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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산티아고 순례

[까미노 5.] 에스테야 가는 길에 내 속에 숨어있던 내가 불쑥 튀어나왔다. | 240508

by 바이올렛yd 2024. 8. 21.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에서 에스테야(Estella)까지  22km 
6시간 10분 소요 (am 6:00 ~ pm 12:10)


2024년 5월 8일 수요일
 
어버이날이다. 시차관계로 전날 알베르게에 도착해 미리 엄마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스마트한 우리 엄마, 내가 쓴 글에 하트를 날려주셨다. 
 
지난밤은 난간 없는 2층 침대에서 자느라 꽤 힘들었다. 어떻게 2층침대에 난간이 없을 수 있는지 이해가 잘 안 되지만 그동안 아무 탈이 없었으니 유지되고 있을 테다. 새벽 5시가 되자 알람이 울렸다. 이태리 할머니 윗침대를 쓰는 서양여자분의 휴대폰이 울린 거다. 혹시 어제 새벽 팜플로나에서 울렸던 알람의 주인공이 바로 이분인가? 그녀는 역시 일어나지 않았고, 나와 남편만이 5시 20분경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챙겨 로비로 나왔다. 어둑한 곳에서 조용조용 떠날 채비를 한 후 6시경 밖으로 나갔다. 나의 배낭은 오늘도 차 타고 이동할 예정이다.

 
마을을 빠져나올 무렵, 여왕의 다리를 보려고 다리 아래로 내려가봤다. 물에 비친 새벽하늘이 아치형 교각과 조화롭게 어울린다. 내려가보지 않았으면 못보고 지나칠 풍경이었다.

 
여왕의 다리를 건너 마을을 빠져나왔다.

 
마을을 벗어나면서 차츰 어둠은 걷히고 동녘하늘 구름사이로 아침햇살이 밝게 빛난다. 어둠이 가시지 전 새벽에 떠나지 않으면 보지 못할 풍경이다. 코끝을 스치는 상쾌한 공기, 새소리, 일출, 조용한 가운데 들리는 발걸음 소리들. 

 
출발하면서 부드럽게 느껴지던 무릎이 산길을 오르면서 다시 아프기 시작한다. 대부분 순례중 겪어내야 하는 일처럼 무릎이나 발목이나 고장이 나더라도 결국엔 괜찮아진다 하니 내 무릎도 언젠가는 괜찮아질 때가 올 거라 희망을 가져본다. 

 
출발한 지 1시간 20분 만에 5.5km 지점에 있는 첫 번째 마을 마녜루를 지났다. 불편하지만 원래의 페이스를 유지하고 잘 걷고 있다고 간간이 의지를 북돋아주는 남편은 그럼에도 혹시 탈이 나는 거 아닐까 연신 괜찮냐고 묻는다. 괜찮습니다.

 
마녜루를 지난 지 얼마 안 가 언덕 위에 예쁜 마을이 나타났다. 시라우끼라는 이 마을은 뱀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서 살모사의 둥지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고 한다. 시라우끼 가는 길에는 부쩍 포도밭이 많이 보였다. 드넓은 밀밭 풍경이 이제 포도밭, 보리밭으로 점차 다양한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보리밭 사이에 피어있는 양귀비꽃을 찍으러 일부러 여기저기 찾아다니던 남편에게 이 길은 찍을 거리가 너무나 풍성한 길이다. 

남편이 찍은 사진은 저절로 내 사진을 삭제하게 한다. <시라우끼 가는 길에서 본 풍경>

 

길가의 꽃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고, 순례길 사진에서 많이 보았던 긴다리 순례자 그림자가 거인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길가에 엉겅퀴는 키가 나 만하다. 

내가 찍은 시라우끼 가는 길

 
시라우끼 마을에서 드디어 오픈한 바를 만났다. 새벽에 부실하게 먹고 출발했으니 든든하게 배를 채워줘야 끝까지 갈 수 있을 것을 생각해서 될 수 있으면 중간중간 먹고 쉬기로 했는데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간식을 챙겨 나왔지만 샌드위치와 주스, 커피를 주문했다. 마을입구에 들어서면서 만난 개가 우리 곁으로 와서 한참을 머물렀다. 사람에게 익숙해서 그런지 이곳에서 종종 만나는 개들이 우리 보고도 짖지를 않는다. 샌드위치는 남아 테이크아웃 했다.

 
가파른 골목길을 올라 중세 로마시대의 흔적이 남아있는 건물 사이를 통과하여 마을을 빠져나갔다. 

 
시라우끼를 지나는 중 하늘에 잔뜩 끼었던 구름은 군데 군데 뭉게구름으로 변하여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걸을 수 있었으나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은 아직 차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향기 좋은 이름 모를 노란 꽃, 유채꽃, 양귀비꽃, 연둣빛 들판, 돌길, 흙길 등 심심하지 않게 다채로운 길들을 지나 약 6km를 더 걸으니 또 마을이 나온다. 

 
로르까라는 마을이다. 마을 초입에 둥근기둥모양의 산살바도로 교구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 마을 공원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길옆에 꽃들을 잘 가꾸어놓은 집들을 지나칠때면 그 집 주인의 심성도 꽃처럼 아름다울 것이라 상상해 보게 된다. 순례길에 많은 사람의 마음이 깃들어 있음에 감사하다.

 
로르까까지 14.5km, 이제 목적지인 에스테야까지는 약 7.5km 더 걸어야 한다.

 
그라시아 님은 언제 출발하셨는지 출발한 지 약 5시간 만에 다시 만났다. 비야뚜에르따 마을에서 또 다른 젊은 한국여자분을 만나 잠시 그늘에 쉬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침부터 그라시아 님과 함께 걸었나 보다. 

<비야뚜에르따> 성모승천성당에 성베레문도의 동상 사진이 있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비야뚜에르따는 인접한 아레야노 마을과 서로 이라체 수도원의 수도원장이었던 성 베레문도의 고향이라 논쟁 중이라 한다. 이런 이유로 성인의 유해를 5년마다 번갈아가며 두 마을에 보관한다고 하는데, 마을을 지나는 중 만난 성모승천성당에 비야뚜에르따에 방문한 걸 환영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성 베레문도의 동상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있었다.   
 
그라시아 님은 걸음이 늦으니 그 젊은 여자분과 천천히 가겠노라며 먼저 출발하라 하신다. 

 
마을을 빠져나와 약 4km 정도 걸어 에스테야에 도착했다.

 
전날 알베르게에 간당간당하게 세이브하여 오늘은 마음먹고 일찍 출발했더니 12시 10분경 도착했다. 3층 한갓진 자리에 침대 배정받아 짐 풀고 씻고 빨래했다. 오늘은 세탁을 기계에 맡기기로 하고 빨랫감을 싸들고 1층으로 내려가 세탁실 장소를 물었더니 리셉션 옆에 서 계시던 스페인 할아버지가 손수 안내를 해주시면서 동전도 바꿔주시고 세제도 50센트에 리셉션에서 구해주셔서 손쉽게 세탁기를 돌렸다. 또 한 분의 천사를 만났다.

 
세탁까지 마치고 나니 낯익은 분들이 오기 시작한다. 일찍 출발하니 훨씬 여유가 생겼다. 중정에 햇빛 좋고 약간의 그늘이 있는 곳에 있는 테이블을 차지하고 바에서 챙겨 온 샌드위치와 배낭 속에 남은 삶은 달걀과 과일을 꺼내다가 점심대신 먹었다. 
 
주변정리가 끝난 후 마을을 한 바퀴 돌아봤다. 마을마다 큰 성당들이 들어서 있고 그 중심에 광장이 있다. 함께 모일 수 있는 장소가 늘 마련되어 있으니 마을 공동체 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성 미카엘 성당에 들어가 20센트를 넣고 성체조배하고 나왔다. 마을 이곳저곳 둘러보다 성 요한 성당 앞 광장에 앉아 햇빛을 즐겼다. 평화로운 오후시간이다. 남편이 갑자기 와인 한잔씩 마시자 한다. 브레이크 타임이라 안될 것 같았는데 가능했다. 청년 웨이터가 와인 두 잔을 가져다줘 '그라시아스!' 하고 인사했더니 청년웨이터가 웃음으로 답한다.

성 미카엘 성당(좌), 성 요한성당(우)

3시 반경 마켓에 들러 과일(납작 복숭아 네 개, 체리, 사과 두 개)과 물 두병 사가지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저녁시간이 되니 남편은 외식하자 한다. 전날 알베르게 주방을 사용한 것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보아둔 바가 있다며 6시경 알베르게를 나섰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점심에만 순례자메뉴를 준비한다고 한다. 

산 페드로 성당

식당을 찾을 겸 돌아다니다가 결국 마켓에 가서 샐러드랑 함박스테이크 반제품 그리고 바게트 빵하나 우유, 맥주를 사가지고 들어왔다.  그런데 주방이 폐쇄되어 화구를 못쓰게 덮어놓았다. 주방을 일찍 쓰는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함박스테이크를 익히고 샐러드와 바게트 빵을 곁들여 먹었다. 우유도 한잔 하며 먹고 있는데 트래킹멤버가 샹그리아 마시던 게 남았다며 냉장고에서 꺼내주신다. 나름 푸짐한 저녁식사였다. 남편이 산 맥주까지 곁들이니 만찬이 따로 없다.
 
매우 단순한 날들을 지내다 보니 단순함 가운데에서도 하나씩 신경 쓰이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순례길이 점차 익숙해짐으로 인해 사소한 생각들이 떠오르는 거다. 그동안 살아온 날들은 지금에 비하면 전쟁 같은 하루하루였다. 나름대로 규칙성이 있는 날들이라 복잡하지만 그다지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남들에게는 난 늘 바쁜 사람처럼 보였나 보다. 사실 따져보면 그다지 바쁘지 않았다. 그 정도도 안 하고 살까?
23년간 해왔던 수업이, 성당 봉사자로서의 삶이, 틈틈이 하는 농사일이 어쩌면 맘 놓고 시간을 낼 수 없는 핑곗거리였을 수도 있었다. 바쁜척하고 친구들에게조차 자주 연락하지 못하고 살았던 나 자신이 문제였던 거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일정을 마칠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신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매일매일 단순함 가운데에서 깨달음을 얻게 하소서.

배낭 메고 계속 걸어서인지 남편도 허리가 아프다고 한다. 발관리, 몸관리 잘해서 건강하게 돌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