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동생이 SNS 대화방에 사진을 올렸다.
”형부가 찍은 사진을 한국화 선생님께 드렸더니, 이렇게 그려주셨네. 정말 우리 집 멋지지?”하면서...
눈이 많이 왔던 어느 겨울날 찍었던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이었다.
고요하고 아늑한 느낌과 함께 어릴 적 추억들이 묻어나오는 정겨운 풍경.
어느새 40년이란 세월을 담고 있는 아버지의 집이다.
아버지는 목수셨다.
아버지는 누구보다 부지런했다. 그래서 동네에서 가장 먼저 불이 켜지는 집이 우리 집이었다.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는 신작로를 마주하며 제재소, 방앗간, 담배 가게, 버스정류장, 이발소, 목공소,
그리고 우리가 군것질을 할 수 있는 가게도 두 곳이나 나란히 있었다.
목공소는 아버지가 결혼 후 자리를 잡으면서 직접 지으신 첫 번째 집이었고, 그 집에 입주하고 내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새벽 일찍부터 일어나 나무를 만지며 각종 가구를 만드셨다.
그 시절만 해도 기성 가구들이 많이 나오지 않던 때라 늘 아버지의 작업장에는 제작 중인 가구들과 나무와 연장들이 즐비했다.
자개장을 짤 때면 애벌 칠을 하고 문양을 디자인하여 붙이고, 몇 번에 걸친 사포질을 한 후 마무리 칠을 입혔다.
예술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편인 우리 가족이었지만, 아버지는 예술적인 감각도 지니고 계셨던 게 아니었을까?
작업장에서 들려오는 전기톱, 대패 소리, 뚝딱뚝딱 망치 소리가 조용한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기도 했지만,
이는 아버지의 건재함을 대변하는 소리였다.
아버지의 목공소가 한창 번성기를 누릴 때, 집 앞 도로확장공사를 하면서 집은 헐리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막막했을 상황이다. 삶의 터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집을 다시 지을 터를 알아보고, 집이 지어지는 동안 목공소 일을 유지하기 위해 반쪽짜리 집에서 아버지는 계속 일을 하셨다.
동네 어르신의 배려로 어르신 사랑채에 잠시 기거하면서 몇 달을 지냈다.
그때 다시 짓게 된 집이 바로 이 그림 속의 집이다.
기초공사부터 시작하여 우리 가족의 마음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그 집.
그 집에서 우리는 청소년기를 보냈고, 성인이 된 후에는 고향 집으로 살고 있다. 우리들이 함께 한 시간들이 고스란히 쌓여 있고,
부모님 손길과 이야기가 깊게 배어 있는 그 집. 그리운 아버지의 집에 우리는 늘 함께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수호성인인 요셉 성인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요셉 성월인 3월은 특히 행복하다.
목수였던 요셉 성인과 목수였던 내 아버지에서 느끼는 동질감으로 더욱 애착이 가는 마음인지도 모르겠으나,
요셉 성인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목수였던 아버지를 떠올리게 된다.
늘 지그시 웃으며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눈길과 나무를 만져 나무껍질처럼 까칠까칠했던 아버지의 손길이
오늘,
문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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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보내준 그림을 보면서 뭔가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를 떠올리며 글을 썼다.
어릴적 아름다운 추억들이 솔솔 묻어나는 귀한 시간을 보내고,
우리 성당 주보로 인쇄된 글을 보니 글을 쓰면서 전해온 따듯했던 마음이 다시 더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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