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지인들과 삼일절 연휴를 끼고 제주를 향할 때 가장 큰 목적은 한라산 등반이었다.
평소 운동이라고는 일하러 이동하는 것이 거의 전부였던 지라 걱정스럽기도 했었지만, 그때만 해도 비만이라 발목관절이 안좋았던 남편의 잔꾀에, 가장 짧은 코스인 영실코스를 택해서 한라산을 올랐었다.
목표는 백록담을 눈에 담고 내려오는 거였는데, 영실코스가 백록담을 볼 수 있는 코스가 아니란 걸 등산중에야 알았으니...
좀 아쉽기는 했지만, 나도 운동부족이었던 터라 한편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었다.
한라산 등반 중 종종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경우도 있다하니....
영실코스는 워밍업이고 다음엔 백록담을 꼭 정복하자.... 다짐....
그리고는 틈틈히 동네 걷기부터 간간히 가까운 설봉산 등산으로 한라산등반을 위한 몸 다지기를 해오다가, 마침 그 기회가 온 것이다.
영실코스를 다녀온 후 자신감을 얻어 그로부터 몇달 후 친구들과 한라산정복을 이루었던 남편은, 이번엔 순전히 날 위해 동반해주는 거라한다. 역시 경험자는 당당하다.
기상예보에 따라 하루 먼저 오는 바람에 딸램은 하루 재택근무를 해야 했기에 딸램의 배웅을 받으며 6시40분경 숙소를 나서다. 남편이 전날 등산준비를 너무나 완벽하게 해 놓은 터라 별로 신경쓸 것 없이 등산복입고 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전날 늦게 도착하기도 하였고 잠도 설쳐 내심 걱정은 되지만, 다행스럽게도 새벽에 잠깐 잠들었던 게 몸을 한결 가뿐하게 하는것 같다. 이동 중 길가의 편의점에 들러 전주비빔밥맛 삼각김밥, 샌드위치, 그리고 구운계란이랑 물한병 사서 차안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다. 편의점에서 권하는 대로 삼각김밥은 전자렌지에 20초 데웠더니, 생각보다 맛있다.
구운계란 하나씩 까먹고, 다시 출발....
7시30분경 성판악등산로 입구에 도착하였으나 2년전과는 다르게 주차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었다. 주차장에 자리가 없으니 국제대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버스타고 오랜다. 주차하고 오면 예약한 시간인 8시가 넘을 것 같은데...
국제대학교가 꽤 많이 떨어져있어 성판악 입구에서 멀어질수록 내심 걱정이나 남편은 괜찮다고 마냥 태연하다.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대로 갔더니 잘못갔다. 국제대 학생회관 앞 주차장이라 도통 버스를 또 어디서 타야할지 막막하다. 일단 차를 세우고 큰길쪽으로 올라가다 보니 마침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지나간다.
우리좀 태워주면 안될까요???????? 하는 마음으로 손을 들었는데, 손짓으로 뒤를 가리킨다.
남편은 척 알아듣고는 "저 뒤로 가면 버스타는 곳이래~~~~"
하~~ 잘 알아듣는걸 보니 제주사람 다됐군....
모퉁이를 돌아가니 버스정류장이 있고, 길 건너편에 떡 하니 넓은 주차장이 있다.
계속 직진했으면 헤매지 않고 왔을텐데 말이지...
시간이 없어 초조하게 버스를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이동하다.
택시요금이 거의 만원...... ㅠ
택시기사가 남편에게 선심성 발언을 하니, 기분이 좋은지 예전 신혼여행왔을 때 이야기를 하면서 남자들끼리 통하는 대화를 나눈다.
드디어 성판악 등산로 입구에 도착..
늦었다고 막 뛰었더니, 입산관리하시는 분이 우리를 위해서 30분 늦춰놓았다고 얼른 오시랜다. 믿거나 말거나...
한라산 등반 시작... 등반시작시간은 오전 8시9분....
2년 전 영실코스를 오를때의 한라산보다 이곳 성판악은 더욱 겨울같다.
간간히 깍깍거리는 까마귀떼들이 푸드덕 거리고, 돌들이 삐쭉삐쭉 나와있는 길에 주변을 둘러볼 새가 없다.
자칫 발목이라도 삐끗하면 낭패이니, 미리미리 조심하는 수밖에.....
해발800m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걷고는 있지만, 점점 다리가 무거워지고있다.
해발 1000m
일기예보와 같이 하늘은 구름한점 없이 맑고 푸르다.
역시 듣던대로 성판악으로 오르는 길은 비교적 완만하고 길다.
그렇지만 평지를 걷는 것보다는 간간히 가빠지는 숨결을 숨길수가 없다.
거뜬히 오르겠다 큰소리를 쳤는데, 숨이 가빠 중간중간 앉을 자리만 나오면 쉬어야 할 것 같다.
남편은 곧 휴게소 나온다고 조금만 힘을 내라 하고, 난 앉을 자리만 나오면 주저앉으려 하고...
결국 의자가 나오니 꼭 쉬어야만 할 것 같아 주저 앉아버리다.
물 한모금 마시고, 남편이 준비한 간식통에서 콜라비조각 꺼내먹는다.
남편이 준비해 온 간식통에서 가장 인기있던 것은 콜라비였다.
아작아작 씹어먹는 재미가 솔솔..
몸은 달아올라 속에 겹쳐입었던 패딩을 벗으니, 한결 시원하다.
중간에 속밭 대피소에서 화장실도 이용할 겸 잠시 쉬고는 다시 걸어 진달래밭 대피소까지 올라가다.
드디어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
이곳에서 준비해 간 컵라면과 오메기떡으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다.
산정상에 사람이 많아 오랫동안 앉아 쉬기 힘들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역시 산에서 먹는 컵라면은 맛이 일품이다.
충전을 했으니 이제 한라산 1950m 고지를 향하여 다시 출발하다.
진달래밭 대피소 이후로는 거의 눈길이다.
배낭속에 아이젠이 들어있지만, 오르막길은 스틱에 의지하며 걸으니 눈길이라도 그런대로 오를만 한다.
중간 중간 만나는 데크길에서는 아이젠을 끼운채로 걷기가 불편하여 하산할 때 이용하기로 하다.
정상이 가까워올수록 경사가 가파라지니 숨이 턱에 걸려 남편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주저앉기 일쑤다.
멀리 보이는 계단이 너무나도 까마득하게 보인다. 언제가나????
한 걸음 한 걸음 계속 걷다보면 언젠간 정상에 가까워지겠지~~ 우리네 인생처럼~~~
아자 아자!!
고지가 바로 저긴데......
한번 정상에 오른 경험도 있어 자신감이 이미 붙어있고, 또한 몸이 가벼워진 남편은 앞서걸으며 나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남편은 조금만 더 힘내라고 하지만......... 안돼요~~~ 잠시 숨좀 돌리게 해줘요~~~~^^
해발 1900m
정상에 사람들이 보인다.
와~~~ 50m만 더 올라가면 저사람들 틈에 끼일 수 있는 것인가?
사람이 너무 많다....
코로나19로 인해 거리두기하고 마스크를 벗지 말라 연신 방송한다.
백록담 표지석에서 기념사진 찍으려고 줄서서 대기하는데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이러다가 제한시간안에 사진도 못찍고 내려가야 하는거 아닌가 싶어 대기줄에서 빠져나와 백록담을 보기위해 위로 올라가다.
사진찍는 사람들의 교체텀을 이용해 백록담표지석 찍기
표지석을 안고 찍지는 못했지만, 한라산 정복 인증사진은 이걸로 대신함.
사진으로 보았던 것처럼 역시 고인 물은 적고, 그나마도 얼어붙어 겨울산의 백록담을 보여주고 있다.
언제 몰려왔는지 안개인지 구름인지 몰려다녀 뿌옇다 맑았다를 반복한다.
관음사쪽으로 내려가는 길 안내가 되어있다.
관음사 등산로는 성판악 등산로보다 많이 가파르고 힘들다 한다. 우린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갈 예정..
군데군데 모여앉아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도 멀찍이 떨어져 자리를 잡아 앉았다.
오메기떡 남은 것과 과일로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 정상에서 에너지 충전하다.
내려오는 길.... 눈길로 미끄럽다.
하산길엔 혹시나 하고 준비했던 아이젠을 한쪽씩 나눠끼고 출발했는데, 상당히 도움이 많이 되었다.
날 위해 서귀포 올레시장 앞 매장에서 구입했다는 스틱도 마찬가지.... 없었으면 상당히 힘들뻔....
남편님 고마워요~~~^^
1시반경 하산 시작
눈길을 종종거리며 쉬지않고 내려오다보니 진달래 휴게소가 나온다.
역시 되돌아오는 길을 가깝게 느껴진다.
잠시 화장실도 들를겸 쉬기로 하여,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때 마침 전화벨이 울린다. 형님이다.
무슨일인가 하고 받았더니, 마늘밭에 비닐 벗겨줄때가 되었다고 알려주려 전화하신 것이다.
잠시 일상을 잊고 있던 차에 생각이 현실로 빨려들어가는 순간이다.
일단 용건을 간단하게 이야기 나눈 후 대뜸
"형님! 저 한라산 정복했어요~~~!^^"
반갑게 응대하며 함께 기뻐해주는 형님이 참 고맙다
다시 하산 시작...
내려가는 길은 쭉쭉 쉬지 않고 걷지만, 우리가 그다지 짧지 않은 길을 걸었음을 실감하다.
중턱쯤 내려왔을 때부터 왼쪽무릎 통증....
더 내려오다 보니 오른쪽 무릎 통증....
가벼운 통증이긴 하지만, 잠시 쉬어가며 물도 마시고 무릎마사지도 하다.
내려가는 길에도 돌부리에 걸려 삐끗하지 않으려면 주변을 잘 살피며 걸어야 한다.
천근만근 무겁고 지친 몸을 이끌고 하산을 마친 시간은 5시10분경...
왕복 약9시간정도 소요된 등산이었다.
내 생애에 가장 긴 시간동안 한 가슴벅차고 뿌듯한 등산이다.
주차장으로 이동하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구급차 두대랑 소방차 한대가 급하게 온다.
등산객에 무슨 사고라고 있었던 겔까? 내심 걱정....
나중에 알아보니, 40대 남자가 하산길에 심정지가 와서 주변의 일행이 응급조치를 하여 다행히 위험을 넘겼다는 기사가 떠있었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우선 딸램과 연락하고 일단 숙소로 이동하기로 하다.
딸램은 우리가 나가고 나서 아침일찍 해변을 달렸고, 근처에 있는 우동집에 가서 점심식사하고 오후에는 노트북들고 카페에 가서 일했다고 했다. 숙소주변 탐색을 이미 마쳤다고....
예전 문화관광부 대학생기자 하던 시절 어떤행사 취재왔던 해비치리조트가 바고 그곳에 있었다고 한다.
숙소에 도착하여 씻고, 저녁식사를 하기위해 해비치리조트 있는 쪽으로 걷다.
리조트 주변에 먹거리 식당들이 많이 있었다.
딸램이 취재왔을 때 식사했던 어촌식당으로 안내하여, 갈치조림과 함께 제주막걸리 한잔씩 하다.
가족이 함께 제주의 해변을 고즈넉하게 걷는다는 건 참 행복한 즐거움이다.
하늘의 별들과 뺨을 스치는 밤바람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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