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어느 날 저녁....
남편은 종종 홈쇼핑에 빠져 허우적거릴때가 있다.
그날도 그랬다.
갑자기 "우리 스페인 갈까?"
동유럽 여행을 한지 얼마되지 않아 해외여행을 계획하기가 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퇴직한 후 자주 예민함을 보이는 남편에게 무자르듯이 대답할 수가 없어 관심을 보였었다.
스페인/포르투갈 6박9일 1,390,000원..... 터키항공 이스탄불 경유....
그래도 너무 싼 가격이 아닌가....
분명 호텔은 완전 저급일 것이고, 비행기도 국내항공이 아니고 게다가 직항도 아닌 경유니까 그렇겠지...
여행의 질은 어떨까.... 여러가지 생각이 많았는데, 남편은 마음이 급하다.
그동안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했지만, 우리 둘만의 여행은 하지 못했다고...
결혼 30주년 여행이라 생각하고 다녀오자 하는데...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먼저 홈쇼핑으로 다녀온 아는 언니의 의견을 들어보고는 신청을 허락했었다.
새해가 되고 설 명절을 보내고, 이제 슬슬 여행준비를 해야지 하는 시점에 우한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슬슬 꿈틀대기 시작하였다.
하루가 무섭게 중국은 난리통이 되고, 우리나라에도 확진자가 나타나고.... 이걸 어쩌나~~
여행사에서는 스페인은 괜찮다며 안심하고 떠나도 된다 하고, 아이들은 걱정하고..
그러면서 우리들의 결혼30주년 여행은 시작되었다..
우선 일정표를 보며 행선지를 검토해보다.
유럽 패키지 여행이 거의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이번 코스도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다.
이번에도 버스여행 할 각오를 단단히 하고 떠나야 할 듯 하다.
2월3일
오전에 수업하기로 했던 아이들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 여행준비 마무리 하고,
오후 수업 한타임 한 다음 오후 4시반경 집을 나서다.
엄마아빠 여행가는 날이라고 휴가까지 내고 우리를 배웅해 준 우리 딸램의 당부를 들으며 마스크로 철통보안하고 택시에 캐리어 싣고 터미널로 종종...
미리 예약했던 공항버스를 타려 기다리는 중 터미널의 한 카페에 들어가 차 한잔 시켜놓고 대기...
모두 마스크 끼고 잔뜩 긴장한 듯 한 느낌이다.
당장이라도 마스크를 벗으면 큰일날 것 같은 두려움을 안고 공항버스에 몸을 싣다...
뒷자리에 앉은 어느 여성분이 계속 기침을 해서 신경도 쓰이고...
게다가 중국 청도로 가시는 중년여성분이었는데, 김포공항 즈음에서 남편에게 휴대폰을 보여주며 뭘 물어보기까지 한다.
아마도 인천공항에서 내리려면 언제 내려야 하는지를 묻는 것 같았다.
얼른 휴대용 손소독제로 남편의 손과 내 손을 소독하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썰렁할 거라 생각했던것과는 달리 마스크 낀 여행객들이 많이 보인다.
출국수속하고 탑승시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간단히 김밥과 우동으로 저녁을 먹다.
늦은 시간이라 면세점도 거의 문을 닫은지라, 일찌감치 탑승대기석에 앉아 기다리다.
10시20분경 탑승수속....
정확히 11시20분 이륙.... 꽤 정확하네~~~^^
터키항공은 처음 타보는데, 좌석이 2-4-2 배열로 되어 있어 전날 창가자리로 나란히 좌석지정을 해두었었다.
생각보다 별로 불편하지 않다. 발받침에 기내서비스로 빨간수면양말, 빨간 슬리퍼, 귀마개, 안대등이 나왔다.
남편은 빨간수면양말이 맘에 든다고 굳이 신고 있던 양말을 벗고 빨간양말로 갈아신는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인천의 야경이 아름답다.
우리시간으로 밤12시20분경 비빔밥으로 비행 첫번째 식사를 하다.
역시 기내식은 국내항공이 맛있는 듯~~~
별로 먹고 싶지 않았지만, 잠자려고 화이트와인 한잔 부탁해 함께 먹다.
결국 반정도 먹고 남겼는데.. 속이 꽉 막힌 듯 답답하고 불편하다.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나 기내등이 꺼지고 잠을 청하려 하는데....
어느순간 빈혈기가 느껴지며, 손발이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어 쉼호흡도 하고 손도 주물러보고 자세도 바꿔보고 하다가,
좀 움직이면 나을까 싶어 화장실에 갔다가 결국 화장실 문앞에서 쓰러지다....
머리를 퉁 부딛혀 정신 차리고 보니 내 앞에 줄서있던 청년이 괜찮으시냐고 하면서 약 가져다 드릴까요 하며 묻는데, 순간 좀 어지러워서 그런다고 괜찮다고....,그러면서 벗겨진 슬리퍼 주섬주섬 챙겨신고 일어나니, 그 고마운 청년이 화장실 양보해주면서 먼저 들어가시랜다....
화장실 거울로 내얼굴을 바라보니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다.. 뭔 일이래~~~~???
자리로 돌아와 자고 있는 남편에게 "나 화장실 앞에서 쓰러졌어".... 했더니, 당황스러워하며 찬손을 주물러 준다.
잠시 지나니 온기가 느껴지고, 뭉쳐있는 것 같았던 뱃속도 조금씩 편해지는 듯하다.
공항버스에서 만났던 기침하던 중국여자가 생각나고,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바이러스에 걸려서 우리 일행 모두 여행을 망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부딛힌 머리는 괜찮겠지~~ 괜찮을거야 플라스틱커버에 부딛혔으니까~~
별별 생각들을 다 하며 눈을 붙히다.
점점 장거리 비행이 힘들다.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닌데 말이지~~
이스탄불 착륙 두시간 전쯤 두번째 식사가 나오다. 스크램블드에그랑 과일이랑 빵..
불편하던 속이 좀 편해졌기에 조심스럽게 식사를 하다.
이스탄불 공항 즈음인가본데, 창밖은 검은 흑빛이다.
직항 탈껄~~~~~~
터키시간으로 아침 5시경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다.
터키공항은 비가오고 있다.
간간히 보이던 지상의 불빛들이 칠흑같이 어두워져 도대체 어느땅의 하늘을 날고 있는건지 분간하지 못했는데, 이스탄불공항은 인천공항처럼 바닷가에 위치해 있었다.
인천공항만큼 깨끗하고 좋은 공항은 없지 싶었는데, 이스탄불공항 또한 세계에서 손꼽히는 공항이랜다.
완전 새거......^^
작년 2019년에 이곳 신공항으로 이전했다한다.
언제 쓰러졌었느냐는 것처럼 컨디션은 대충 좋지만 왜 그랬는지 자꾸만 의문스럽다.
이제 나 스스로를 자신할 수 없는 나이가 된건가~~??
이스탄불공항에는 마스크를 안낀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만 그들을 위해 계속 쓰기로 하다.
다연이에게 연락하고 다시 8시5분 발 TK1857편 마드리드행 비행기로 환승하다.
이스탄불공항에는 여전히 비가 오고 있다.
기온은 12도... 낮기온은 더욱 올라가겠지... 한국은 강추위가 몰려왔다는데...
그리이스 하늘쯤 지날 때 아침식사가 나왔다.
메뉴는 이스탄불 착륙직전 먹었던 음식과 같다.
언제나 긴 비행중엔 사육당하는 느낌이지만 남들 먹을 때 먹어둬야 여행하는데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아 조금씩 천천히 먹다.
현재시간 마드리드 타임 9시10분..
도착하려면 아직도 한시간 반쯤 남았다.
스페인 하늘이다.
발렌시아가 아래로 보이고 마드리드를 향해 날고 있다.
이제 20분 남았다.....
착륙시간을 고대하며 카운트다운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웃음이 나오다.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한국시간으로 오후6시가 넘었으니 집을 나온지 거의 26시간 만에 우리의 목적지에 도착하는 셈이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길고 긴 여정..
이제부터 시작이니 내 몸 내가 관리 잘하여 즐거운 여행이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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