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여행/베트남 성지순례

성지순례 넷째날.. 후에성-영흥사-다낭대성당 | 11월23일

by 바이올렛yd 2024. 2. 8.

새벽 5시반경 기상

남편과 함께 호텔밖으로 나갔다. 밤사이 비가 왔는지 땅이 젖어있고, 다낭에서와 마찬가지로 일찍부터 오토바이들이 많이 다닌다. 걷다보니 흐엉강이 나오고 흐엉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나온다.

강변에 나와 운동하는 사람들이 보이나 강물이 흙탕물이다보니 별로 상쾌해보이지는 않는다.

강물이 좀 맑아질 때가 있으려나~~

베트남에 온 이후 줄곧 물색깔이 흙빛이다. 숲 속에 들어가면 계곡물은 좀 맑겠지..

강 바닥 재질이 너무 진흙이라서 그런가? 

전날 저녁식사한 수상식당도 보인다.

강변에 설치되어있는 조각상들을 둘러보고는 호텔방향 골목으로 들어가 보았다.

이른 새벽부터 차마시는 사람들도 보이고 더러는 식당에서 아침식사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대체로 일찍부터 활동하는 분위기다.

 

산책하고 돌아와 난 식사 먼저 하고 올라와 짐챙기자 하고, 남편은 일단 7시까지 쉬고 천천히 준비하자 하고..

남편 말대로 따르기로 하고 이것저것 챙기고 있는데, 남편이 내려가서 식사하고 오자한다.

이럴 때 내가 한마디 하면 또 듣기싫어하겠지?  

 

씻지도 않고 모자 푹 눌러쓰고 식당으로 내려가니 벌써 여러분이 말끔하게 하고 내려와 식사중이다. 

입에 맞는 음식들 위주로 골라 식사하고 올라와 씻고 짐챙기고 떠날 준비.

귀국하면 겨울인것을 감안하여 패딩잠바는 꺼내기 쉽게 보조가방에 담아 캐리어에 넣었다.

 

8시 반 체크아웃하고 후에성으로 출발하였다.

9시에 후에성 투어 예약이 되어 있다한다.

후에 황성 <출처 : 위키백과> 

1789년 6월, 응우옌푹아인(Nguyễn Phúc Ánh/ 阮福暎 완복영)은 분열되어있던 베트남을 통일하고 스스로 자롱제로 등극했다. 지관들의 오랜 상의와 토론을 통해, 새로운 황궁과 도시를 어디에 지을지 결정했고, 후에가 적지로 정해지자 1804년 건축이 시작되었다. 수천명의 인부들이 동원되었고, 10km에 달하는 해자, 거대한 벽, 지반들을 지었다.
후에 황궁은 자금성을 본떠 만들었지만, 자금성이 완벽한 남향인 반면 후에 황궁은 그 축이 동남쪽을 향해 흐엉강을 바라보게 되어있다. 황궁에는 자금성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궁전, 정원, 누각들이 들어가 있었다. 이 곳은 1880년에 프랑스 군대가 쳐들어와 베트남의 주권을 빼앗기 전까지 베트남의 정치적, 상징적 중심지였다. 또한 응우옌 왕조가 1945년까지 겨우 명맥을 지속할 때까지, 명목상 베트남의 정식 수도였다. 당시 황궁에는 여러 건물들과 수백개의 방들이 있었으나, 1945년 왕정제가 폐지되며 주인이 사라지자, 황궁은 수많은 약탈, 자연재해에 시달리게 되었다. 가장 큰 피해는 20세기에 베트남 전쟁 당시 입게 되었으며, 그 흔적은 아직까지도 궁전의 벽들에 남아있는 총탄 자국들로 찾아볼 수 있다.
1947년 반군들이 황궁을 점령하였고, 프랑스군과의 격전이 이 곳에서 이루어지며 주요 전각들과 행랑들이 모두 불타버리고 말았다.
1968년, 북베트남 군대가 후에를 점령하기 위해 이 곳에 화력을 퍼부었고, 이미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였던 후에 황궁은 거의 반파 상태로 전락했다. 당시 미군은 문화재 보존을 위해 황성과 문화재 보존 구역에서는 함부로 화력을 사용하지 말 것을 병사들에게 지시했으나, 시가전이 벌어지고 병사들이 그런 것까지 신경쓰지 않게 되며 황성은 또한번 피해를 입게 된다.
황궁에서 남베트남 군대와 북베트남 군대가 직접 충돌하였으며, 군대가 서로에게 공습을 가하며 160개가 넘던 건물들 중 겨우 10개만이 살아남았다. 199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아직까지도 복구, 복원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의 복원 프로젝트는 2015년에 모두 끝났다.

우리말 잘하는 베트남 남자 가이드.. 농담까지도 잘한다. 우리나라 광주에 2년동안 살았었다 하는데, 그래도 참 능숙하다.

베트남의 후에성은 우리나라의 경복궁과 같은 레벨의 성으로 중국의 자금성을 본땄다고 한다.

후에성 투어는 약 한시간정도 걸린 것 같다.

 

10시경 다낭으로 출발.

가이드님은 잠깐 이동하여 진주양식하는 해변에 들렀다가 다시 다낭을 향해 이동한다 안내하고는 1시간이 넘도록 아무말씀도 없으시다.

그냥 창밖을 구경하면서 언제나 해변에 도착하나 기다리다가 다함께 묵주기도를 해야할 것 같기에 구글지도를 확인해보니 곧 다낭이다. 가이드님께 해변까지 앞으로 얼마정도 걸리는가 여쭸더니 30분 이상 더 가야 한다고 한다.

결국 11시경 묵주기도 시작하고 11시 반경 진주양식하는 해변에 도착해 약 20분정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지도를 확인하니 Lap An Lagoon이라 씌여있다. 아직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 참 아름답다. 

게다가 아침까지도 구름가득했던 하늘이 파란하늘로 변하고 있다. 게다가 하얀 뭉게구름까지...

후에를 떠나오면서 답답했던 마음이 싹 가시는 순간이다.

여행이 즐거움은 마음먹기 나름. 한순간도 빠뜨리지 말고 보고 듣고 느끼고 즐기기..

어쨌건 모래사장까지 나가 사진찍느라 하하호호 시간을 보내고 다시 다낭으로 출발

 

길기로 유명하다는 하이반 터널을 통과하니 다낭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먼저 점심식사 장소로 이동하려던 계획을 바꿔 영흥사 먼저 들러 빠르게 둘러보기로 했다.

영흥사가 낙산사와 비슷하다고 설명을 듣고 있는데 딸이 낙산사에 와 있노라고 연락을 해왔다.

이런 우연이?

 

동선을 줄이기 위해 우선 영흥사를 먼저 들르기로 했다.

 

오후12시50분경 영흥사 도착

 

무려 67m나 된다는 거대한 해수관음상이 우뚝 서있다.

영흥사는 베트남 전쟁 후 미군이 패하는 과정에서 보트를 타고 탈출하던 베트남 사람들이 이곳 해변가에서 풍랑을 만나 많이 익사했다고 하는데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사찰이라 한다.

 

영흥사 투어를 마치고 1시반경 점심식사. 이번엔 주메뉴가 베트남 쌀국수다.

식사 후 2시반경 한시장 근처 강변으로 이동하여 3시반까지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원래 미사봉헌 예정이었던 그 유명한 핑크빛 다낭대성당은 어느 주교님의 장례일정으로 길 옆에서 바라보아야만 했다. 

 

동대문시장을 연상케하는 한시장을 둘러보고 약속시간까지 코너카페에서 차한잔하며 잠시 휴식

 

3시반에 한강 건너 다낭대성당 대신 미사장소로 정해진 신학교 성당으로 이동하였다.

 

평소 일반인, 특히 외국인들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는 신학교성당에서 4시에 미사봉헌

미사 후 나눔시간이 약 20분정도 주어졌다. 

신부님께서는 돌아가면서 성지순례의 소회를 짧게 나누기를 제안하셨다.

 

내 차례가 되어 무슨말을 어떻게 할까 아무생각이 없었는데, 문득 떠오른 생각을 두서없이 이야기했다.

 

생각해보니 한때는 외짝교우로서 성가정을 이루어 온가족이 함께 성당에 나오는 분들을 부러워했었다. 그래서 소화데레사에게 나도 성당에 열심히 다니는 남편을 따라 끌려다녀도 좋으니 함께 성당 나갔으면 좋겠다 했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성지순례를 남편과 함께 와있음은 놀라운 일이고 참 감사한 일이다.

예전 같았으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상황..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을텐데, 나의 좁은 소견으로 그리 생각되었을 수도 있었겠다. 어쨌든 그래서 감사하고 앞으로 남은 과제도 잘 마무리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실거라 믿고 감사히 제자리로 돌아가겠다 말했다.

 

정리되는 않은 생각을 횡설수설 이야기 한 것 같지만, 요지는 대략적으로 이러했다.

이제까지 해온 일들 또한 함께 하는 이들과 마음모아 이정도로 이루어질 수 있게 돌보아 주심 또한 너무나 감사하다.

신부님의 큰 틀을 이해하지 못해 때론 조급한 마음도 생겼었고, 빨리 결정해주시지 않음에 답답해 한적도 있었다.

지금은 알 것 같다. 빛이 희미하나, 그 끝을 알수 없었기에 느꼈던 희미함이었던 것을.. 작은 구멍에서 나오는 빛일 수록 더 강하고 좁다는 것을. 멀리서 보아야 희미하게 느껴지는 빛줄기의 생김새를 알 수 있다는 것을..

나의 부족함으로 그 빛줄기의 전체를 보지 못하였다는 것을..

 

5시30분 두번째 전신 맛사지

첫날 받은 전신 맛사지는 개운하고 좋았는데, 이번엔 좀 아팠다. 

그래도 첫날 받은 맛사지 덕분에 발 아팠던 것이 말끔해져 무리없이 순례일정을 소화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마지막날 맛사지 일정이 들어간 것은 성지순례의 피로를 풀고 귀국하라는 의미겠지~~ 

 

7시 마지막 저녁만찬으로 바빌론스테이크

맛사지 받고 마지막 식사를 거하게 하는 바람에 피부는 미끈거리고 고기냄새 배고..

상쾌함은 좀 떨어지는 듯 하지만 식사는 맛있게 잘 했다.

 

 8시넘어 공항으로 이동. 

 

공항 장보기.

트래블카드에 남아있는 베트남화폐도 털고 갈까 하여 망고푸딩젤리, 코코넛크래커, 베트남 커피 샀다.

 

그리고 11시20분 비행기

첫 동남아 여행 그 첫번째 베트남... 굿바이~

좀 덥고 습했지만 새로운 경험이었다.

 

돌아오는 중 한밤중의 기내식은 도저히 먹기 힘들어 과일만 먹었다.

잠자려 했지만 제대로 잘 수 없는 기내수면..  졸다가 깨어 창밖을 내려다보니 빛나는 섬이 보인다.

비행경로를 대충 살펴보니 아마도 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