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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스라엘·요르단

[성지순례] 고대 에돔왕국의 수도 페트라(11월15일)

by 바이올렛yd 2018. 11. 15.

모세의 샘을 지나 언덕길을 하염없이 오르다보니, 건너편으로 보이는 산의 모양새가 특이하다.

카메라 셔터를 여러번 눌렀지만, 차가 흔들려 건질만한 사진은 없다.


하교길의 학생들을 만나 반가워서 셔터를 눌렀지만, 이 사진도 별로 좋지 않지만 훗날 나의 기억을 돕기위해 삽입하기로~~^^


페트라 유적이 보이는 언덕의 한 식당에서 나온 밥과 각종야채에 우리가 가져간 고추장을 넣고 비벼서 맛난 점심식사를 하고, 페트라로 향하다.


요르단 여행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었기에, 그 유명한 페트라도 난 알지 못하였는데,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다한다.




페트라 유적 초입에 있는 호텔..





모세가 하느님의 명령으로 유대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벗어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의 긴 여정중, 당시 에돔 왕국의 수도였던 페트라의 통행 허가를 받지 못하여, 멀리 우회하여 느보산으로 갔다고 한다.

무사와디라는 지역명도 모세가 지나갔다 하여 불리게 되었다고~~~



고고학 발굴 결과에 따르면 페트라는 BC7,000년 경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BC1,200년 경에는 성경의 에돔의 수도 '셀라'로 추정되며, BC6세기 서쪽 아라비아에서 이주해 온 유목민족인 네바타인들에 의해 점령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네바타인들은 페트라를 지나는 대상들을 상대로 통행세를 징수하고 쉬어 갈 수 있도록 숙식을 제공하며 부를 축적하기 시작하며, 눈부시게 번성하여 시리아까지 확장되었고, 페트라는 네바티안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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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6세기경 큰 지진으로 인하여 도시가 함목되어 페허화 된 후 배두인의 주거지로 사용될 뿐 바깥 세상에는 잊혀진 도시가  되었다.



1812년 다마스커스에서 카이로까지 대모험의 길을 가고 있던 스위스의 젊은 탐험가 요한 버카르트에 의해 잊혀진 도시 페트라를 찾아내게 되었고, 이후 페트라의 존재가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한다.


상당히 꽤 먼거리를 걸어야 하기에 트래킹화를 신고 나온건 정말 다행인데, 햇볕은 따갑다.

길을 가던 도중 가이드 언니가 예수님도 싸리나무아래 그늘에서 쉬어가기도 했다 하면서, 갑자기 나무있는 곳으로 뛰어가더니, 흙이 단단하지 않아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던지, 약간 그늘진 곳에 몸을 피하며, 이런정도의 그늘에서도 시원함을 느꼈다고 설명한다. 


이런 땅에서는 쉬어갈 나무그늘은 정말 찾기 힘들겠다 싶다. 게다가 끝이 안보일만큼 드넓은 풀없는 땅이라니.......







근처의 마을에서부터 수로를 연결하여 물을 끌어왔다는 수로의 흔적이다.



물도 없어보이는 돌틈에서 나무가 제법 크게 자라있다.





이 바닥의 돌들은 언제부터 깔려져 있어, 사람들의 통행을 돕고 있었을지.....


수로








코끼리 바위에서 우리 신부님~~



연신 마차가 드나들어 통행이 불편하기도 하였다. 그들도 시간에 쫓기는지 마차가 지나가는 속도도 만만치않아 사고의 위험성이 다분해보이다.


하늘을 가릴 듯한 높은 암석들 사이로, 미로와 같은 균열 부분을 따라 2km 정도를 걸어 들어가는데, 이 암벽 사이의 좁은 통로를 아랍어로 시크(협곡이라는 의미)라고 부른다. 이 시크를 따라 고대 수로가 벽면 아래에 이어져 있다.









시크 사이로 살짝 보이는 알카즈네


BC1세기 경 지어진 것으로 고전적 헬레니즘 건축 양식의 진수를 보여주는 알카즈네.

'나바티안' 왕이었던 '아레타스 3세'의 무덤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훗날 이곳은 왕의 명성을 찬양하고 숭배하는 사원으로 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바위산 자체를 깎아서 만든것으로 약 3,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이다. 이곳에서는 왕의 장례식은 물론 각종 회의 및 종교 의식을 치룬 것으로 여겨진다.


갑자기 나타난 염소 두마리...  마치 사진을 찍으라고 폼을 잡고 서 있는 듯하다.




원형극장을 보고 다시 돌아가는 길은 한번 공부하고 다시 복습하듯 눈에 잘 들어온다.


주차장까지 약간의 자유시간을 주어 돌아가는 길은 포토타임이었다.






번쩍이는 현대문명이 길들여져서,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는 불편함이 엿보이지만,

그 때 그시절 아주 먼 옛날에는 대단히 큰 도시였을 페트라..


그들의 자연을 이용한 고대문명이 그대로 보존되어 발전되었다면,

우리의 지구는 지금처럼 몸살을 앓고 있지 않을수도 있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보다.


다시 암만으로 돌아오는 길에 본 석양, 끝없이 펼쳐진 드넓고 메마른 땅, 지평선, 구름......


새벽부터 장거리를 움직인 탓에 돌아오는 버스안은 고요속의 침묵이 흘렀다.  드르렁대는 소리도 들리고~~^^


늦은 시간 호텔에 도착하니, 호텔에서 결혼식이 있었는지, 시끌벅적 손님들이 많다.

요르단의 결혼식 파티는 하루종일 이어진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