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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산티아고 순례

[까미노 9.] 기회는 아무 때나 주어지는 게 아니야 | 240512

by 바이올렛yd 2024. 9. 23.

나헤라(Najera)에서 산토도밍고 데 라 칼자다( Santo Domingo de la Calzada )까지  21.5km 
5시간 20분 소요 (am 6:10 ~ am 11:30)


2024년 5월 12일 주일
 
지난밤은 고난의 밤이었다. 바로 옆 침대에 대단한 코골이 부부가 밤새 드르렁댔다.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새벽 1시 넘어 우유 한잔 마시고 귀마개를 최대한 밀어 넣고 잠을 청했는데 다행히 잠이 조금 들었던 것 같다. 새벽 4시경 알람이 울린다. 코골이 부부의 침대에서 나는 알람소리가 분명한데 안 일어난다. 결국 일어나 알람을 끄는 것 같더니 짜증스럽게도 10분 후 또 울린다. 그토록 코를 골며 잠을 잘 자니 알람을 맞춰놓고 자야 일어날 수 있겠구나 이해가 되지만,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차원에서는 아웃이다.
 
코골이 부부가 한참 동안 부스럭대며 배낭을 꾸려 나가고 나서 잠을 청하려 했지만 결국 5시 20분경 배낭을 챙겨 로비로 나갔다. 전날 사놓은 우유에 시리얼 넣어 간단히 아침을 먹고, 사과를 씻어 배낭에 넣은 다음 6시 10분경 출발했다.  

 
나헤라를 빠져나오는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을 뒤편 언덕에 올라서 뒤돌아보니 나헤라의 하늘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언덕너머 붉은 황토의 포도나무밭과 붉은 산 사이 길을 따라 발걸음소리가 저벅저벅 들린다. 앞서 걷는 청년들의 발걸음에 맞춰 거리를 유지하며 걷다가 밀밭과 포도밭에 드리워진 동녘햇살에 취해 사진을 찍었다.

 
붉은 토양의 포도나무밭은 레온까지 계속 이어진다 하는데, 석회암과 충적토가 많은 이 붉은 토양이 잡초의 성장을 억제하고 포도나무의 성장을 촉진시켜 준다고 하니 신기하다. 땅이 잡초임을 어찌 알고 억제시켜 줄까 궁금하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여러 작물을 재배해 본 결과 가장 적합한 것이 포도나무였지 않나 싶다. 역시 이 땅의 조상님들 지혜다.  

 
아침 7시경 드디어 산 위에 촛불처럼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출발한 지 한 시간 10분 정도 지나자 아소프라 마을에 도착했다. 아소프라는 옛 아랍인들 마을이었다고 하는데 마을 한가운데에 천사들의 성모 성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소프라 마을을 빠져나와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바라보며 계속 걸었다. 양귀비꽃이 붉은빛을 내밀고 있고, 출렁이는 밀밭과 포도밭이 계속 이어진다. 

 
아소프라를 약 1키로정도 정도 지났을 때 둥근 칼을 땅에 꽂아놓은 듯한 탑이 나왔다. 실제로 이 탑은 땅에 정의를 세우는 칼을 연상시켜, 악당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 경고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하늘, 들판, 나무, 길, 멋진 풍경화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어느 방향으로 바라봐도 그림이다.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같은 성당 다니는 70대 어르신 부부가 곧 세 번째 까미노 여행을 나설 예정이라 하며 날씨가 어떤지 궁금해하신다고 한다. 이분들은 언니가 순례 여정을 마치고 지역신문에 연재했던 순례기를 보고 용기를 내어 순례길에 나섰다고 했다. 그로부터 벌써 세 번째 순례길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말을 듣고 생각하니 지금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되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 기회는 아무때나 주어지는 게 아니야. 지금 내게 허락된 이 시간은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시간일 수 있어.'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한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에 순례자들이 그룹을 지어 걷고 있고,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이가 있다. 우리를 보고 '부엔까미노!'라 잊지 않고 인사한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고 나니 상자에 곧 푸드트럭이 있음을 안내하고 있었다. 갈증이 나던 차에 시원한 맥주 한잔하고 가자 했는데, 막상 가보니 볕을 피할 자리가 마땅치 않아 그냥 지나갔다.

 
거대한 순례자 철구조물이 있어 사진을 찍고 있는데 뒤따라오던 미국 아저씨가 사진을 찍어주시겠다고 한다. 덕분에 함께 찍은 사진이 생겼다. 골프연습장에서 운영하는 바에 들어가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출발한 지 세 시간 만에 휴식을 취했다.

 
골프연습장을 지나 시루에냐 마을 깊숙이 들어갔다 나와야 했는데 외곽으로 돌아 나와 마을을 제대로 못 보고 지나왔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나헤라에서 함께 묵은 젊은 부부와 그라시아님은 산토도밍고를 지나 그랴뇽까지 간다며 우리보다 일찍 출발했는데, 그래서인지 아무도 못 만났다. 전날 숙소 때문에 고생한 트래킹 멤버들은 잘 만나서 함께 오고 있는지도 궁금하기도 하다. 

 
아무도 안만나고 남편과도 뚝뚝 떨어져 걷다 보니 모처럼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길게 가질 수 있어 좋았다.   

 
홀로 걷는 분홍잠바 여인은 길가에 꽃들이 예쁘다며 자주 멈춰 섰고, 건강해 보이는 동양남자(대만인인 것 같다)는 성큼성큼 나를 지나쳐 걸어갔다. 

 
드디어 우리의 목적지 산토도밍고가 보인다. 

 
언덕을 내려가기 전 공원이 있어 잠시 멈췄다. 우리가 돌의자에 나란히 앉아 간식을 먹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말을 건다. 70대 한국인 어르신이었다. 나중에 함께 걸어 내려오며 잠깐 대화를 했는데 이분도 그랴뇽까지 갈 예정이라 한다. 수년 전에 다녀갔는데 이번에 다시 왔다고 하신다. 70대의 당당한 도전이 존경스러웠다. 이번엔 숙소를 예약하고 천천히 걸을 작정이라 하셨다. 그분이 사진도 찍어주셨다. 오늘은 두 분의 천사님이 함께 찍을 기회를 만들어주셨다.

 
가깝게 보이는 길도 걷다보면 한 시간이다. 산토도밍고 시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11시 30분경 산토도밍고 공립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예약자 명단이 따로 있었지만, 다행히도 선착순 체크인도 가능했다. 늦게 도착하면 체크인이 불가능할 수도 있어 앞으로의 일정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이다. 

 
침실은 3층에 배정받았는데, 나헤라에 비해서는 시설이 훨씬 좋다.
알베르게 정문 앞에 있는 빨래방을 이용해 남편옷과 내 옷 모두 세탁했다. 알베르게 내에 있는 빨랫줄에 빨래를 널어 자연건조시키고, 점심식사를 하려 밖으로 나갔다. 주일이라 마땅히 음식을 먹을 만한 곳이 없어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알베르게 옆에 있는 바에 들어가 샌드위치와 함께 맥주 한잔을 마셨다. 주일에는 특히 마트가 일찍 문을 닫으니 먹을 것을 미리미리 구해야 함을 두 번째 주일을 보내며 확실히 알게 되었다.
 
주일미사 시간을 알아보니 오후 1시에 봉헌된다 하는데 체크인하고 빨래하고 점심 먹고 하느라 시간을 놓쳤다. 더군다나 마을행사가 있어 저녁에 있는 순례자미사는 취소되었다 한다.  마침 성당 앞에서 주님승천대축일 행사를 하는지 소란하여 우리도 함께 서서 잠시 구경하였다. 

 
원래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자다는 산티아고 길 때문에 만들어진 마을이라고 한다. 그래서 5월 10일~15일 사이에 성인을 기리는 성대한 행렬을 한다고 하는데 바로 그날이었다.
 
복잡한 거리를 벗어나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와 다음날 이동할 목적지와 알베르게를 알아봤다. 벨로라도까지 이동하기로 하고 예약할만한 알베르게를 알아보고 예약을 했다. 내일은 마음에 여유를 갖고 걷기로 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산토도밍고 대성당으로 향했다. 성당 내부 관람과 함께 종탑과 수도원을 돌아볼 수 있는 입장권을 구입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좀 의아했지만 둘이 합하여 10유로를 내고 입장권을 구입해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산토도밍고 대성당에 들어가면 살아있는 닭이 있다 하더니 진짜로 있었다.
산토도밍고 대성당의 닭에 대한 전설이 있었다. 순례 중 닭 울음소리를 들으면 좋다 하는데, 알베르게에서 빨래 널며 들은 닭울음소리도 좋은 징조인가 싶은 생각에 웃음이 났다.

<산토도밍고 대성당의 닭에 대한 전설>
15세기에 독일 윈넨뎀 출신의 우고넬이라는 이름의 18살 청년이 신앙심이 깊은 부모님과 함께 산띠아고 순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머물던 여인숙의 딸이 그의 아름다운 외모에 반하여 사랑을 고백했으나, 신앙심이 남달랐던 우고넬은 그녀의 고백을 거절했습니다. 상심한 처녀는 그에게 복수를 하려고 은잔을 우고넬의 짐 가방에 몰래 넣고 도둑으로 고발을 했습니다. 재판소로 끌려간 우고넬과 그의 부모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청년은 유죄 판결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절망에 빠진 그의 부모는 산띠아고 성인에게 기도를 올리며 순례를 계속 했는데 돌아오는 길에서 “산띠아고의 자비로 아들이 살아있다”는 하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있다는 음성을 들은 기쁨에 찬 부모가 재판관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달려갔습니다. 마침 닭고기 요리로 저녁식사 중이던 재판관은 그들의 말을 듣고는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살아 있다면 당신들이 날 귀찮게 하기 전에 내가 먹으려 하고 있었던 이 암탉과 수탉도 살아 있겠구려.” 그러자 닭이 그릇에서 살아나와 즐겁게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재미있는 전설 덕택에 1993년부터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는 이 기적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었던 청년 우고넬의 고향인 독일의 윈넨뎀과 자매결연을 맺었습니다. 산또 도밍고의 재판관들은 우고넬의 결백을 믿지 않았던 것에 대한 사죄로 몇 백 년 동안 목에 굵은 밧줄을 매고 재판을 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전설과 전통 때문에 중세에 순례자들에게 여행 중에 수탉이 우는 소리를 듣는 것을 좋은 징조로 여겼습니다. 프랑스 순례자들은 순례길을 걸으며 닭의 깃털을 모았는데, 그것이 순례 중에 그들을 보호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폴란드인들은 순례 지팡이 끝에 빵 조각을 얹어서 닭에게 주고 했는데, 닭이 빵을 쪼아 먹으면 순례에 좋은 징조라고 여겼습니다. 
 <출처: 대한민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

 

 
종탑에 올라갔다. 정시와 매시 30분에 종이 울리는데, 마침 저녁 6시 30분을 알리는 종이 바로 옆에서 울렸다. 

 
산토도밍고 대성당의 종탑은 18세기에 증축된 것으로 세 번에 걸쳐 지어졌다고 한다. 탑에는 일곱 개의 종이 있는데, 그중 두 개가 시계 역할을 한다고 한다. 
 
세 번째 코스인 산 프란치스코 수도원으로 이동했다. 대성당에서 약 15분 정도 걸렸다.  
16세기 후반 사라고사의 대주교 베르나르도 데 프레스네다에 의해 세워졌으며, 19세기 중반까지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이 살았다고 한다.

 
수도원을 나와 저녁식사 할 곳을 찾았으나 주일이라 문 연 식당이 없다. 그나마 영업 중인 식당에는 마을축제 참여하느라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이 차지하고 있어 마땅히 앉은자리가 없다.

산 프란치스코 수도원 앞 광장에 설치되어있는 산티아고 성인과 우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지도에 나온 오픈 중인 마켓을 찾아 한참을 걸어갔는데 중국인이 운영하는 잡화마켓이었다. 결국 알베르게 앞 자판기에서 샌드위치 사서 알베르게 식당에서 먹었다. 알베르게 안에도 깔끔한 자판기가 있었는데 공연히 먼 길 돌아다녔다 싶긴 했지만 덕분에 마을 구경 잘했다.
 
알베르게 시설은 좋았지만 한국인 단체 순례객들이 들어와 늦게까지 홀에서 떠들어 시끄러웠다고 하는데, 난 신기하게도 9시경 잠이 든 모양이었다. 어느 순간 펑 소리가 나서 잠결에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잠시 후 따다다닥 폭죽 터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마을 축제라 하더니 오밤중까지 축제를 즐기는 건 좀 너무 심하지 않나 싶다. 분명 이 마을 사람들은 순례자를 위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단잠을 깨워놓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시간을 보니 11시 반이 넘었다. 불꽃놀이를 즐기기엔 어둠이 필수인데 밤 10시나 되어야 해가 지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억지로 이해했다.
 
함께 방을 쓰는 사람들이 적은 인원은 아니나 대체로 조용해, 간만에 단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