놓여있다.
다리는 시원찮으나 그분들을 앞질러 걷다가 쉬어가려 길 옆에 앉았다. 그 사이 긴 다리 서양인들이 성큼성큼 우리를 또 앞질러 간다. 알베르게 예약을 안 한 게 신경이 쓰여 우리도 오래 쉴 수가 없다.
수비리를 출발해 마을을 몇번 만났지만 마땅히 쉴만한 바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다시 숲길로 들어서고 얼마쯤 걸어야 마을이 나타날지도 모르겠고, 새벽까지 비가 와 질퍽한 흙길에 마땅히 앉아 쉴만한 곳도 없다. 무릎이 아프니 쉬어가자 하며 앞서가던이들이 쉬었던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리니 기분이 상쾌하다. 아침에 남겨둔 바게트빵을 나누어 먹었다.
우리가 쉬었던 자리에서 얼마 안 가 숲길이 끝나고 바가 있는 마을이 있었다. 수비리로부터 9.5km 지점 수리아인이라는 마을이다. 다리 건너 바에 우리를 앞질러 갔던 사람들이 앉아 쉬고 있다. 좀 전에 쉬었기에 우리는 마을을 지나쳐 도로를 따라 난 길에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팜플로나 이정표가 보였다. 버스를 탔다면 아마도 이길로 지나갔겠지? 그래도 아직까지는 대체로 평탄한 길을 걷고 있으니 다행이다.
출발한 지 두 시간 반만인 9시 40분경 이로츠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11km 지점이니 이제 절반 남았다. 아픈 다리를 끌고 그래도 잘 걸어왔다.
마을을 빠져나와 밀밭사이 길을 지나 다리를 건너니 아까 만났던 도로가 나온다. 간이 화장실이 있었으나 먼저 이용하신 분이 사용하기 힘드니 웬만하면 들어가지 말라 하신다. 쉴 수 있는 벤치가 있어 자리를 잡고 앉아 연이와 영상통화를 했다. 집 떠난 후 처음 하는 영상통화다.
동양인 남자와 인사를 나눴는데 타이완에서 왔다 하셨다. 우리보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 한국에서 왔다 하니 서울에 방문했었다 하며 뭐라 이야기하는데 못 알아듣겠어서 I don't speak english 라 말했더니 I don't speak english too 라 말해서 서로 웃었다.
도로를 건너 꽤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나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내리막보다는 오르막길이 편했다. 언덕에 올라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시원하다.
마을을 지나며 검은 개와 흰 개가 사이좋게 한가로이 앉아있는 모습을 발견하여 사진을 찍었다. 지도를 보니 사발디카라는 마을이다.
마을은 금방 벗어나고 다시 숲길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매일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을 이 길을 절뚝거리고는 있지만 지금 우리가 걷고 있음에 뿌듯하다.
고도가 높은 길 오른편에 유채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조금 더 걸으니 정면으로 제법 큰 도시가 보인다. 이제 언덕을 내려가면 목적지에 도착할 거라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트리니닷 데 아래라는 도시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 도심을 관통해 걷다가 왼편으로 돌아 개천 쪽으로 가고 있는데 어느 남자분이 우리에게 길을 잘못 가고 있다고 알려주신다. 노란 화살표를 놓쳐 느낌상으로 개천을 따라 걷다 보면 팜플로나로 향하는 길이 나올거라 생각했었다. 순례길은 도시를 관통해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접할 수 있게 해 놓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도시를 지나며 눈 앞에 트래킹 멤버들이 나타났다. 그 그룹의 대장님이 마트에 먹을 것을 사느라 들어가 일행들이 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분들은 한국에서 기본양념을 가져와 매일 시장을 보고 알베르게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하셨다. 그래서 거의 다 왔나 보다 했는데, 도시를 빠져나와 계속 걸어야만 했다.
아르가 강위의 막달레나 다리를 건너 높다란 성벽을 끼고 올라가니 돌로 된 아치형 성문이 나온다. 수말라까레기 문이라 하는데 1553년 카를로스 5세 때에 부왕이었던 알부르께르께 공이 건설했다고 한다. 일명 프랑스문이라고도 하며 이곳을 통과하여 팜플로나에 입성하게 되어있었다.
무릎이 불편하여 걷기 힘들었지만 큰 탈없이 예정시간보다 빠른 12시 50분경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팜플로나 공립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벌써 도착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지만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많아 거뜬히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 뒤로 트래킹멤버도 줄을 서서 우리와 나란히 침대를 배정받았다.
수도원에서 운영한다는 알베르게는 규모가 꽤 크고 좋았다. 2층에서 1층을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로 벽 색깔이 노란색인 것이 특징이었다. 까미노의 노란색 화살표와 같은 맥락으로 정한 색깔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침대 배정받고 나서 바로 점심식사를 하러 나갔다. 팜플로나 대성당에서 가까운 맛집을 검색하여 들어가 연이가 추천한 메뉴로 바게트빵에 계란과 소시지가 올려진 음식과 함께 맥주와 오렌지 주스를 곁들여 점심식사를 했다.
우리말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한국인 남자분 둘이서 식사하러 들어왔다. 남편보다는 나이가 조금 더 들어 보였다. 한국말이 반가워 인사했더니 그분들은 우리보다 하루 늦게 생장을 출발했는데, 수비리 가는 길에 너무 힘들어 버스 타고 팜플로나로 점프했다고 하셨다. 상황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건강해 보이는 남자분들이 초반에 점프했다니 조금은 이해가 안 됐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번이 두 번째 순례길이라 하여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시 알베르게로 들어가 샤워하고 세탁실에 빨랫감을 가지고 갔더니 마침 세탁기 빈자리가 생겼다. 친절한 외국인 남자분이 세탁세제를 나눠주시며 손으로 부스러뜨려서 세탁기 안에 직접 넣어야 세탁이 잘된다며 알려주신다. 짧은 단어와 손짓 몸짓으로 소통이 됨에도 신기한데, 영어를 잘하는 듯한 한국인 남자가 곁에 있다가 손수 해석까지 해준다. 세탁시간 40분을 기다리며 침대에 앉아 다리 마사지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였다. 준비한 빨랫줄과 빨래집게를 가지고 내려가 중정 마당에 빨래를 널어놓고 다시 거리로 나갔다.
팜플로나는 참 예쁜 도시였다. 시청사 앞 광장을 지나 분수대가 있는 까스띠요 광장으로 갔다. 다리는 절뚝거리면서도 이 거리를 이렇게 한가로이 걷고 있는 우리가 실감이 나지 않아 남편에게 너무 좋다 했다.
햇빛을 등에 지고 앉아 따끈함을 즐기며 앉아 까스띠요 광장에 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이 함께 공을 차고 있는 모습은 예쁘다 못해 부럽기도 했다.
연이는 순례자메뉴를 찾아 먹어보라 하는데 어디서 어떻게 먹어야 할지 잘 몰라 여기저기 검색해 보며 가다 보니 점심식사한 그 식당 앞에 서있었다. 남편은 식당 앞 배너에 있는 소고기요리 사진을 보며 고생했으니 맛있는 것 먹자고 한다. 소갈비 요리와 빠에야와 맥주를 주문했다. 미국인 부부가 들어와 우리 음식이 나오는 걸 보고는 작은 탄성과 함께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요리는 정말 맛있었다. 주인남자는 요리가 어떠냐 물었는데, 우린 훌륭하다며 칭찬을 했다. 식사가 끝날 무렵 디저트를 어떤 것으로 할 건지 묻는다. 난 이미 배가 찼으니 안 먹겠다 했는데, 남편은 메뉴 안에 모두 포함된 거라며 같은 걸로 두 개를 주문한다. 그리고 목이 말라 물을 달라 했더니 물한병을 가져다준다. 그리고는 계산서를 받아보고 73유로가 나와 좀 놀랐다. 디저트도, 물도 모두 각각 계산서에 포함되어 있었다. 순례자로서 너무 과용했다. 순례 3일 차에 푸짐하고 든든한 음식을 먹으면서 우리나라와 다른 스페인 식사문화를 비싸게 체험했다.
팜플로나 대성당에 올라갔더니 현지의 신자들이 모여 묵주기도를 하고 있었다.
미사 전 기도시간인 것 같았으나 시간이 늦어 주모송만 하고 다시 나와 인근에 있는 까르푸마켓에 들러 과일과 우유를 사고, 베이커리점에 들러 하몽이 들어간 바게트빵을 사가지고 왔다.
옆침대는 트래킹 멤버 여자분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이 사용하셨다. 나보다 열두 살이 많은 띠동갑 언니였다. 70이 넘은 나이이기도 하지만 코로나를 겪으면서 몸이 많이 약해졌다며 오늘 걷는 길에 무릎이 아파 일행보다 뒤처져서 간신히 오셨다고 하셨다. 내 무릎의 증상을 말씀드리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몸을 아끼고 단단하게 하라 하신다.
무릎이 아파 남편보고 침대 2층을 써달라 했는데 조금만 뒤척여도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려 잠을 청하기가 어렵다. 자정쯤 화장실 간다고 내려온 사이 내가 올라갔다. 차라리 체중이 덜 나가는 내가 2층을 사용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불편한 잠자리가 점차 익숙해져 가고 있지만 여전히 잠은 부족하다. 그렇지만 이 많은 순례자들과 함께 산티아고 길 위에 존재하고 있음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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