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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스라엘·요르단

[성지순례] 통곡의 벽에서 시온산까지..|통곡의 벽, 성모영면성당, 최후의 만찬기념경당(11월22일)

by 바이올렛yd 2018. 11. 22.

아침 10시 구름가득했던 하늘은 어느새 맑아지고, 우리가 이틀간 묵었던 성과 같았던 노틀담 호텔에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잠자리도, 음식도, 로비에서 울려퍼졌던 아름다운 사람들의 캐롤송도 예루살렘의 야경도....

모두가 그리울 것 같은 이곳에서의 시간들에 감사하며, 오늘의 마지막 일정을 위해 길을 떠나다.


오늘의 일정은 통곡의 벽, 성모영면성당, 최후의 만찬 기념경당, 닭울음 성당을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순례를 마치고, 점심식사 후 텔아비브 야포로 이동할 예정이다.


오늘 일과가 시작된 지 한참 지난 시간이라 그런지 거리에서 느껴지는 분주함은 좀 덜한 듯하다.




처음 이스라엘 국경에서 만나 지금까지의 여정을 줄곧 우리와 함께 해준 가끔은 오버액션을 해서 우리를 웃게해 준 기사님... 


이제 사진을 보고도 "아 이곳이 시온산 부근이구나~~!' 정도는 알 수 있겠다.


이제부터는 버스에서 내려 도보로 통곡의 벽을 향해 이동한다.




따가운 햇볕은 여전하다.


곳곳에 유적들이 보여서 다니엘 가이드님이 설명을 해 주었지만....



통곡의 벽으로 가는 덩게이트(오물성문)에서는 검색대를 통과해야했다.  이럴때마다 '아~~ 여기 이스라엘이었지~~~'라는 생각....




통곡의 벽이라고 알려진 이 벽은 성전산을 둘러싸고 있는 성전벽의 서쪽부분이다. 유대인들은 이 벽을 '서쪽 벽'이라는 뜻으로 '하코텔 하마아라비'라고 부른다.

성전산에 예루살렘 성전은 두 번 존재했었는데, 첫 번째는 솔로몬왕 때 지어졌고, BC586년 바빌론 유배 때에 파괴되었다. 이 후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이 BC516년 같은 자리에 두 번째 성전을 지었고, BC19년 헤로데대왕 때에 대대적인 증축 보수공사를 하였으나, 70년경 로마인들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 때에 파괴되었다.

통곡의 벽은 헤로데 대왕 때의 성전가운데 남겨진 서쪽 벽으로, 유다인들이 성전파괴일인 아브월 9일에 성전의 남겨진 서쪽 벽을 찾아와 울며 기도하는 모습에서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기 시작하였다 한다.





정통 유대인 복장을 한 사람들이 지나가기에 얼른 카메라를 들이대다.



그들뿐만 아니라 곳곳에 유대인 복장을 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통곡의 벽은 가운데 칸막이로 구분하여 왼쪽은 남성, 오른쪽은 여성들만 들어가게 해 놓았다. 


칸막이 가까이에 의자에 올라가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로사님과 함께 올라가보았더니, 어떤 의식이 치러지고 있는 듯 보인다.

유대인들은 아기를 낳으면 통곡의 벽에서 할례의식을 치르고, 또 13살이 되면 평생 율법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성인식을 이곳에서 치른다고 한다. 아마도 그런 의식이 아닐까??




통곡의 벽 사이사이에 끼워넣은 소원지들....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가 씌여있을 것이다.

나도 가방속에 작은 종이 한장을 꺼내 소원을 적어 간절한 마음과 함께 끼워넣었다.





통곡의 벽 맞은 편에는 율법서가 비치되어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해 놓았다.




통곡의 벽에서 다시 밖으로 나와 성곽을 따라 시온산 쪽으로 걷는 도중 이스라엘 학생들을 만나다.


세계속의 한국 맞나보다. 서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다.



아마 저 길을 따라 걸어온 모양이다.



이번엔 성인식 하러 통곡의 벽으로 이동하는 행렬을 만나다. 천막 안에 있는 아이가 주인공인가보다.


시온게이트를 통하여 예루살렘 성밖으로 나가다.




1948년 제1차 중동전쟁(이스라엘 독립전쟁)시의 총탄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곳까지 도보로 이동한 후 잠시 중간점검 시간....

일행 중 세명이 안보여 급히 이대표님이 오던길을 다시 되집어 달려가시고, 걱정스레 기다리고 있던차에 세분이 짠하고 나타나셨다.

뒤따라 오는 줄알고 앞서서 가다가 우리 일행이 안보여 다시 되돌아왔다고.... 잠시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이었으나 참 다행이다.

부자언니 벌 서는 중~~^^



이대표님이 다시 돌아오고 나서, 다음 순례지인 성모영면성당으로 이동하다.


성모영면성당 건물이다.


성당의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성모영면성당이 놓인 자리는 본래 십자군시대의 최후의 만찬 성당이 놓여있던 곳이다. 지금도 지 화장실 부근에서 당시의 흔적을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까지 폐허로 남겨진 이 땅을 1898년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이었던 압둘 하미드 2세가 기술을 원조한 독일의 빌헬름 2세 황제의 성지 방문 때에 선물하였다. 황제는 이 땅을 다시 독일 가톨릭교회에 기증하였고 독일 가톨릭 교회는 베우론의 베네딕도 수도회에 넘겨 주었다. 그리고 1901년 현재의 기념성당을 세워 봉헌하고 독일 베네딕도 수도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성당은 이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래 층에는 나무와 상아로 만든 '영면하신 성모님 와상'이 중앙에 놓여있고 그 위의 돔에는 구약성경에서 활약한 6명의 여인들(하와, 미리암, 야엘, 유딧, 룻, 에스테르) 모자이크가 새겨져 있고  성당 둘레에는 각 나라에서 봉헌한 제대와 성모님 성화로 장식되어 있다하는데, 아래층으로 안내를 못 받아 보지못하고 나온것이 아쉽다..


자료사진을 찾아보니 둥근 돔 아래에 성모님의 와상이 놓여 있다.

                                                                                                                                                             <출처 : 마리안의 일상>


아마 이곳 아래에 성모님의 와상이 있는 성당이 있고, 이곳은 위층에 있는 성당인가 보다.

이곳에서 삼종기도를 바쳤다.


기념성당 정면에 있는 성화는 성모님이 아기예수님을 안은채, 한손에 복음서를 펴들고 계시는 장면이다.

복음서에 그리스어로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성경귀절이 씌여있다.

복음서가 펼쳐져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회개의 시간이 선물로 주어져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성화 아래의 네명의 사람들은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이다.






동방박사에게 봉헌한 제대이다.


724년 성지순례를 왔던 베네딕도회 성인 윌리브란드에게 봉헌된 경당,


그리고 이곳은 베네딕도성인에게 봉헌된 경당이다.


기념성당 바닥 중앙에 있는 모자이크는 일년(12개월)을 상징하는 십이궁도를 원형으로 하여 성인들과 예언자들을 , 그 중앙에는 삼위일체를 상징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기념성당 출입구에 있는 모자이크는 노아의 방주를 표현한 것이다.




성모영면성당 순례 후 이제 최후의만찬 기념 경당으로 이동한다.




십자군시대에 폐허가 되었던 최후의 만찬 기념성당 터를 1933년 나폴리의 왕 포베르또와 왕비 산치아가 당신 이곳의 통치자였던 이집트 술탄 말렉 알 나시르 마 호멧으로부터 구입하여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에 봉헌하여, 이곳에 성지 수도원을 짓고 이전의 성당을 보수하여 '최후의 만찬 기념성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장소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기억하기 위해 아래층에는 세족례 기념경당, 다윗의 무덤 경당, 사도 토마 기념경당을, 위 층에는 최후의 만찬 기념경당, 성령강림기념경당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작은형제회에서 이곳을 200년동안 성지본부로 사용하였는데, 오스만 투르크인들이 1552년에 수도원을 빼앗고 경당들을 이슬람 사원으로 바꾸었다.

이로 인해, 작은 형제회가 이곳에 상주할 때에 꾸며놓은 5개의 경당 가운데 최후의 만찬 경당만 일반 순례객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한다.




최후의 만찬 기념경당 현판이 입구 오른편에 붙어있다.






미로를 찾아 헤매는것처럼 이곳저곳을 돌아돌아 최후의 만찬 기념경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슬람교 신자들이 기도할 때 메카 방향을 바라보며 기도한 다 하는데, 메카방향을 가리키는 미랍이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아래 사진의 오른쪽 구석에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으로 내려가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경당이 있었지만, 현재는 닫혀있고, 1층에는 다윗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최후의 만찬 기념경당이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된 후 그리스도교의 상징물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는데, 그중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예수님을 기념하는 경당'으로 내려는 곳의 기둥에 있는 펠리칸 조각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상징물이라고 한다.


'사랑 깊은 펠리칸, 주 예수님, 더러운 저, 당신피로 씻어 주소서. 그 한 방울만으로도 온 세상을 모든 죄악에서 구해 내시리이다.'(성토마스의 성체 찬미가 중에서)


펠리칸 어미는 모성애가 매우 강하여 먹을 것이 떨어져 새끼가 굶게 되면 자기 가슴을 부리로 쪼아 피를 내어 먹인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성체성사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새로 펠리칸이 등장하는데,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안에서 성체성사를 상징하는 펠리칸 조각을 보며 묵상할 수 있음으로도 감사하다.


펠리칸 조각을 보면 가운데 부분이 어미 펠리칸이고 양 옆에 펠리칸이 어미의 가슴에 부리를 두고 있는 형상이다.



이스라엘 정부에서 만들어놓았다는 황금색 올리브나무가 미랍 반대편에 서 있다.

고대 근동지방에서 올리브나무는 생명의 나무를 상징한다.


오른편에 보이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성령강림 경당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하는데,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폐쇄되어 있다고 한다.


1층의 다윗의 무덤으로 이동하다. 이곳 다윗의 무덤은 다윗의 시신이 없는 가묘이다.





통곡의 벽에서처럼 다윗의 묘에 들어가는 입구가 남녀 구분되어있었다. 





다윗의 무덤은 반쪽을 칸막이로 막아놓아 오른편에서는 남자들이, 왼편에서는 여자들이 기도할 수 있게 되어있다.




버스를 타러 이동하는 중 만난 거리의 빵장수....



이제 닭울음성당(갈리칸투)으로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