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장 피에드포르(St-jean-pied-de-port)에서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까지 약 25km
악천후로 9시간 소요 (am 5:50 ~ pm 2:50)
2024년 5월 4일 토요일
순례 첫날이다. 잠을 잤는지 모를 정도로 지루하고 긴 밤을 보내고 있노라니 여기저기서 부스럭대기 시작한다. 시간을 보니 새벽 3시밖에 안 되었다. 아직은 더 잠을 자야 할 것 같아 두 눈 꼭 감고 다시 잠을 청했다. 소음들 속에 두 시간 정도 버티다가 나도 부스럭대며 출발준비를 하였다. 남편도 함께 준비를 한다. 배낭을 들고 룸에서 나오니 벌써 나와 출발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이다. 그중 대부분이 한국인이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배낭에서 불필요한 짐들을 꺼내 보조가방에 담아 동키서비스 보낼 준비를 하였다. 봉투에 목적지와 이름, 전화번호를 적고 8유로를 넣어 가방에 매달아 알베르게 직원에게 안내받은 대로 동키 보내는 장소에 놓고 5시 50분경 밖으로 나왔다.
우리나라 새벽시간을 기준으로 이쯤이면 서서히 밝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완전 밤중이다. 일출시간이 6시 50분으로 우리나라보다 약 2시간 정도 늦게 해가 뜨니 헤드렌턴을 가져와야 했음을 실감했다. 가로등 불빛 따라 노트르담 게이트를 향해 걷고 있는데 전날 만났던 트래킹멤버 네 분이 반대편에서 우리를 마중이라도 나온 듯 걸어오고 있다. 반가워 인사했더니 본인들이 가는 방향이 순례길 아니냐 묻는다. 전날 확인한 바에 의하면 우리가 가는 방향이 맞다 말하며 어플을 확인했더니 역시 우리 방향이 맞는 길이었다. 마을을 빠져나오자마자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치고 걸어야 했다. 뒤따라오는 그분들의 불빛에 의존하여 걷다 보니 군데군데 불빛들이 깜박거린다. 우리보다 더 일찍 길을 나선 이들의 불빛이다.
점점 날이 밝아지나 하늘이 잔뜩 흐려있어 일출을 기대하기는 어렵겠구나 싶더니 결국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산에 오르면 기온이 더 떨어질 걸 예상하여 옷이 젖기 전에 비옷을 미리 입었다.
해발 1400미터 피레네 산맥을 넘으려면 당연 끝없이 펼쳐지는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할 테지만, 평소 평지 걷기에만 열심이다가 오르막길을 계속 오르려 하니 힘이 들기는 하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뒤돌아보면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생장이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었구나 감탄하며 다시 힘을 얻어 올라가기를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오리손에 도착했다.
생장에서 오리손까지는 약 2시간 반쯤 걸렸다. 바에 문이 열려있어 들어가니 사람들이 앉아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비를 벗고 배낭을 내려놓고 자리를 찾고 있는데 바욘에서 만났던 아가씨가 우리 보고 옆자리에 앉으라 하며 웃는다. 그녀는 사립알베르게에서 자고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걷고 있다고 했다.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함께 간식으로 준비했던 마들렌이랑 오란다를 하나씩 먹으며 그 아가씨에게도 나눠줬더니 맞은편에 앉은 외국인 청년에게 또 나눠주며 즐겁게 이야기한다. 영어를 잘하니 외국인친구들과도 맘껏 소통할 수 있어 좋구나 싶은 게 많이 부러웠다.
젊은 친구들에게 인사하고 먼저 바에서 나와 화장실 다녀오고 우비 입고 떠날 준비를 하였다. 그 사이 그 아가씨를 비롯한 젊은 친구들이 먼저 출발하여 그들에게 '부엔까미노~' 하고 인사했다.
8시 45분경 오리손 산장을 출발, 이제 본격적으로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한다.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린다. 그나마 세찬비가 아니라 다행이다. 대신 바람이 무척 셌다. 그렇게 센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본 건 난생처음이다.
맞바람에 숨쉬기도 힘들뿐더러 길 가장자리를 걷기에는 바람에 날려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아 최대한 안쪽길로 붙어 걸었다. 남편은 별로 힘들지 않은 건지, 아님 내가 걱정이 되어 본인이 힘듦을 못 느끼고 있는 건지 계속 뒤돌아보며 나에게 코치하느라 바쁘다.
바람을 맞으며 걷다 서기를 수십 번 반복하며 올라가 남쪽 방향으로 펼쳐진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에 섰다. 끝도 없이 울퉁불퉁 솟아있는 산봉우리들이 장엄하게 펼쳐져있다. 그 오른편 바위 위에 성모님이 아기예수님을 안고 호젓이 서있다.
25살 연이를 생각하면서 이 정도의 힘듦은 이겨내야 한다는 의지가 생기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배낭을 비우지 않은 채 모든 짐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피레네 산맥을 넘었을 7년 전 25살 연이의 어깨가 안쓰럽고 대견해 눈물이 났다. 와 보지 않았으면 실감하지 못했을 체험이다.
마침 기일을 맞이한 아버님도 기억하고, 우리의 안전한 순례길을 위하여 모자상 앞에서 주모송을 바쳤다.
비는 멎었으나 바람은 여전히 세차다. 이제 비옷은 기온도 차고 바람도 세게 불어 체온유지를 위하여 벗을 수가 없다.
아~ 순례길 초반부터 너무 힘든걸? 25살 연이는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내가 여기 왜 왔을까 하며 울었다 했었다. 남편 없이 혼자 왔으면 나 역시 그렇지 않았으려나?
돌무덤 옆에 넓적한 바위가 있어 걸터앉아 사과 한쪽씩 먹으며 숨을 돌리고 또다시 걸었다.
남편은 돌 하나하나에 순례자의 소원이 담겨있으므로 돌무덤 가까이에 앉아 쉬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바람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그의 마음인걸 알지만 남편이 예민하게 군다 생각이 일순간 들었다.
거의 반쯤 걸었을 때 멀리 푸드트럭이 보인다.
오리손을 출발한 지 2시간 15분쯤 지난 11시경, 푸드트럭에서 따뜻한 핫쵸코 한잔과 바나나 하나씩 사서 바위에 걸터앉아 먹었다. 핫쵸코 한 모금 마시니 속이 금방 따뜻해지는 듯하다. 핫쵸코 하나에 바나나 두 개를 4.5유로쯤 준 것 같다. 비가 내리지 않아 바위에 앉아 쉴 수 있음에 감사했다.
푸드트럭을 지나 언덕을 오르니 또다시 바람이 세차다. 펄럭거리는 비옷을 벗으면 한결 바람을 덜 맞을 것 같으나 추워서 벗을 수도 없고, 어쨌든 가다 보면 괜찮아질 거야 주문을 걸며 계속 걷는다.
이제 비는 완전히 그쳐 간간이 푸른하늘을 내비친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땡볕이었으면 더 힘들었을까?
산티아고까지 765km 남았다는 표지석이 나타났다. 이제 겨우 14km 정도밖에 못 왔으니 앞으로 10km 이상 더 걸어야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벌써 정오가 넘었다.
근래에 비가 많이 내려서 숲길을 지날 때엔 땅이 질퍽해 걷기가 불편했다. 첫날부터 진흙탕에 빠져 신발을 적실수 없어 조심스럽게 걷는데 수레바퀴를 단 도구에 배낭을 싣고 끌고 가는 순례자가 우리를 지나쳐갔다. 모두 힘들지만 서로에게 아낌없이 인사한다. 우리에게 '부엔까미노!' 라 인사하며 지나갔다. 비바람을 맞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눈인사를 하고 더러는 부엔까미노라 말하는 것이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다.
출발한 지 7시간 만인 12시 40분경 적당한 자리를 찾아 바위에 걸터앉았다. 잠시 신발을 벗고 발을 주무르려 하는 순간 다리가 뻣뻣해지며 쥐가 난다. 남편이 다리를 주물러주느라 정신없는 사이 사람들은 우리를 바라보며 부엔까미노, 파이팅이라 말하며 지나간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려는 마음은 모두가 한결같은가 보다. 동지가 생겨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간간이 쉬면서 간식을 먹었지만 앉은 김에 전날 준비했던 바게트빵과 요구르트, 사과로 점심식사를 했다.
숲길을 빠져나오니 벌판에 대피소가 나타난다. 사람들이 바람을 피해 옹기종기 들어가 앉아있다. 불편했지만 그래도 점심식사로 빵을 먹으며 잠시 쉬었으니 우리는 그냥 지나쳐 계속 걸었다. 하산길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희망을 갖고 올라가면 또다시 넘어야 할 언덕이 나온다. 언젠가는 하산길이 나오겠지.
드디어 해발 1430m 레푀데르 언덕이다.
'그래 이제 다 올라왔어.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돼!' 스스로를 다독이며 두 갈래로 갈라지는 하산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우린 경사가 급한 계곡을 따라 걷는 길보다는 비교적 완만한 길을 선택했다.
피레네 산맥 정상을 넘어 하산길로 접어들면서 하늘이 너무 예뻐졌다.
처음 산을 오르면서 내려다본 풍경에 감탄을 하며 환희에 빠져있다가, 비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걷는 고통스러운 길을 이겨내고 이제 파란 하늘과 함께 아름답고 편안한 길을 걷는 영광스러운 하산길에 접어든 이 길은 환희, 고통, 영광의 신비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길이라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토닥였다. 남편은 첫날 걷는 길이 가장 힘든 길이니 다음부터는 그래도 수월할 거라 하는데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수도원에 도착하기 전 '산 살바도르 소성당'을 들러보기 위해 오솔길을 빠져나와 오른편 언덕으로 올라가니 멀리 십자가가 있는 작은 성당이 보인다. 11세기 수도원 터 위에 세워졌다는 현대적 건물의 소성당은 1965년에 완공되었으며, 서사시 '롤랑의 노래'의 주인공인 롤랑이 전사한 곳이라 한다.
연둣빛이 예쁜 숲길을 걸어 론세스바예스 수도원 알베르게에 드디어 도착했다.
궂은 날씨에 진흙탕을 지나온 신발을 우선 신발장에 벗어놓고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나중에 퇴실할 때 찾기 쉽게 남편신발과 함께 나란히 놓고 신발 속에 신발주머니를 끼워놨다. 무거운 등산화를 벗으니 한결 발이 가뿐하다. 오늘 고생한 몸이 어디 발뿐이랴 싶지만 그래도 가장 낮은 곳에서 몸을 지탱해 주느라 가장 수고가 많았을 내 발이다.
알베르게 3층 325번, 326번 침대를 배정받았다. 연이가 왔을 때엔 예약 안 하고 늦게 도착하여 3층을 배정받았다고 들었는데, 우리도 예약은 했지만 늦게 도착해서 3층을 배정받았나? 3층에만 단층침대이고 다른 층은 2층 벙커침대라 한다. 연이는 7년 전에 329번 침대를 썼다며 반가워한다. 자신의 흔적을 따라 엄마아빠가 그 길을 걷는다 하니 그때를 다시 추억하며 우리와 함께 순례를 시작한 것 같다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3층에 올라가 우리 침대를 찾으러 이동하면서 바욘과 오리손 바에서 만났던 아가씨(비아)를 다시 만나 정말 반가웠다. 그녀의 도움으로 세탁과 건조를 일사천리로 해결하고 남편과 함께 수도원 성당과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비아씨가 6시에 순례자 미사가 있다며 밖으로 나왔다.
비아 씨와 함께 수도원 성당에서 드린 미사는 아름다운 청소년성가대의 성가로 인해 은총의 시간이었다. 신부님께서는 미사가 끝날 무렵 순례자들을 앞으로 나오라 하여 축복기도를 해주셨다. 오늘 순례여정의 의미가 한층 깊어지면서 앞으로의 순례일정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희망이 보이는 듯하다.
세탁물 찾으러 6시에 오라 했는데 미사시간과 겹쳐서 미사 후 비아씨와 함께 바삐 지하 세탁실로 가보니 세탁과 건조를 마치고 바구니에 담겨있다. 7시 마감이어서 하마터면 빨래를 못 찾을 뻔했다.
저녁식사는 알베르게 예약하면서 미리 7시로 예약 신청했었다. 안쪽에 위치한 테이블로 안내를 받아 들어갔더니 벌써 많은 순례자들이 모여 앉아있었다. 한국인은 달랑 우리 부부와 비아씨 뿐이다. 폴란드에서 온 부부가 우리와 함께 합석했다.
파스타 또는 수프 그리고 돼지고기요리 또는 생선요리를 선택하게 되어 있었는데 우리 부부는 똑같이 파스타와 돼지고기 요리로 선택하고 나서 금방 서로 다른 메뉴를 선택할걸 잘못했구나 후회했다. 야채 없이 나온 음식에 폴란드부부는 샐러드 한 접시를 추가로 주문해 곁들여서 먹었다. 샐러드가 조금씩만 곁들여져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기대만큼 많이 먹지 못하였다.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나니 이제 오늘의 긴 여정이 마무리되는 듯한 느낌이다.
첫 순례길을 호되게 마무리하고 나서의 뿌듯함에서 오는 감동과 더불어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등 만감이 교차한다.
전날보다 쾌적하고 좋은 시설에 묵게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머무는 만큼 갖가지 소음들로 잠들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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