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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산티아고 순례

[까미노 6.] 이토록 아름다운 길을 연이가 걸었구나! | 240509

by 바이올렛yd 2024. 8. 26.

에스테야(Estella)에서 로스 아르코스(Los Arcos)까지  21.5km 
5시간 45분 소요 (am 6:15 ~ pm 12:00)


2024년 5월 9일 목요일
 
공용 샤워실 앞 구석진 자리에 있는 침대라서 도미토리 형식이긴 하지만 우리들만의 공간이 확보된 듯 조금은 편한 잠자리였다. 같은 방 반대쪽 화장실 앞에 수리비를 점프한 한국남자 둘이 사용했는데 그분들로부터 나는 소음이 간간이 들렸으나 간격을 두고 있는 상태여서인지 견딜만한 정도였다. 점차 수면환경이 익숙해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대로 쾌적한 수면을 하고 5시 넘어 떠날 준비를 하고 로비로 내려갔다. 공동주방에 앉아 전날 먹고 남은 바게트 빵과 바나나, 우유로 아침식사를 하고 6시 15분경 출발하였다.

 
마을을 벗어날 무렵 점차 어둠은 가시고 하늘은 맑고 쾌청하다.
출발한지 30분 정도 걸으니 성 베레문도의 이라체 수도원이 있다는 아예기 마을이다.

 
언덕을 내려가 포도밭을 끼고 가다가 사람들이 모여있는 대장간 앞에서 멈췄다. 철물을 이용해 산티아고 기념품을 만들어 진열해 놓았다. 기념품에 직접 이름을 새겨준다 하는데 우리는 그냥 구경만 하고 지나쳤다.

 
드넓은 포도밭 옆에 이라체수도원이 보인다. 연이가 수도꼭지를 틀면 와인이 나온다고 해서 정말 그러냐 하며 신기해 했던 바로 그곳이다.

 
뒤뜰에 철문이 열려있고 한국 청년이 물병에 뭔가를 담고 있어 보았더니 와인이 나온다는 수도꼭지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우리도 들어가 먹던 물통을 비우고 와인을 따라 맛을 보았다. 우리가 와인을 맛보는 사이 영어를 꽤 잘하는 한국인 엄마와 아들이 함께 들어왔다.  와인을 받아 아들에게 다정하게 건네주는 엄마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보데가스 이라체

이른 시간인데도 와인박물관 문이 열려 있었나 보다. 앞서 출발한 나를 뒤따라온 남편은 와인 박물관을 들여다보고 왔다며 자랑처럼 말한다. 

 
언제 출발했는지 한국인 엄마와 딸이 앞서걷고 있다. 딸은 다리가 불편한지 나처럼 뒤뚱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럼에도 배낭을 메고 걷는 게 대견했다. 전날 함께 걷던 아가씨는 아마도 다른 숙소에 머물렀었나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서로 만나 반가워한다. 서로 약속하지 않아도 오며 가며 서로 만나 정을 쌓고 있는 모양새다. 나 역시 점차 익숙해지는 얼굴들을 보면 그저 반갑다.

 
이라체 수도원을 지나고 나서 숲길을 꽤 걸었다. 

 
간간이 길 오른편 나무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었다.

숲길에서 바라본 풍경

출발한 지 시간이 꽤 지났으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바는 나오지 않는다. 아침을 먹지 않고 나왔다면 꽤 긴시간동안 허기진 상태로 걸을 뻔했다. 언덕을 넘으니 전망 좋은 자리에 앉아 쉬고 있는 한국 여자 두 분을 만나 인사 나눴다. 전날 숲길을 걸을 때 다리 난간에 앉아 쉬던 분들이다. 우리보다 하루 전날 출발하여 팜플로나에서 연박하셨다고 했다. 우리도 그분들과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언덕아래 풍경을 감상하며 간식을 먹었다.  

 
출발한 지 두 시간 반정도 지났을 무렵 마을이 나왔다. 7.5km 지점에 있는 아스께따라는 작은 마을이다. 

 
아스께따 마을을 빠져나와 분명 까미노 이정표를 보며 걸었는데, 어느 순간 앞에도 뒤에도 걷는 이들이 안 보인다. 남편은 지도를 찾아보더니 우리가 까미노를 이탈했다고 한다. 도로 건너쯤으로 보이는 언덕 위에 순례자들의 걷는 모습이 보인다. 도로 아래 굴다리 방향으로 까미노 이정표가 있기는 했다. 약 20분 정도 우리만의 길을 걷고 굴다리를 통과하는 순간 아주 가까이에서 음악소리가 들린다. 마치 길 잃은 양을 반갑게 맞이하듯이 까미노와 만나는 길목에서 노부부가 악기를 연주하고 계신다.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가 이탈한 부분의 순례길에 무어인의 샘이 있었다. 못 보고 지나친 것이 매우 아쉬웠다. 
 
다시 정상 궤도에 올라선 후 멀리 그라시아님이 보였다. 대략 우리보다 한 시간 정도 빨리 출발하지 않았을까 싶다.  

 
자연을 벗삼아 걷는 건 좋은 데 가도 가도 쉴만한 장소가 안 나와 지루하던 차에 푸드트럭이 나타났다. 출발한 지 약 4시간 만에 만나는 쉼터다. 다리도 쉬고 목도 축이고 가자며 그라시아 님과 함께 자리를 잡아 앉았다. 캔맥주 하나씩 하자 했더니 그라시아 님이 가방에서 오징어채와 누룽지를 꺼내신다. 사막에 오아시스 같다. 

 
푸드트럭을 지나 언덕을 넘어 펼쳐진 드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걸으며 연이가 말하던 끝없이 펼쳐지는 평야지대가 여길까 생각을 했었는데 아니었다. 이곳도 이리 넓은데 그곳은 얼마나 넓은 평야지대일까?

 
아무튼 9시경 지나온 아스께따 마을 이후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던 길을 거의 세 시간쯤 걸으니 비로소 멀리 마을이 나타났다. 중간에 푸드트럭에서 목이라도 축이지 않았다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나란히 걷고 있는 뽀글머리 청년과 노란 반바지 아가씨를 다시 만났다. 여전히 경쾌하게 인사하는 노란 반바지 아가씨는 보기만 해도 활기가 넘친다.

 
로스아르코스에 진입하여 마을을 관통하는 길을 따라 걸어 산타마리아 대성당 앞 광장에 이르렀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성 밖으로 나가듯 까스티야 문을 통과한 후 다리를 건너니 오른편에 공립알베르게가 있었다. 

 
언덕을 넘어 평지를 걸으면서는 다리가 좀 나아졌는지, 다소 긴시간동안 다리 아픈 걸 잊고 걸었음을 도착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우리가 알베르게 첫번째 도착이었다. 체크인하고 나니 봉사자가 직접 배정된 침대까지 안내하며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8인실에 배정받았으나 나만 빼고 모두 남자다. 게다가 바로 옆침대에 수비리를 점프한 남자분들이 배정받아 들어왔다. 그날그날 침실 상황은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이 또한 순례의 과정이다. 그나마 나중에 도착한 사람들은 다른 건물로 배정을 받았는데 아마도 그곳 상황은 조금 더 열악한가보았다. 우리보다 늦게 온 한국인 모녀와 트래킹 멤버들이 그곳 배정을 받아 불편함을 이야기했다.
 
일찍 도착했으나 동키서비스 보낸 내 배낭이 1시 넘어 도착하는 바람에 느지막이 씻고, 손빨래하여 밖으로 나가니 그새 빨랫줄이 가득 차 있다. 우리 빨래까지 채워 널고 나니 파란 하늘에 빨래조차 예술이다. 

 
여느 마을에서와 같이 오늘도 마을 구경하러 나섰다. 맑은 하늘에 햇빛은 따가우나 그늘은 써늘하다. 슈퍼마켓에 들러 도넛과 비스킷, 맥주와 주스를 사 와 산타마리아성당 앞 광장 벤치에 앉아 먹었다. 성당 출입문은 닫혀있고 저녁 7시 30분 순례자미사 안내가 붙어있다. 성당 뒤편으로 돌아가니 또 다른 광장이 나온다. 햇빛 좋은 자리에 앉아 쉬는 중 연이와 영상통화를 했다. 집 떠난 후 두 번째 영상통화다. 퇴근하여 저녁식사 중이었다. 물론 믿었지만 혼자서도 잘 지내고 있는 듯하다.

 
알베르게로 다시 들어왔다. 각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알베르게 내에서의 규칙에 차츰 적응되어가고 있다. 잠시 낮잠을 즐기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우린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한국인을 제외하고는 자리 잡고 앉아 대화하기는 힘든 아쉬움이 있다. 
 
4시 반경 밖으로 나가 대성당 앞 광장 근처 바에서 피자 한판, 샹그리아와 맥주 한잔씩 주문하고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얼음 띄운 샹그리아는 맛있었지만 금방 얼굴이 빨개졌다. 마켓에 들러 사과 2개와 곡물바 하나 사가지고 들어왔다. 

까스띠야 문과 산타 마리아 성당

그라시아 님과 함께 7시 30분 순례자미사에 참여했다. 성당에는 몇몇 사람들이 벌써 와서 미사준비를 하고 있었다. 앞자리에 론세스바예스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한 폴란드부부가 앉아있어 미사 후 인사 나눠야지 생각했는데 미사 중간에 살며시 밖으로 나갔다. 성당 안은 꽤 추웠다. 순례길에서 만났던 노란 반바지의 경쾌한 아가씨도 옷을 얇게 입고 앉아있어 춥겠다 생각했는데 미사가 끝나기 전에 사라지고 없었다. 미사 후 신부님께서는 순례자를 위한 기도와 함께 우리말로 된 기도문을 주셨다. 
 
성당밖으로 나오니 저녁시간임에도 너무나 따뜻하다.
 
7년 전 연이가 산티아고 길을 떠난다고 했을 때 아가다수녀님은 걱정하지 말고 보내주라고,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하시며, 산티아고 길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걸으며 귀한 시간을 잘 보내야 하니 함부로 연락하지도 말라하셨었다. 그렇다. 막상 걸어보니,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연이의 무겁고 힘들었을 어깨가 안타까워 눈물이 났었는데, 이제는 이토록 아름다운 길을 연이가 걸었구나 싶은 게, 그때 보내길 참 잘했다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을 나선 우리도, 용기를 준 지인들도, 연이도, 언니도, 수녀님도, 모두에게 감사함이 밀물처럼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