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2021 제주의 가을

제주가는 길은 멀다 (11/22)

by 바이올렛yd 2021. 12. 13.

봄에 제주한달살이를 하고 돌아온 남편은 입버릇처럼 '가을에 또 갈거야'라 말했었다.

연중 벌어지는 나름대로의 일정이 모두 끝나면 또 떠날거라 노래를 부르는데, '니 마음대로 하세요~~~~' 라 체념하듯 허락해버리는 나를 보면, 예전 빡빡했던 나날들에 비해 한결 여유로워짐을 느끼겠다.

그렇게 남편은 가을걷이를 끝내고, 문화원일정을 모두 마칠 무렵 제주한달살이 일정을 본격적으로 계획하였고, 난 남편없는 가정을 한달동안 지켜야 할 책임감을 미리 느끼고 있었다. 혹 혼자만의 자유를 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남편이 떠날 날이 다가올무렵, 중학교아이들 시험기간이 남편 제주살이 시작하는 시점과 겹치게 됨을 파악,

'나도 같이 떠나볼까??'

어차피 시험기간이라 수업이 많이 비게 되니 이번참에 나도 휴가를 써보자 하며, 내가 나에게 일주일간의 휴가를 줬다.

 

11월22일 아침7시 

남편의 여행봇다리는 과히 이사수준이다. 한번 경험을 해본터라 필요한것들의 목록이 나름 정확하다.

심지어 자신이 깔고 자는 토퍼와 베개까지 챙겨서 떠나니....  그렇지만 언제어디서나 잠자리가 편해야 하는게 사실이니 할말은 없다. 남편은 전날 저녁부터 미리미리 차에 짐을 챙겨 싣고, 난 작은 캐리어 하나 챙겨 남편의 차에 몸을 싣다.

딸램 출근한 사이 남편의 긴 여행에 합류하여 떠나다.

완도까지 내려가는 길은 참 멀다. 대전, 광주, 해남을 지나 완도에 도착한 시간은 정오가 훨씬 넘었다. 

 

기상상태가 안좋아 우선 완도항에서 배가 정상적으로 출항을 하는지 확인하고 근처 까페에 들어가 샌드위치와 커피로 점심식사를 하다.

우리가 탈 제주행 실버클라우드호의 출항 예정시간은 3시, 차량을 배로 옮겨싣고 대합실에 앉아 대기중...

 

바람이 많이 불어 인근 작은섬들로 가는 배들은 모두 결항이고, 우리가 탈 배는 대기상태였으나 출항을 해도 되는 상황인지 개찰구가 열린다.

 

배로 이동하는 중 바람이 쎄서 한편 걱정도 되었으나 큰배라서 괜찮을거야~~~~라 주문을 건다.

 

출항하고 얼마되지 않아 바깥풍경이 궁금하여 갑판위에 올라가보니, 다도해답게 주변에 섬들이 많이 보인다.

 

바람이 많이 불어 갑판위에 오래 있기 힘들다.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사진 몇컷 찍고 바로 내려왔다.

제주에 가까워질수록 배가 심하게 흔들려 우리가 탄 3층 창밖으로 바닷물이 가깝게 보이기도 해 두려웠다. 배의 원리를 알면 그다지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데, 막상 닥치면 안정을 찾기 힘들다.

순간 두손을 꽉잡고 주님의 기도를~~~~ 

기도가 끝나는 순간 거짓말처럼 배의 흔들림이 멈춰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역시 당신의 기돗빨은 쎄~~~~"^^

 

예정시간보다 약 30분정도 더 걸려 제주항에 도착... 오후 6시가 넘었다.

이른아침에 집을 나서 어둠이 깔리는 제주속으로 들어가다.

 

시험을 앞둔 빈이가 문제를 사진찍어보내며 풀어달래서 이동중인 차 안에서 풀어 다시 사진찍어 보내주기도...

 

제주에서의 첫식사는 제주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보말칼국수 먹으러 산방산근처 바닷가로 향했는데, 그집은 이미 영업이 끝나 문을 닫았다. 아쉬워하며 한바퀴 돌아보다가 근처식당에 들어가 해물칼국수를 시켰는데, 예상보다 근사하게 나와 놀랐다. 

 

푸짐한 저녁식사를 하고 9시가 넘어 안덕에 위치한 숙소에 도착하였는데, 칠흑같은 어둠속에 외딴집.... 게다가 우박과 비가 섞여내려 짐을 내려 옮기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숙소안은 호스트가 불을 켜놓아 환했지만 냉골이었고... 청소도 제대로 안되어 뭔가 찝찝하지만 첫날이라 그냥 좋게좋게 넘기자~~~ 그 와중에 장점을 얘기하자면 테이블과 의자가 있고 작은 소파도 있고, 다행히 온수는 콸콸 잘 나온다.

우선 방바닥을 따뜻하게 해야할것 같은데, 도대체 난방을 어찌해야 하는지 안내문에 써있지도 않고 호스트에게 전화했더니 받지도 않고.... 이런 젠장할~~~

약 2시간동안 짐정리하고 대충 청소도 하면서 난방방법을 찾다가 침대옆 구석진곳에 있는 함의 문을 열었더니 난방과 관련된 장치인 듯 하나 잘 보이지도 않는다. 사진을 찍어 쫙쫙 늘려 살펴보니 난방필름 온도조절기다. 전원을 켜고 온도를 올리니 금방 따뜻해진다.

 

아침이 되면 구석구석 청소하고, 냄새나는 배갯잇도 벗겨 빨아야지~~~  이 숙소는 관리가 엉망이네~~ 이런생각 저런생각에 빠져 제주의 첫날밤은 길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