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 아르코스(Los Arcos)에서 로그로뇨(Logrono)까지 28km
6시간 40분 소요 (am 5:50 ~ pm 12:30)
2024년 5월 10일 금요일
9시 넘어 잠자리에 들어 새벽 1시경 깼는데 뭔가 모를 개운함이 느껴진다.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잠이 들었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러나 그 이후 4시 넘어서까지 침대에 갇혀 뒤척이다가 4시 20분경 1층 주방으로 내려와 불을 켜고 전날 쓰다만 일기에 추가해서 더 썼다. 정적이 흐르는 조용한 신새벽에 홀로 앉아 있으니 이게 현실인가 싶다. 잠도 못 자고 매일 2~30km씩 걷고 있는 현실이 분명 고된 나날이긴 한데 어디에서 에너지가 나오는지 견뎌내고 이제 적응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함께 하는 이들이 있으니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하니 잠못자게 하는 소음의 주범들조차도 동지가 아닐 수 없다.
짐을 챙기고 있노라니 그라시아 님이 배낭을 들고 내려온다. 아직 5시도 안 된 시간인데 출발하시는 분도 계시다. 한국인인 줄 알고 벌써 출발하시냐 물었는데 말없이 웃음 짓고 나가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대만에서 오신 분이셨다.
남편을 깨워 준비한 후 그라시아 님과 젊은 한국인부부와 함께 5시 50분경 출발했다.
밤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멀리 보석처럼 빛나는 마을이 보인다.
그라시아 님은 새벽별이 유난히 예쁘다는 산솔 마을이라며 전날 산솔까지 못 간 걸 아쉬워했다. 산솔에서 보았을 그 새벽하늘과 아름다운 산솔까지도 우린 지금 바라보며 걷고 있지 않냐며 위안 삼아 얘기했다.
밝아오는 하늘의 변화무쌍한 광경을 감상하느라 자꾸만 뒤돌아보게 된다. 오늘따라 하늘이 너무 아름답다.
출발 한 시간 만에 산솔에 도착했다. 산솔은 산소일로 수도원의 영지였다고 한다.
산솔마을을 빠져나올 무렵 버스정류장 벤치에 젊은 부부가 나란히 앉아 쉬고 있었다. 먼저 갑니다 인사하고 걸음을 재촉하지만 젊은이답게 그들은 다시 우리 앞에 걷게 될 거였다.
산솔을 지난 후 1.5km 지점에서 다시 마을을 만났다. 마을 초입에 바가 있었지만 조금 더 가다가 쉬면서 배낭 속에 음식으로 아침을 먹기로 했다. 마을 중간쯤에 우물이 있는 쉼터가 나와 돌로 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뒤따라온 남편은 조금만 더 가자한다. 그러나 마을은 금방 빠져나왔고 쉽사리 앉아 쉴 수 있는 장소가 나오지 않았다. 남편이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게 느껴지지만 그냥 말없이 걸었다.
마을을 빠져나와 다시 뒤돌아본 풍경은 너무나 아름답다. 별이 반짝이던 산솔의 새벽하늘과는 다르게 구름이 적당히 펼쳐져 아침해와 함께 멋진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빛의 조화로 만들어낸 황금빛 밀밭, 마을에 종탑, 주황빛 지붕.
간간이 보이던 포도밭이 비아나 가는 길엔 더 넓게 보이고 오르막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출발하면서 부드럽게 걸어져 무릎이 나아지고 있구나 생각했는데 비아나 가는 길에 다시 왼쪽무릎이 아프기 시작한다. 가파른 내리막길은 여전히 절뚝거려야만 하니 힘들다.
출발한 지 두 시간쯤 지난 8시경 누군가의 소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나무를 지나니 앉아서 쉴 수 있는 장소가 나왔다. 오르락내리락 길을 걸었더니 무릎도 편치 않고 발도 좀 쉬어줄 겸 앉을자리를 찾고 있는데 그새 우리를 앞질러 걷던 젊은 부부와 그라시아 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 자리에서 쉬었다 오라 한다. 뒤꿈치 부분이 좀 불편해 신발 벗고 양말까지 벗었다. 다행히 아직까지 발상태는 문제없어 보인다.
로그로뇨까지 16.7km, 비아나까지 7.4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왔다. 비아나까지 가는 길고 지루하니 물과 간식을 꼭 챙겨야 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앞으로 두 시간 정도만 걸으면 마을이 나오겠구나 생각하니 그래도 좀 낫다. 이 정도면 빈속에 하는 새벽운동 치고는 너무 긴 시간 운동하는 거라는 건 분명하긴 하다. 길을 걸으며 전날 간식으로 준비한 곡물바 몇 개 먹었더니 그나마 속이 든든하다.
앞서가던 그라시아 님이 풀밭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걸 보고 그냥 지나쳤는데, 어느새 우리를 뒤따라오셨다. 젊은 부부와 함께 걷다가 걸음이 빨라 우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쉬었다 한다.
산등성이를 몇 번 오르내린 끝에 비아나에 도착, 오전 10시경 늦은 아침을 먹었다. 중국인이 하는 바인데 보기에도 익숙한 식빵으로 만든 샌드위치가 있어 그라시아 님과 난 식빵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오랜만에 우리 음식을 먹는 것처럼 맛있었다.
그라시아 님이 화장실 간 사이 옆테이블에 앉은 서양할머니가 할아버지께 선크림을 발라주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나도 따라서 남편에게 "당신도 선크림 발라줄까?" 했더니 기겁을 한다. 그냥 못 이기는 척하며 바르면 안 되나?
화장실도 이용하고, 쎄요도 찍고, 그라시아 님과 먼저 출발했다가 남편을 기다리느라 그라시아 님 먼저 보내고 난 뒤쳐졌다. 뒤늦게 나타난 남편은 외벽 공사 중이라 지나쳤던 성당에 들어갔다가 왔노라 했다. 마을마다 성당이 있으나 때로는 무심하게 그냥 지나친 건 아닌지 생각이 들어서 계면쩍게 웃었다.
비아나를 지나며 간간이 남편의 안색을 살피며 신경 쓰고 있는 나 자신이 짜증스러워졌다. 난 종종 남편에게 불만을 이야기했을 때 해소되지 못하면 남편 눈치를 살피면서 속앓이를 하는 경향이 있다. 딱 그 상황이다. 별것도 아닌 선크림? 아니, 뭔가 누적되어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냥 선크림 상황의 돌부리에 걸려 핑계김에 넘어질뻔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지만, 그냥 무던히 그 할아버지처럼 받아주면 안 되었나 싶은 게 서운하다. 남편 역시 좋은 순례길이 될 수 있도록 애쓰고 있을 거라는 건 알겠지만 마음은 종종 뜻밖의 상황으로 몰고 가기도 하니 알 수 없다. 이제 서로의 노력에 한계점에 다다른 건가?
비아나를 벗어나 오늘 목적지 로그로뇨까지는 약 7.5km가 남았다. 우리 걸음으로 두 시간 정도만 더 걸으면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수비리를 점프한 아저씨가 우리를 따라왔다. 함께 걷던 아저씨는 뒤쳐졌다며 혼자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고 했다. 포도밭을 보며 포도의 생태를 이야기했다. 돌도 많고 물도 적은 척박한 땅에서 자라 포도 열매를 맺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가 필요한지를, 물을 빨아들이기 위해 땅속 깊은 곳까지 뿌리를 뻗어내려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포도열매까지 맺게 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사람도 마찬가지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고통이 따라야 한다며 장황하게 설교를 하고는 바쁘게 지나갔다. 틀린 말은 아닌데 왜 누군가에게 설득당하는 느낌이 들지? 어쨌든 머릿속이 시끄럽다.
로그로뇨로 향해 길게 뻗은 가로수길에서 남편이 내게 묻는다. "당신은 이 길을 왜 걸어?"
갑자기 묻는 질문에 "음.. 난 나를 찾으려고 해, 나도 잘 모르지만, 내속에 또 다른 나를 꼭 만날 거야."
대답은 했으나 정말 만날 수 있을까? 또 다른 나를 찾아 돌아갈 수 있을까?
장대를 집고 걷던 키 큰 미국인 청년은 장대 없이도 잘 걷는 걸 보니 다리가 많이 좋아졌나 보다. 나 역시도 아직은 불편하나 평지 걷는 동안은 많이 수월한 걸 보면 곧 배낭도 메고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로그로뇨에 거의 다 달았을 때서야 비로소 직접 재배하는 농작물들을 볼 수 있었다. 조각조각 텃밭을 분양했는지 우리나라의 주말농장처럼 꾸며져 있는 곳에서 몇몇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줄곧 밀밭과 포도밭 등 드넓은 들판의 농작물만 보면서 온지라 자그마한 텃밭들이 반갑다.
로그로뇨 관문인 삐에드라 다리를 건너 12시 30분경 로그로뇨 공립알베르게에 도착했다. 1시 오픈인 알베르게 앞에 벌써 도착한 순례자들이 배낭을 줄세워놓았다. 우리도 줄 끝에 배낭을 내려놓고 그늘에 앉아 다리를 뻗고 쉬었다. 오르락내리락 긴 길이었지만 예상시간보다 빨리 도착했다.
로그로뇨 알베르게는 매우 오래되어 낡았다. 화장실, 샤워실도 고장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도착 후 정리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마당 한편에 있는 빨래터에서 빨래 한바탕 해 널고 밖으로 나갔다.
시에스타에 걸리면 제때에 점심을 못 먹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음식점을 찾아야 한다. 연이는 로그로뇨에 양송이파스타가 유명하다며 추천했지만 우선 광장에 있는 바에서 샌드위치 두 개와 맥주 한잔씩 시켜 먹었다. 마늘소스와 돼지고기 들어간 것과 토마토와 참치가 들어간 매운맛 샌드위치를 서툰 영어로 주문하려니 바 점원이 친절하게 직접 통역기까지 써가며 주문을 받아 고마웠다. 마침 한국인 순례자가 나타나 맥주 한잔 추천해 줘서 함께 곁들여 먹었더니 매우 시원하고 맛있다.
맥주를 추천해 준 한국인 남성이 뮤지엄에도 가보라 한다. 라 리오하 뮤지엄은 무료입장이 가능했다. 고대 유물부터 현대예술작품까지 전시가 되어있었다.
공원을 지나 디아마켓에 가서 다음날 먹을 간식을 사 가지고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같은 방에 그라시아 님, 젊은 남자, 수비리 점프한 아저씨들, 젊은 부부, 그리고 우리 부부 까지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인만 해도 8명이 입실했다. 그라시아 님이 양송이타파스 골목을 찾았다며 이야기하니, 젊은 부부가 본인들은 점심에 먹고 들어왔다며 정말 맛있다고 추천한다. 한국인 젊은 남자가 함께 나가서 먹고 들어오자고 제안한다. 저녁 오픈시간이 8시로 늦은 시간이라서 망설이다가 바로 오케이 했다.
저녁 7시 넘어 양송이 타파스를 먹으러 한국인 순례객들과 다시 밖으로 나갔다. 또 다른 한국인 남자 한분이 합세하여 모두 6명이 우르르 나갔다. 양송이타파스 전문점 '엔젤 바' 앞에서 오픈시간까지 기다리다가 결국은 맛보고 들어왔다. 안 먹었으면 후회했을 것 같다. 에스테야를 떠나오면서 새벽에 와인 받아먹느라 멈춘 곳에서 만났던, 아들과 함께 온 엄마를 다시 만났다. 다른 집에 가서 문어타파스도 먹어보라 추천한다. 문어타파스도 하나씩 사 먹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스페인의 밤거리는 활기가 넘친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뜬금없이 다리 마사지를 해주겠다 한다. 야외 벤치에 앉아 안티프라민 로션 발라 쓱쓱 다리를 주물러 주는데, 낮에 심기가 상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다행이다. 집에 갈 때까지 제발 침묵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점점 불편함까지도 익숙해지는 건지, 순례자미사는 패스하고 양송이타파스 핑계로 밤거리를 노닐다가 들어와 9시경 잠자리에 들어 잘 잤다. 그러나 밖에서 시끌시끌 떠드는 소리에 깨어보니 새벽 3시다. 스페인에도 불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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